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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직한 국민연금 개혁 방향’ 토론회 개최
“미래세대에 떠넘겨선 안돼”, ‘신연금’ 도입 제시
개혁 없으면, 6년 뒤 연금 자산 팔아야 할 수도
미래세대가 국민연금을 붓고도 제 몫을 챙기지 못하는 문제를 막기 위해 '신(新) 국민연금 제도'가 필요하단 제언이 나왔다. 사실상 개혁 시점을 놓친 현행 제도와 분리하고 완전 적립 형태의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현행 국민연금 제도는 개혁 시점을 놓쳤다는 진단하에 2006년생부터라도 제 몫을 챙겨주자는 방안으로 분석된다.
'신(新) 국민연금 제도' 필요성 제기
한국개발연구원(KDI)과 한국경제학회가 23일 개최한 ‘바람직한 국민연금 개혁 방향’ 토론회에서는 연금 재정의 지속성, 충분한 노후 소득 보장, 세대 간 형평성 등 연금개혁 목표의 달성 방안과 개혁 방향을 두고 치열한 토론이 벌어졌다. 신승룡 KDI 연구위원은 세대간 공존을 전제한 지금의 제도는 기금 소진을 피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 조정만 논의되는 상황을 지적하며 “앞으로의 모수 개혁 논의는 ‘신연금’ 분리를 우선 전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 연구위원의 제안은 미래 국민연금 가입자에게는 보험료와 적립 기금의 운용수익만큼을 돌려주는 완전적립식을 적용하자는 것이다. 현행 연금제도는 이전 세대의 수급액을 다음 세대가 낸 보험료로 충당하는 세대간 연대를 기본으로 하는데 이는 지속가능성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기존 세대에 약속한 지급분이 있는 ‘구연금’은 정부재정 609조원을 투입해 해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조동철 KDI 원장은 “한국은 현재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저출산 상황에 직면해 세대 간 연대에 기초한 현재의 국민연금 제도는 지속하기 어렵다”며 “KDI는 기존세대와 미래세대의 형평성을 제고하면서 지속 가능한 방안을 모색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명예연구위원은 “KDI의 제안은 중장기적으로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이라며 재정 고갈을 피할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원종현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 상근전문위원은 “채권을 발행해서 기금 운용 수익을 내겠다는 것은 ‘빚내서 주식 투자를 하겠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며 “낸 만큼 받아 가는 국민연금이라면 굳이 왜 공적연금을 가입해야 하는가”라고 지적했다. 그는 “5,000만 명의 가입자가 있으면 5,000만 명의 개혁 수단이 있는 것 같다”며 KDI안을 지난해 눈길을 끈 상온초전도체에 비유하고 검증이 필요하다고 했다.
보험료율 인상만으론 공적연금의 도입 취지와 고갈 방지를 모두 얻어낼 수 없다며 국고 투입을 통해 지속가능한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정세은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현재 보험료는 GDP(국내총생산)의 30% 수준인 소득에만 부과되고 있다”며 “자산에 대한 세금으로 충당할 수 있는 재정투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민연금의 현재 보장성 수준으로는 기초연금과 결합해도 안정적인 노후 소득 보장이 어렵다”며 노인빈곤 개선을 위한 보장성 강화가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정 교수는 보험료율 16%, 기금수익률 5.5%, 소득대체율 50% 아래에선 내년부터 2034년까지 GDP의 0.5%를 투입하고 이후에는 1%씩 지원하되 수급연령을 67세까지 상향하면 2100년까지 기금 고갈 시점을 연장할 수 있다고 봤다.
연금개혁 논쟁, 진실공방으로 비화
사실상 21대 국회에서 연금개혁이 무산될 위기에 놓인 가운데, 여야의 연금개혁 논쟁이 진실공방으로 번지면서 정치권 최대 쟁점으로 떠오른 상황이다. 핵심은 ‘소득대체율’이다. 24일 정치권에 따르면 민주당은 정부가 당초 소득대체율을 ‘현행 50%에서 45%로 낮추자’는 정부의 제안을 수용할 의사가 있다는 뜻을 밝혔으나, 정부와 여당은 제안한 바 없다며 맞섰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연금개혁을 할 의사가 있다면 1% 범위 내에서 대통령과 여야의 대표들이 다 만나든, 아니면 대통령과 민주당 대표가 만나든 어떤 방법이든 동원해 타결지어야 한다”며 “1%의 의견차를 핑계로 처음부터 다시 하자는 것은 도대체 말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에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민주당 안을 정부안으로 거짓말하면서 국민을 위하는 척하는 위선을 멈춰달라”며 “이 대표가 주장한 보험료는 13%고, 소득대체율은 45%다. 이는 민주당의 입장일 뿐 정부안도 국민의힘 안도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이어 추 대표는 “연금 개혁까지 정략적으로 활용하는 것은 참 나쁜 정치, 꼼수 정치”라고 비판하며 “연금 개혁안을 22대 국회에서 국민 공감 속에서 우선적으로 처리해 나갈 핵심 과제로 하고 있다는 점을 분명하게 말씀드린다”고 전했다.
골든타임 놓치면 연금 자산 매각해야
정치권은 그동안 말로는 연금개혁이 시급하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12번의 전체회의를 거쳐 국민의견만 모았을 뿐 2년 가까이 공방을 벌이느라 시간만 낭비하고 있는 형국이다. 미래세대 부담을 덜겠다며 시작한 논의는 결국 돈이 더 들어가는 꼴이 됐다. 이런 가운데 6년 뒤부터는 국민연금이 보유한 자산을 팔아서 연금을 줘야 할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오면서 우려가 커지고 있다.
22일 국민연금 제도개선 방향 공청회 자료집에 따르면 국민연금 기금은 2041년 적자로 돌아선 후 2055년 소진된다. 저출생·고령화 탓에 가입자가 감소해 보험료 수입은 감소하는 반면 기대수명은 늘어 급여 지출이 증가하기 때문이다. 일정 시점부터는 연금 급여 지출을 그해 보험료 수입만으로 감당하지 못하게 된다. 부과방식 비용률은 2030년부터 치솟는다. 이는 미래 연금 급여 지출을 당해 연도 보험료 수입으로만 충당할 경우 필요한 보험료율을 말한다.
2030년에는 9.2%로 현행 보험료율(9%)을 추월한다. 2030년부터는 그해 거둔 보험료로는 그해 연금을 지급할 수 없다는 의미다. 부과방식 비용률은 2040년 15.1%, 2050년 22.7%, 기금소진 연도인 2055년에는 26.1%, 2078년에는 35.0%까지 오른다. 그해 보험료로 연금을 지급하지 못한다면 결국 다른 곳에서 재원을 끌어와야 한다. 연금을 주기 위해 주식이나 채권 등 자산을 매각하는 일이 생길 수 있다는 얘기다.
문제는 국민연금이 국내 주식 시장의 큰손이라는 것이다. 국민연금은 삼성, 현대차, SK하이닉스, 포스코, KT, 네이버 등 거의 모든 대기업의 최대 주주다. 이런 국민연금이 자산을 매각하기 시작하면 해외 투자분은 차치하더라도 국내 주식시장 등 자본시장의 충격은 불을 보듯 뻔하다. 또 국민연금은 자산유동화의 역풍으로 주식 등 자산을 매각할 때 제값을 받고 팔지 못해 손에 쥘 수 있는 현금은 추계상 평가액보다 한참 못 미칠 개연성도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