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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코퍼' 구리, 中 부양책에 한 달 새 8%↑
철광석도 한 달 사이 두 자릿 수 껑충
리튬·니켈도 반등세, 글로벌 기업들 M&A 나서기도
중국 정부의 대규모 경기 부양 추진에 대한 기대감으로 철광석 등 원재료 가격이 뛰고 있다. 이에 따라 국내 조선업계와 철강업계의 후판(두께 6㎜ 이상의 두꺼운 철판) 공급 가격 협상에도 변수가 생길 전망이다.
철강석 선물 가격, 전월 比 15.58% 상승
11일 철강업계에 따르면 미국 시카고상업거래소(CME)의 8일(현지시간) 기준 철광석 선물 가격은 톤(t)당 106.3달러로 한 달 전보다 15.58% 올랐다. 2주 전인 지난달 24일(91.72달러)과 비교해도 15.9% 상승이다. 중국 대련상품거래소(DCE) 철광석 선물 가격도 8일 기준 톤당 806.5위안으로, 2주 전 680.5위안보다 18.5% 올랐다.
철광석 가격 상승은 중국이 경기부양에 나설 것이란 기대감에 따른 것이다. 중국 거시경제 정책을 총괄하는 국가발전개혁위원회의 정자제(鄭柵潔) 주임(장관급)은 지난 8일 “중앙 예산 1,000억 위안(약 19조원) 투자 계획과 1,000억 위안 건설 프로젝트를 미리 발표해 지방정부가 사전 작업을 가속하도록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총 2, 000억 위안(약 38조원)에 달하는 재정 투자로 경기 부양에 나서는 것이다.
철광석 가격은 국내 조선업계와 철강업계의 하반기 후판 가격 협상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후판은 수천억원에 달하는 선박 제조 원가의 약 20%를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크다. 조선업계는 그동안 철광석 가격의 하락세를 고려해 하반기 후판 공급 가격이 상반기 가격(통당 90만원 초반대)보다 낮아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협상 초기였던 지난 8월 중국산 철광석 현물 가격은 톤당 98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120달러)보다 쌌다.
반면 철강업계는 후판 공급가를 낮추면 수익 확보가 어려워 추가 인하는 어렵다고 맞선다. 이런 가운데 최근 철광석 가격이 오르면서 철강업계에 유리한 상황이 됐다. 이규익 SK증권 연구원은 “중국의 추가 재정정책이 나올 것으로 예상되고 본격적인 성수기 진입으로 (중국의) 철강 수요가 양호할 것”이라며 “철강 가격 강세는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라고 말했다.
구리·아연 가격도 오름세
구리를 비롯한 상품 가격도 들썩이고 있다. 엠피닥터에 따르면 8일(현지시간) 기준 런던금속거래소(LME)에서의 구리 가격은 톤당 9,816.50달러(약 1,320만원)를 기록했다. 이는 한 달 전보다 8.91% 오른 수준으로, 중국 정부가 ‘지급준비율(RRR) 인하’ 가능성을 언급한 지난달 26일에는 톤당 1만90달러까지 급등하기도 했다. 구리는 산업 전반에서 활용도가 커 세계의 공장 중국에서 원재료로 많이 쓰인다.
구리 가격은 올해 초 인공지능(AI) 시장에 대한 기대로 상승세를 보이기도 했지만, 중국 시장이 살아날 것이란 기대가 나오자 본격적인 오름세를 거듭하고 있다. 구리는 디램(DRAM) 배선이나 전선의 재료가 되기 때문이다. 같은 날 아연 가격 역시 한 달 전보다 16.19% 오른 3,154.00달러를 기록했다.
시장에서는 연초 이후 ‘금’에 집중됐던 상품 가격의 온기가 중국의 경기 부양책을 타고 원자재 시장 전반으로 옮겨갈 수 있다고 기대하는 분위기다. 세계 최대 철광석 채굴업체인 리오 틴토의 야콥 스타우스홀름 최고경영자(CEO)는 “한동안 금속시장이 악화해 왔으나 이번 중국의 부양책으로 시장이 안정을 되찾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올해 급락했던 리튬·니켈 가격도 반등 성공
올해 25% 이상 가격이 크게 떨어졌던 배터리용 핵심 광물도 가격 반등에 성공했다. 한국자원정보서비스(KOMIS)에 따르면 최근 리튬 가격은 kg당 72.5위안으로 지난달 초 69.5위안 대비 소폭 올랐다. 리튬 가격은 지난 4월 110.5위안을 기록한 이후 37.1% 급락했으나 중국 경기 부양책 발표와 함께 반등하는 모습이다. 니켈 가격도 이달 들어 톤당 1만7,600달러로 지난달 초 1만5,610달러에 비해서 12%가량 반등에 성공했다. 앞서 니켈 가격은 지난 5월 2만1,275달러의 가격 고점을 기록한 이후 지난달까지 26.63% 급락한 바 있다.
배터리 핵심 원자재의 가격이 바닥을 확인하고 반등한다는 분위기가 퍼지면서 업계 내부에서는 대규모 M&A(인수합병)도 진행되고 있다. 지난 7일 외신들은 글로벌 광산 대기업인 리오틴토(Rio Tinto)가 아일랜드에 본사를 둔 리튬생산업체 아카디움 리튬((Arcadium Lithium)의 인수를 추진한다고 보도했다. 앞서 지난 7월에도 중국 원자재 기업 창시코퍼가 캐나다 광산 기업인 퍼스트퀀텀미네랄(FQM)의 대주주 지위를 확보하는 등 M&A가 지속적으로 추진되는 모습이다.
해외 기업들이 가격 반등 초기에 대규모 투자를 진행하는 반면, 국내 기업은 아직도 투자를 줄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달 포스코퓨처엠이 중국 화유코발트와의 전구체 합작공장 계획을 철회한 것이 대표적이다. 포스코퓨처엠은 지난해 5월 화유코발트와 합작사를 설립, 2027년까지 1조2,000억원을 투자해 포항시에 전구체 및 니켈 원료 생산 공장을 건설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사업성 확보가 어렵다는 판단에 따라 투자가 중단됐다.
포스코퓨처엠이 미국 GM과 합작해 미국 현지에서 건설 중이던 양극재 공장도 완공이 차일피일 늦어지고 있다. 당초 올해 9월 완공될 예정이었으나 포스코퓨처엠은 지난달 현지 여건으로 완공 일정 조정 중에 있다고 밝혔다. 업계에서는 당장 생산력을 늘릴 필요가 없는 만큼 투자를 늦춘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에코프로비엠도 지난달 생산력 확대를 위해 추진되던 캐나다 공장 건설을 중단했다가 이달 들어서 재개한 바 있다.
원자재 업계 일각에서는 이 같은 투자 차이가 지속된다면 향후 국내 기업의 원자재 확보 경쟁력에 타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시각이다. 한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통상 국내 기업은 광물 가격이 낮아질 때 실적이 같이 악화되기 때문에 M&A에 소극적이 되지만 글로벌 기업들은 광물 가격이 바닥일 때 M&A를 진행하고 향후 광물 가격이 상승할 때 M&A 효과를 누리는 경우가 많다"며 “기존에 광물 자원을 많이 확보한 중국 등 경쟁국보다 투자도 효율적으로 하지 못하는 상황이라 따라잡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