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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 2025년 예상 회계지출 462조, 전년比 5.2% 감소
저유가 계속돼 대형 프로젝트 조달 자금 부족
국내 업계 “추가 수주 규모 적어져도 당장 큰 영향 없을 것”
천문학적인 재정이 투입되는 사우디아라비아의 네옴시티 프로젝트가 속도 조절에 들어갈 것으로 전망되면서 국내 건설업계의 이목이 사우디로 쏠리고 있다. 업계에서는 수주 후 진행 중인 프로젝트에 대해서는 큰 우려를 하지 않지만, 추가적인 수주에서 차질이 생길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사우디 예상 회계 지출 감소
10일 사우디 재무부가 발표한 2025년 회계연도 사전 예산 보고서에 따르면 사우디의 2025년 예상 회계 지출은 1조2,850억 리얄(약 462조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2024년 예상 지출 1조3,550억 리얄에 비해 5.2% 감소한 수준이다. 2025년 예상 수입은 1조1,184억 리얄로 2024년 예상 수입 1조2,370억 리얄(약 458조2,000억원) 대비 4.3% 감소했다.
사우디 정부의 예상 지출이 줄어든 데는 네옴시티 관련 예산이 대폭 삭감될 것이라는 전망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건설업계는 보고 있다. 저유가 기조가 지속되면서 사우디가 대형 프로젝트에 조달할 자금 여력이 부족해졌기 때문이다. 지난 7월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가 이끄는 정부 위원회는 네옴시티를 포함한 거대 프로젝트들에 대한 전면적 검토에 나서며 네옴시티에 당초 목표보다 20% 적은 예산이 배정될 것으로 예상했다.
더욱이 사우디는 올해 1월 이후 네옴시티 대표 사업인 더라인의 공정 속도를 늦추고 있는데, 다른 메가 프로젝트들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사우디 정부의 예산 압박으로 대형 프로젝트들의 일정이 미뤄지고 있는 것이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올해 8월 사우디의 5대 메가 프로젝트인 디리야, 네옴, 퀴디야, 로신, 홍해개발과 관련한 계약은 한 건도 낙찰되지 않았다.
달라진 사우디 현장 분위기, "사업 둔화 피부로 느낀다"
이에 업계에서는 예견된 일이었다는 평이 팽배하다. 대형 프로젝트들이 시작되는 만큼 그에 파생되는 다양한 발주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됐지만, 각종 장애물들로 인해 개발 속도가 더뎌지고 발주의 어려움이 가중되면서 현지 관계자들도 사업 둔화를 피부로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실제 한국해외인프라도시개발지원공사(KIND)에 따르면 올해 사우디 메가 프로젝트 참여사들은 올해 계약 수주가 증가했음에도 사우디의 개발 속도 지연에 대해 우려를 표명해 온 것으로 전해진다. 한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올해 초 우리나라 기업에도 속도를 늦춰달라는 요청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 같은 우려는 메가 프로젝트와 관련한 계약 수주에는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지만, 시장에서의 기대는 충족하지 못한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현재 사우디에서 활동하고 있는 현지 기업들은 올해 메가 프로젝트와 관련한 활동이 급격하게 둔화되고 있는 것을 체감하고 있다. 지난 8월 중동 전문 경제지 MEED 웨비나(온라인 세미나)에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362명 중 72%가 올해 기가 프로젝트 활동이 둔화됐다고 답했다. 활동이 증가했다고 응답한 비율은 10%에 불과했다. 앞서 올해 초 개최된 MEED 웨비나에서 설문조사 응답자의 92%가 2024년에 더 많은 수주가 기대된다고 답변한 것을 고려하면 확연히 달라진 분위기다.
사우디, FDI 통해 상쇄 노력
네옴시티는 빈 살만 왕세자가 2017년 발표한 탈(脫)탄소 국가발전 계획 ‘비전 2030′의 핵심 사업으로 꼽힌다. 사우디는 홍해와 인접한 사막과 산악지대에 서울의 44배 넓이에 달하는 2만6,500㎢ 규모로 친환경 스마트 도시와 바다 위 첨단산업단지, 2029년 동계 아시안게임이 열릴 산악 관광단지 등을 짓는다는 계획이다. 네옴에서 가장 주목받는 사업은 총길이 170㎞ 규모의 초연결 커뮤니티 벨트 조성 사업인 더라인이다. 폭 200m·높이 500m·길이 170㎞의 거대한 직선형 구조물인 더라인은 수소·태양광 등 친환경 에너지로 가동되며, 도로나 자동차가 없어 주민들은 초고속 열차와 에어택시로 이동한다.
이 같은 초대형 프로젝트를 예정대로 성사시키기 위해 사우디는 자금난을 극복하기 위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특히 부족한 자금을 외국인직접투자(FDI)를 통해 상쇄하려는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는 전언이다. 하지만 사우디의 올해 1분기 FDI는 45억 달러(약 6조원)를 기록해 연간 목표인 290억 달러(약 40조원)를 달성하는 것은 사실상 요원한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국내 건설사들은 아직은 좀 더 지켜보자는 분위기다. 네옴시티 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한 중견 건설사 관계자는 “네옴시티가 건축학적으로 불가하거나, 비효율적인 측면이 있어 투자자들은 막상 사우디 계획대로 프로젝트가 진행될 것으로 보지 않는다”며 “이런 분위기에 민관합동투자(PPP) 사업이 아니면 사우디에 투자할 건설사가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다만 그는 “그나마 인프라 사업은 건설사 투자 없이 단순 도급이나 턴키(설계·시공 일괄 진행)로 발주가 되니 그 방면으로 노력하면 결과가 나올 거라 생각한다”고 전했다.
한미글로벌 관계자 역시 “사우디가 재정을 줄이면 추가 수주를 기대했던 것들은 그 규모가 적어질 수 있을 것”이라면서도 “이미 수주한 네옴시티 건설 근로자 숙소단지 등 사업은 차질 없이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이어 “사우디가 월드컵이나 아시안게임 등 국제 대회들을 유치했기 때문에 네옴시티 외에 관련 인프라들도 수주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며 “여기서 추가 수주를 기대하는 국내 기업도 많을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