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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량안보에 '독'되는 양곡법 개정안, 쌀 매입·보관에만 연 3조원 넘게 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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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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野, 오는 28일 양곡법·농안법 강행처리 예고
정부 "청년·스마트 등 미래 투자 위축 우려"
밀·콩 등 기초곡물 전환 막아 식량안보 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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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지난달 24일 충남 청양군 청양고추박물관에서 열린 '농촌 소멸 대응 및 청년 창업 활성화 제 1차 현장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사진=농림축산식품부

더불어민주당이 '양곡관리법(양곡법)' 개정안과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 안정에 관한 법(농안법)' 개정안 단독 처리에 나선 가운데, 정부가 개정안 통과 시 쌀 매입과 보관에만 매년 3조원 이상의 재원이 필요하다는 분석을 내놨다. 이를 두고 미래형 농업에 투자해야 할 재원을 재물로 삼았다는 논란과 함께 식량안보에 악화시킬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

농식품부 "양곡법 개정안은 '남는 쌀 강제매입법'"

6일 농림축산식품부는 "야당이 추진하고 있는 양곡법 개정안과 농안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연간 쌀 매입비와 보관비가 수조원에 이를 것"이라며 양곡법 개정안은 '남는 쌀 강제 매입법'이라고 지적했다. 앞서 지난달 30일 송미령 농식품부 장관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남는 쌀을 정부가 강제매수 하는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통과·시행되면 쌀의 구조적 공급과잉이 심화해 결국 쌀값 하락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불가피한 만큼 양곡법 개정안에 동의하기 어렵다"면서 "이달 말 국회 본회의 전에 양곡법 개정안에 대한 정부와 농민 등 각계각층의 의견을 국회에 공식적으로 전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양곡법은 과잉 생산된 쌀을 정부가 의무적으로 매입하는 제도며, 농안법은 쌀 등 주요 품목들의 기준 가격을 정하고 이 가격에 못 미치면 정부에서 차액을 지급해 주는 것을 골자로 한다.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은 지난달 18일 양곡법과 농안법 개정안을 국회 본회의에 단독으로 직회부한 데 이어 오는 28일 본회의 의결을 추진하고 있다. 양곡법 개정안은 지난해 4월 한차례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지만, 당시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했고 이후 진행된 국회 재투표에서 부결되면서 도입이 무산됐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올해 쌀 매입비는 약 1조2,000억원, 보관비는 약 4,000억원으로 총 1조6,000억원가량이 투입될 예정이다. 이는 흉작을 대비해 정부가 농협 등을 통해 매입해 공공비축하는 비용이다. 하지만 개정 양곡법이 시행되면 공공비축용 쌀 이외에도 초과 생산한 쌀까지 정부가 사들여야 하기 때문에 쌀 매입·보관비는 현재의 2배로 불어난다. 농식품부에 의하면 2030년 정부의 쌀 매입비는 약 2조7,000억원에 달할 전망이다. 여기에 보관비도 5,000억원을 넘어서 쌀값 안정을 위해 정부가 쌀을 사들이고 보관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만 3조원을 훌쩍 넘길 것으로 추산된다.

쌀 과잉생산은 여타 작물의 자급률 하락으로 이어져

쌀 의무매입은 쌀 과잉생산을 유발하는 데다 여타 작물로의 전환을 저해한다는 점에서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밀이나 콩처럼 수입에 의존하는 기초곡물의 경우, 쌀에 비해 상대적으로 난이도가 높고 노동력 투입이 많아 국내 생산 확대를 위해서는 수급 안정화를 위한 농가 자금 지원, 유통·소비체계 구축 등 정부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

농촌진흥청의 '2022 농작업 기계화율 조사'에 따르면 논벼 기계화율은 평균 99.3%로 100%에 육박하지만, 밭작물 기계화율은 63.3%에 불과하다. 콩은 평균 71.1%, 감자와 고구마는 각각 72.4%, 70.2%에 그쳤다. 이에 대해 농식품부 관계자는 "남는 쌀을 정부가 강제로 사들여 시장에서 격리하면 쌀 공급과잉 구조가 지금보다 심화할 것"이라며 "이는 청년 농업인과 스마트 농업육성 같은 미래 농업 발전에 대한 투자를 어렵게 만들 수 있다"고 우려했다.

기초곡물의 자급률 하락도 문제다. 지난해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유엔식량농업기구(FAO)의 농산물시장정보시스템(AMIS) 데이터베이스 자료를 토대로 산출한 최근 3개년(2020∼2022년) 한국의 곡물자급률 평균은 19.5%에 불과했다. 국내에서 소비되는 곡물 가운데 80% 이상이 외국산인 셈이다. 2015∼2017년 평균 23%였던 곡물자급률도 줄곧 내리막길을 걸어 현재는 세계 최하위 수준에 이르렀다. 곡물별로는 쌀의 식량자급률이 104.8%인 데 반해 보리쌀은 27.2%, 밀 1.3%, 옥수수 4.3%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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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량안보 경쟁력 OECD 최하위, 사들인 쌀 대부분 폐기

식량안보 측면에서도 기초 곡물의 자급률 하락은 심각한 식량 위기를 초래할 우려가 있다. 특히 최근 급격한 기후변화와 재해로 인해 안정적 곡물 수급을 담보할 수 없게 되면서 식량안보의 중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곡물의 주산지인 미국, 호주, 아르헨티나, 브라질 등이 기후변화의 영향을 받고 있고 또 다른 곡창지대인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전쟁이 시작된 이후 안정적인 곡물 거래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러시아가 지난해 7월 '흑해 곡물 수출협정'을 중단하자 항구봉쇄에 따른 수출제한으로 국제 곡물 가격이 일시 상승하기도 했다.

문제는 한국의 식량안보 경쟁력이 그리 높지 않다는 점이다. 글로벌 정치·경제 분석기관인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이 해마다 발표하는 세계식량안보지수(GFSI) 순위에서 한국은 2022년 조사대상 113개국 중 39위로 평가됐다. 10년 전에 기록한 21위보다 18계단이나 뒷걸음질 친 모습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에서도 최하위권에 해당했다. 이는 기후, 경작지 면적에서 한국보다 불리할 것으로 여겨지는 아랍에미리트, 카타르 등 걸프 지역의 사막 국가나, 영토가 좁은 도시국가 싱가포르보다도 낮은 순위다.

농식품의 '안보적' 특성상 완전 자율시장을 추구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정부의 과도한 개입에도 장기적으로 쌀값 방어에 실패할 경우 쌀 과잉공급에 따른 가격 하락이 논경작지의 급격한 감소로 귀결될 가능성이 있다. 오랜 기간 가꿔야 하는 경작지의 규모가 줄어든다면 농산물의 공급 탄력성이 매우 낮아지는 만큼, 쌀 생산이 줄더라도 경작지는 보호해야 한다. 하지만 한국의 농지면적은 이미 감소 추세를 이어가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한국의 쌀 재배면적은 2.6% 감소했으며 전체 농지면적 감소율도 연평균 1.2%에 이른다.

더욱이 쌀 수요마저 갈수록 쪼그라들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쌀 1인당 소비량은 2012년 69.8㎏에서 2022년 56.9㎏으로 11년 새 18.4% 줄어들었다. 식문화가 바뀌면서 공공비축쌀의 주요 수요처인 학교, 군부대 등 단체 급식을 하는 곳에서도 쌀보다는 시리얼, 햄버거, 피자 등 밀가루 음식이 점점 쌀을 대체하고 있다. 반면 시장격리제도를 통해 정부가 쌀 가격에 개입하면서 쌀 공급 감소는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시장격리로 사들인 쌀이 대부분 폐기된다는 점이다. 농식품부 등 자료에 따르면 정부가 시장격리로 비축한 쌀 중 7%만이 주정용이나 사료용으로 되팔리고 나머지 93%는 매몰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2017년부터 5년간의 통계를 평균한 수치로 양곡법 시행에 따라 쌀 매입에 연 2조7,000억원의 국가 재정이 투입될 경우 2조5,000억원을 회수하지 못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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