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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최저한세 시행으로 조세회피 전략의 수익성 급감 낮은 실효세율 기업에 자본비용 부담과 투자자 신뢰 저하 조세 회피보다 지속 가능성과 정책 대응력이 핵심으로 부상
본 기사는 The Economy 연구팀의 The Economy Research 기고를 번역한 기사입니다. 본 기고 시리즈는 글로벌 유수 연구 기관의 최근 연구 결과, 경제 분석, 정책 제안 등을 평범한 언어로 풀어내 일반 독자들에게 친근한 콘텐츠를 제공하는 데 목표를 두고 있습니다. 기고자의 해석과 논평이 추가된 만큼, 본 기사에 제시된 견해는 원문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2024년 6월 1일, 유럽의회가 다국적 기업(multinational enterprises, MNE)의 국가별 세금 공시를 의무화하는 법안을 통과시키자, 단 사흘 만에 해당 조치의 영향을 받은 다국적 기업 687곳의 시가총액에서 약 637억 유로(약 94조9,000억원)가 사라졌다. 이는 핀란드의 연간 교육예산에 맞먹는 규모로, 자본시장이 더는 조세회피 전략에 프리미엄을 부여하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단순한 정보 공개 하나로 불가리아 국내총생산(GDP)을 초과하는 가치가 증발했다는 점은, 과거 조세 차익을 통해 기업가치를 높이던 시대가 끝나가고 있음을 의미한다.

글로벌 규범으로 조여오는 소득 이전 전략
다국적 기업들은 오랜 기간 세율이 낮은 국가로 자산과 이익을 분산해 전체 세 부담을 줄이는 전략을 사용해 왔다. ‘소득 이전(profit shifting)’으로 불리는 이 조세 전략은 합법적인 절세에서 불법적인 탈세에 이르기까지 넓은 범위를 포괄하며, 그 핵심은 국가 간 법인세율 격차를 활용하는 데 있다.
OECD는 2015년 보고서를 통해 매년 수천억 달러의 세수가 소득 이전으로 손실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에 따라 국제 사회는 2010년대 중반부터 조세 개혁에 착수했고, 핵심은 OECD가 주도한 ‘세원 잠식과 소득 이전(Base Erosion and Profit Shifting, BEPS)’ 프로젝트였다. 2021년 주요 7개국(G7)은 BEPS 대응의 일환으로 ‘글로벌 최저한세’에 합의했으며, 이는 일정 규모 이상의 다국적 기업이 어느 국가에서 실효세율 15% 미만의 세금을 낼 경우, 다른 참여국이 그 차액을 보충 과세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이 글로벌 최저한세 제도는 BEPS 대응책 중 하나인 필라2(Pillar Two)에 포함되어 있다.
조세회피를 둘러싼 시장 인식의 변화
과거에는 조세회피가 비용 없는 효율 전략으로 여겨졌다. 주주가치 제고의 수단으로 받아들여졌고, 각국 정부도 일정 수준에서는 이를 용인해 왔다. 그러나 최근 시장은 조세회피를 윤리적 논란이 아닌 자본시장 리스크로 간주하고 있다. 조세 전략이 기업 가치에 미치는 영향을 적극 반영하기 시작한 것이다.
2024년 6월 유럽의회의 공시 의무화 이후 나타난 주가 반응은 이러한 전환점을 명확히 보여준다. 시장은 이제 실효세율이 과도하게 낮은 기업에 대해 일종의 자체 기준선을 적용하며, 세금 전략을 판단할 때 도덕성보다는 지속 가능성과 정책 리스크 대응력을 더 중시하고 있다.

주: 소득 이전 수준 분위(X축), 월별 주식 수익률(Y축)
이 같은 변화는 규범과 이행의 현실에서 비롯된다. PwC가 2025년 7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70개국 이상이 필라2를 시행 중이고, 40여 국가는 입법을 완료했다. 이에 따라 전 세계 다국적기업 이익의 약 90%가 글로벌 최저한세의 적용을 받게 됐다.
줄어든 조세 차익, 커진 실질 비용
OECD는 2024년 1월 보고서에서 글로벌 최저한세 시행 이후, 세율 15% 미만이 적용되는 기업의 이익 비중이 36%에서 7%로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다. 이는 약 80%의 감소에 해당하며, 조세 차익의 기회가 급격히 줄고 있음을 뜻한다. 반대로 각국이 확보할 것으로 기대되는 법인세 수입은 연간 최대 1,920억 달러(약 267조원)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주: 글로벌 최저한세 도입 전후(X축), 이익 비중 및 세수 규모(Y축)/세율 15% 미만이 적용된 기업의 이익 비중(진한 파랑), 연간 법인세 수입 추정 규모(연한 파랑)
시장 역시 조세 전략을 바라보는 시각을 바꾸고 있다. 최근 34개국의 세금 관련 이슈를 분석한 결과, 탈세 의혹만 제기돼도 해당 기업의 주식 유동성이 줄고, 자본조달 비용은 수개월간 높게 유지되는 경향이 나타났다. 주가 하락 폭은 제한적이었지만, 더 주목할 점은 자본조달 비용이 소폭만 상승해도 절세 전략의 효과는 크게 떨어질 수 있다. 예를 들어, 세전 수익률이 9%에 불과하다면 조달 비용이 소폭 오르는 것만으로도 순이익이 거의 없어질 수 있다. 실제로 많은 기업들이 이처럼 수익 구조가 취약한 절세 전략에 의존하고 있어, 과거에는 '무비용의 효율'로 여겨졌던 방식이 이제는 손실과 리스크의 원인으로 인식되고 있다.
미국의 이탈, 보호인가 역풍인가
2025년 1월,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글로벌 최저한세 도입을 공식 거부했다. 국내 일부 평론가들은 이를 미국 기업 보호 조치로 평가했지만, 시장은 회의적이었다. 발표 이후 2주 동안, 해외 실효세율이 15% 미만인 S&P 500 소속 기업들의 초과수익률은 –1.4%를 기록했으며, 옵션 기반 변동성은 0.6% 상승했다.
미국의 이탈은 각국의 보복 조치 가능성을 열어놨다. 필라2에 참여한 국가들은 자국 내 저세율 해외 계열사에 대해 부족한 세금을 직접 회수할 수 있다. 예컨대, 미국 본사의 소프트웨어 기업이 싱가포르 자회사를 통해 5% 세율로 이익을 보고할 경우, 프랑스·독일·일본 등은 해당 기업의 자국에 소재한 동일 기업의 계열사로부터 부족한 세금 최대 10%를 추가로 회수할 수 있다. 전 세계 70개 이행국 중 25%만 이 조항을 적용해도 미국 기업의 연간 해외 보충 과세 부담은 250억 달러(약 35조원)를 넘어설 수 있다.
비슷한 사례는 과거에도 있었다. 1990년대 미국이 OECD의 ‘유해 조세 관행 협약’ 서명을 거부하자, EU는 자체 블랙리스트를 도입했고, 당시 카리브해에 자회사를 둔 미국 기업들의 조달 비용은 상승했다. 당시 평균 채권금리는 0.35% 올라갔다.
변화 앞의 우려, 피할 수 없는 전환
일부에서는 조세 공시 확대나 글로벌 최저한세가 기업 전략에 실질적인 변화를 주긴 어렵다고 본다. 주가 반응이 일시적이고, 규모도 제한적이라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OECD 분석에 따르면, 필라2가 본격 시행되면 낮은 세율 덕분에 확보할 수 있었던 절세 규모는 절반 이하로 줄어들 전망이다. 세금 부담을 줄이기 위해 설계된 전략들이 오히려 비용 증가와 평판 악화로 이어지면서, 기업의 순이익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공시 의무가 수익성이 낮은 산업까지 조세회피 기업으로 오해받게 만들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하지만 해법은 비공개가 아니라 맥락 제공이다. 규제 당국은 단순 수치 외에도 산업 특성과 납세 구조를 설명할 수 있고, 기업 역시 실물경제와의 연계를 보여주는 통합 보고서를 통해 오해를 줄일 수 있다. 실제로 이러한 설명을 제공한 기업들은 세금 뉴스에 따른 주가 변동성이 상대적으로 낮았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필라2 이행에 따른 기술적 복잡성과 비용 부담도 현실적 문제다. 이연법인세 조정, 글로벌 세원 잠식 방지 소득(Global Anti-Base Erosion Income, GloBe income) 재산정 등으로 인해 컨설팅과 시스템 정비에 상당한 자원이 소요된다. 다만 OECD는 향후 3개 회계연도 내에 디지털 보고 체계를 통해 보다 정밀한 자료 제출을 가능하게 하겠다는 계획이다. 이는 과거 사베인스-옥슬리법(Sarbanes-Oxley Act, SOX) 시행 초기, 관련 내부통제를 조기에 정비한 기업들이 규제 대응에서 경쟁우위를 확보했던 사례와 유사하다. 초기 이행비용은 단순한 부담이 아니라, 전략적 투자로 해석될 수 있다.
조세 차익에서 시장 책임으로
자본시장은 더 이상 조세회피에 보상을 주지 않는다. 투명성과 규범 이행이 시장 신뢰의 기준으로 떠오른 지금, 조세 전략은 비용을 아끼는 도구가 아니라 신뢰를 쌓는 전략으로 바뀌어야 한다. 미국의 이탈은 과거의 혜택을 되살리기보다 오히려 새로운 불확실성을 초래하고 있다. 오늘 낸 세금은 내일의 자금조달 비용 절감과 정책 예측 가능성으로 돌아온다. 이제는 투명성과 절제, 그리고 세금이 장기 성장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분명히 보여주는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본 연구 기사의 원문은 The Vanishing Tax‑Haven Premium: How Markets Are Repricing Profit‑Shifting in the Global Minimum‑Tax Era | The Economy를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2차 저작물의 저작권은 The Economy Research를 운영 중인 The Gordon Institute of Artificial Intelligence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