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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갈등에 레거시 반도체 집중 전략 펼친 중국, 첨단 반도체 기술력은↓
기술력 격차에 업계선 한국 의존도 확대 가능성도, "삼성·SK 매력적일 수밖에"
대중 규제 강화하는 미국, 국내 제조사에도 수출 규제 압박 강해질까
중국이 AI 반도체인 고대역폭메모리(HBM) 개발에 난항을 겪으면서 당분간은 한국 제조사인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에 공급을 의존해야 할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미중갈등에 따른 반도체 규제가 강화된 탓에 중국이 급성장한 AI 시장에 대처할 만한 부품 개발에 한계를 보인 영향이다.
레거시 반도체에 집중하는 중국
25일(현지 시각)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중국 반도체 생태계가 레거시(구형) 반도체에 특화돼 HBM과 같은 고부가 메모리 반도체를 제조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의 첨단 반도체 관련 장비 수출 규제가 심화하면서 최첨단 반도체 기술을 빠르게 따라잡는 대신 상대적으로 생산이 용이한 레거시 반도체에 집중 투자해 해당 분야를 선점하고 있단 것이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중국 기업의 세계 레거시 반도체 시장 점유율은 지난해 29%에서 오는 2027년 33%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문제는 중국이 사실상 접어둔 HBM 등 최첨단 반도체 기술의 글로벌 시장 입지가 점차 높아지고 있단 점이다. HBM은 AI 시대의 핵심 부품 중 하나다. AI 시대의 도래에 중요한 역할을 한 GPU(그래픽처리장치)에 고성능 메모리인 HBM이 탑재되기 때문이다. HBM 시장 역시 급성장하는 추세다. 미국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지난 5월 보고서를 통해 글로벌 HBM 시장이 지난해부터 오는 2026년까지 연평균 100% 성장해 300억 달러(약 41조원) 규모까지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는 지난 3월 내놨던 HBM 시장 성장 전망치보다 30% 이상 상향 조정된 수준이다.
중국도 HBM 개발 나섰으나, 격차는 여전
이렇다 보니 시장에선 중국의 레거시 반도체 집중 전략이 오히려 국가 성장의 발목을 잡고 있단 분석이 나온다. 정부 지원의 상당수가 레거시 반도체에 쏠린 반동으로 첨단 메모리 반도체 기술의 성장이 사실상 멈췄기 때문이다.
중국에도 HBM 개발에 뛰어든 기업들은 있다. 양쯔메모리(YMTC)의 자회사 우한신신반도체제조와 화웨이, 창신 메모리 테크놀로지스(CXMT)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이들의 기술력은 사실상 걸음마 수준이다. 일례로 화웨이는 푸젠진화집적회로공사 등 다른 중국 기업들과 협력해 2026년 2세대인 HBM2를 생산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는데, HBM2는 국내 제조사가 이미 지난 2016년 양산에 성공한 제품이다. 반면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는 현재 5세대인 HBM3E를 양산하는 단계에 와 있다. 기술력 격차가 심각하단 의미다.
한국 의존도 확대 전망되지만, "대중 규제에 한국 포함될 수도"
더군다나 최근엔 미 정부의 중국 규제도 강화되는 추세다. 앞서 지난 11일(현지 시각) 블룸버그는 미 정부가 대중국 AI 기술 차단 강화를 위해 GAA(게이트올어라운드) 및 HBM 등 AI 칩 제조 시 필수적인 기술을 제한하는 방안을 검토하기 시작했단 보도를 내놨다. GAA와 HBM은 미래 AI 칩 생산에 필수적인 기술로 꼽힌다. 미국이 중국을 상대로 'AI 기술 통곡의 벽'을 세우겠단 의지를 드러낸 셈이다.
이에 반도체 업계에선 당분간 중국 기업의 한국 의존도가 더욱 높아질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AI 산업에 대대적인 투자를 단행하고 있는 중국 입장에서 HBM 시장을 양분하는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의 존재는 매력적일 수밖에 없단 시선에서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은 전 세계 메모리 소비량의 약 30~35%를 차지하고 있다"며 "중국 내 AI 생태계가 성장함에 따라 한국 메모리 반도체에 더 많이 의존하는 그림이 그려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일각에선 국내 기업에 대한 미국의 규제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단 의견도 나온다. 미국이 이미 일본과 네덜란드 등 동맹국 반도체 장비 회사를 대상으로 수출 규제에 동참하란 압박을 가하고 있는 만큼, 국내 메모리 반도체 업계가 영향을 받지 않으리라 단정할 순 없단 것이다.
대부분의 주요 고객사가 TSMC에 첨단 반도체 생산을 맡기는 상황에서 대중 판매 제재가 현실화할 경우 삼성전자는 큰 잠재 시장 중 하나를 잃을 수 있다. HBM 시장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는 SK하이닉스도 마찬가지다. 그나마 SK하이닉스는 미국 엔비디아 등이 HBM을 입도선매하고 있어 타격이 있더라도 다소 제한적일 것으로 보이나, 결국 장기적으로 주요 수요처 중 하나인 중국 시장을 포기해야 한단 건 뼈아픈 일이다. 미중갈등에 한국만 피해를 보는 모습이 재차 반복될 위기에 놓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