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수정
SSG닷컴, 롯데온·11번가 이어 희망퇴직 감행
5년간 누적적자만 4,510억원, 조직 슬림화 불가피
토종 e커머스의 수익성 개선 초점 행보 지속 전망
최근 성장 둔화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토종 e커머스 플랫폼들이 잇따라 희망퇴직 카드를 내놓으며 조직 슬림화에 나서고 있다. 만성적자에 허덕이는 롯데온이 첫 희망퇴직을 실시한 데 이어 11번가와 SSG닷컴도 대대적인 조정 정비에 돌입한 모습이다. 시장에서는 수익성 악화로 고전하고 있는 토종 e커머스 플랫폼이 새로운 돌파구를 만들어내기 위한 고육지책을 택한 것으로 풀이하고 있다.
SSG닷컴, 대표 교체·본부 축소·희망퇴직 단행
9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SSG닷컴은 이달 5일 오전 사내게시판을 통해 희망퇴직을 공지했다. 근속 2년 이상인 본사 직원이 대상이다. 대상자의 근속연수에 따라 월 급여의 최소 6개월에서 최대 24개월의 특별퇴직금을 지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희망퇴직은 2019년 3월 SSG닷컴이 이마트에서 물적분할한 이래 처음이다. 이마트가 2021년 인수한 G마켓까지 포함해 신세계그룹 e커머스 부문의 첫 희망퇴직이기도 하다.
SSG닷컴의 이번 희망퇴직은 지난달 수장 교체와 조직개편 이후 첫 후속 작업이다. 앞서 모회사인 신세계그룹은 지난달 19일 수시 인사를 단행하며 SSG닷컴 신임 대표에 최훈학 전무를 앉혔다. 영업본부장을 맡아온 최 전무가 대표를 겸직하는 것이 SSG닷컴의 그로서리 부문과 물류 경쟁력 강화에 효과적이라는 판단에서다.
대표 교체와 함께 조직도 크게 슬림화됐다. SSG닷컴은 기존의 ▲D/I(Data/Infra) ▲영업 ▲마케팅 ▲지원 등 4개 본부체제를 D/I와 영업 2개 본부로 줄였다. 당시 본부장직이 없었던 지원본부는 대표 직속으로 편입되고 마케팅본부는 영업본부로 통합됐다. D/I 본부장은 기존 이마트 D/T(Digital Transformation) 총괄을 담당했던 안종훈 상무가 맡게 됐다.
SSG닷컴이 불과 한 달 만에 두 번이나 인적 쇄신작업을 단행한 건 내실 강화가 절실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실제 SSG닷컴은 몇 년째 적자의 늪에 빠져있다. e커머스 간 경쟁이 치열해진 상황에서 SSG닷컴만의 차별화된 경쟁력을 보여주지 못한 영향이다. SSG닷컴은 2019년 819억원의 영업적자를 낸 이후 최근 5년간 누적적자만 4,510억원을 쌓았다.
'영업손실' 롯데온·11번가도 희망퇴직 카드
희망퇴직 바람은 이미 롯데온과 11번가 등 다른 e커머스 업체들도 휩쓸고 지나간 바 있다. 롯데쇼핑에서 e커머스 사업을 담당하는 롯데온이 지난달 초 근속 3년 이상 직원들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받는다고 공지했다. 대상은 근속 3년 이상 직원이며 2021년 6월 7일 이전 입사자 중 재직 또는 휴직 상태라면 신청할 수 있다. 내부 심의 후 희망퇴직이 승인되면 퇴직 시 6개월 치 급여를 일시금으로 지급받거나 6개월간 유급휴직 후 퇴사하는 방식으로 처리된다.
롯데온은 2020년 4월 롯데백화점과 롯데마트, 롯데홈쇼핑, 롯데하이마트 등의 롯데그룹 유통 계열사의 온라인몰을 통합한 플랫폼으로 야심 차게 출범했다. 하지만 롯데온은 지속해서 연간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출시 첫해인 2020년 영업손실 950억원을 낸 후 2021년과 2022년 각각 1,560억원의 적자를 냈다. 지난해에도 856억원의 적자를 냈고 올해 1분기에도 영업손실이 224억원에 달했다.
롯데온은 앞서 5월에는 롯데마트몰에서 장보기 상품을 구매하면 2시간 이내에 상품을 배송해 주는 바로배송 서비스를 완전히 중단하기도 했다. 올해부터 사모펀드 전문가인 박익진 신임 대표(전 어피니티에쿼티파트너스 글로벌 오퍼레이션그룹 총괄 헤드)의 지휘 아래 수익성 개선 작업에 사력을 다하는 모습이다.
매각이 진행 중인 11번가 역시 지난해 말에 이어 올해 3월까지 두 차례나 희망퇴직을 받았다. 앞서 11번가는 지난해 12월 만 35세 이상 직원 중 근속연수 5년 이상 직원을 대상으로 1차 희망퇴직 신청을 받았다. 조건은 4개월분 급여 지급이었다. 그러나 신청자 수가 10명이 채 되지 못하면서 2차 희망퇴직 프로그램을 공지했고 지난 3월 29일까지 신청서를 접수했다. 2차의 대상자 범위는 전 사원이다. 11번가 역시 적자를 피하지 못하지 못해 인원 감축 카드를 꺼내 든 것으로 풀이된다. SK스퀘어에 따르면 11번가의 지난해 매출액은 8,655억원으로 전년 대비 10% 증가했으나 같은 기간 1,258억원의 영업손실이 발생했다.
충성고객 확보 부진 및 C커머스 공습 여파
이 같은 국내 온라인 플랫폼들의 긴축 경영은 당분간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고물가, 고금리 기조에 따른 경기 침체 장기화로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는 경향이 강해진 데다, e커머스 시장 자체도 극소수의 강자 위주로 재편되면서 업체들이 이 틈새를 비집고 들어가기 어려워진 까닭이다.
단골 고객 확보가 어려워진 업계의 상황도 긴축을 부추긴 원인으로 지목된다. 실제로 쿠팡의 김범석 의장 역시 이와 관련해 “소비자들은 모든 거래마다 새로운 ‘표’를 행사하듯 망설이지 않고 더 나은 조건을 제시하는 곳으로 이동해 돈을 쓴다”며 “우리는 모든 개별 거래에서 최적의 가격과 서비스를 제공해 그들의 표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짚기도 했다.
게다가 알리, 테무, 쉬인 등 저가 마케팅을 내세운 C커머스의 공세가 커지고 있는 점은 국내 업체들 입장에서 치명타가 됐다. 이미 성장 동력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 속에 낮은 가격대의 공산품을 선호하는 수요층을 고스란히 C커머스에 빼앗기면서 이렇다 할 활로를 모색하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아마 국내 e커머스 업체들은 C커머스의 초저가 공세에 맞대응하기엔 다소 무리라는 판단을 어느 정도 내린 것 같다"며 "업계 전반에 걸쳐 성장보다는 생존에 초점을 맞춘 경영 전략이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