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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 협상 끝에 '쟁의 찬반 투표' 진행 성과급 논란 끝에 격화한 노사 갈등, 최초 파업 벌어지나 실적 악화에 신음하는 사측, 노조 '떼쓰기 투쟁' 이대로 괜찮은가
삼성전자와 노조의 임금·복지 조건 협상이 최종 결렬됐다. 지난해 실적 악화로 신음하는 사측과 성과급 감소에 분노한 노조 측이 끝내 견해차를 좁히지 못한 것이다. 한국노총 산하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 측은 “18일 사측과의 마지막 대화에서 성과급 제도 개선 거절, 재충전 휴가 거절로 조합은 쟁의 상황에 돌입한다”고 밝혔다. 노조는 이날 오후 5시부터 다음 달 5일까지 쟁의 찬반 투표를 실시할 예정이며, 경우에 따라 삼성전자 사상 최초 파업에 돌입하게 된다.
삼성전자 노조, 쟁의 투표 돌입
삼성전자 노사는 지난해 9월 상견례 이후 5개월간 임금 교섭을 진행했으나 좀처럼 견해차를 좁히지 못했다. 협상의 가장 큰 장애물은 임금 인상률에 대한 입장 차이였다. 18일 논의 당시 삼성전자 측은 공통인상률을 기존 2.8%에서 3%로 조정하고, 여기에 성과인상률 2.1%를 더한 5.1% 최종 인상안을 제시했다. 하지만 노조 측은 이 같은 제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는 임금 6.5% 인상, 고정시간외수당·장기근속 휴가를 비롯한 복지 조건 확충 등을 주장한 것으로 전해진다.
노조 측은 지난 14일 열린 중앙노동위원회 3차 조정 회의에서 '조정 중지' 결정을 받아 이미 쟁의권을 확보한 상태로, 18일 최종 협상이 결렬됨에 따라 다음 달 5일까지 쟁의 찬반 투표를 실시할 예정이다. 노조는 투표율 제고를 위해 △온라인 홍보 △홍보 트럭 △대자보 △성우 녹음 △피켓 △현수막 등 각종 홍보 수단을 동원한다. 이에 더해 삼성전자 서초 사옥과 이태원, 신라호텔, 타워팰리스 등 삼성 주요 계열사 사옥 근처에서 회사를 압박하는 순환 투쟁을 단행할 예정이다.
노조는 전체 조합원의 80% 이상이 쟁의에 찬성하도록 활동, 강력한 노조 활동의 동력을 얻고 사측을 압박하겠다는 목표를 밝혔다. 주목할 만한 부분은 1969년 창립 이래 삼성전자에서 파업이 발생한 사례가 단 한 번도 없다는 점이다. 노조의 이번 찬반 투표 결과에 따라 삼성전자 역사상 최초의 파업 사례가 등장할 수도 있다는 의미다.
말라붙은 성과급에 불만 폭발
한편 이번 쟁의를 이끄는 전국삼성전자노조는 삼성 관계사 노조 중 가장 규모가 큰 단체다. 조합원 수는 지난 18일 기준 2만1,532명으로, 삼성전자 전체 직원의 약 17% 수준이다. 이들 노조는 지난 2022년과 2023년에도 협상 결렬로 인한 쟁의권을 확보했으나, 실제 파업에 돌입하지는 않았다. 실질적인 파업을 목표로 하는 이번 쟁의 찬반 투표는 상당히 이례적인 행보라는 의미다.
노조 측의 불만에 불을 붙인 것은 올 초 발생한 성과급 논란이었다. 지난해 삼성전자 반도체(DS) 부문의 초과이익성과급(OPI) 예상 지급률은 연봉의 0%로 책정됐다. OPI는 소속 사업부의 실적이 연초 목표를 초과 달성했을 경우, 초과 이익의 20% 한도 내에서 개인 연봉의 최대 50%까지 지급하는 성과급이다(연 1회). 지난해 삼성전자 DS부문의 영업이익 목표가 13조원(약 97억 달러) 안팎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를 웃도는 영업이익을 기록해야 성과급을 지급받을 수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DS부문은 지난해 △1분기 4조5,800억원 △2분기 4조3,600억원 △3분기 3조7,500억원 △4분기 2조2,000억원 등 총 14조8,800억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반도체 업황 악화로 인해 매년 확정적으로 지급받던 OPI가 사실상 '증발'한 셈이다. 지난해 하반기 DS부문의 목표달성장려금(TAI) 지급률 역시 평균 월 기본급의 12.5%로 상반기(25%)의 절반 수준까지 줄었다. 말라붙은 성과급에 불만을 품은 직원들은 줄줄이 제1노조인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에 가입, 사측과의 투쟁을 벌이고 나섰다.
"우리도 힘들다" 사측의 고충
문제는 삼성전자가 지난해 반도체 경기 침체의 '직격탄'을 맞았다는 점이다. 삼성전자의 지난해 매출은 약 259조원(약 1,935억 달러)으로 2022년(302조원) 대비 14.3% 감소했다. 연간 영업이익은 6조5,700억원으로 같은 기간 84.9% 급감했다. 삼성전자의 연간 영업이익이 10조원 이하까지 미끄러진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쳤던 2008년 이후 15년 만이다. 수익성 악화 위기를 견디기 위한 사측의 비용 절감 필요성이 대두된 가운데, 노조 측은 오히려 추가 임금 지급을 요구하고 있는 셈이다.
이 같은 대립 구도는 삼성전자 외 기업에서도 관찰되고 있다. 지난해 역대급 실적을 기록한 현대차·기아의 경우 노조의 ‘최대 성과에 걸맞은 최대 분배’ 요구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올해 전반적인 실적 악화가 예상됨에도 불구, 노조 측이 무조건적인 특별성과급 지급을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현대차와 기아의 올해 영업이익은 각각 14조3,257억원, 11조1,705억원 수준에 머무를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전년 대비 5.3%, 3.8% 감소한 수치다.
이어지는 경기 침체로 산업계 전반의 위기가 가시화하는 가운데, 재계에서는 무조건적인 성과급 요구가 오히려 제 살을 깎아 먹는 '악수'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 흘러나온다. 실제로 노조의 '떼쓰기 투쟁'으로 인해 인건비 지출이 불어날 경우 기업의 실적 역시 빠르게 악화할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기업이 설 자리를 잃으면 직원들 역시 자연히 자리를 잃게 된다는 점이다. '일시적 수익'을 두고 벌어지는 노사 갈등이 차후 감원 등 최악의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