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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리인하 효과 없는 수도권 아파트, 매물 9만 건 육박
강남 3구 아파트값도 수억원씩 하락 거래 속출
돈줄 막히니 신규 전세 수요도 급감, 역전세난 재현 우려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개통 호재를 안고 신고가 행렬이 이어지던 경기 화성 동탄역과 용인 구성역 일대 아파트값 상승세가 꺾였다. 한국은행이 지난 3년여 만에 기준금리를 인하했지만, 금융당국의 강력한 대출 규제가 시행 중인 데다 시중은행의 대출금리는 되레 올랐기 때문이다. 전세를 찾는 수요도 예년에 비해 감소하면서 가을 이사철이 실종됐다는 말까지 나온다.
GTX역 인근 집값 하락세 뚜렷
22일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동탄역 인근 단지인 화성 청계동 ‘동탄역 시범한화 꿈에그린 프레스티지’ 전용면적 84㎡는 지난달 10억8,000만원(5층)에 거래됐다. 8월 같은 주택형 11층 물건이 12억6,500만원에 손바뀜한 것과 비교하면 한 달 만에 몸값이 1억8,500만원 떨어진 것이다. ‘동탄역 호반써밋’ 전용 84㎡도 동탄역이 문을 열기 한 달 전인 올해 2월 7억8,200만원(22층)에 매매됐지만, 이달엔 7억5,000만원(13층)에 거래돼 상승세가 주춤해 졌다.
‘동탄역 시범우남퍼스트빌’ 전용 59㎡는 8월 9억1,400만원(14층)에서 이달 9억2,700만원(14층)으로 소폭 올랐으나, 동탄역 개통일(3월 30일) 전후와 비교하면 열기가 한풀 꺾인 것만은 분명하다는 평가다. 용인 구성역 인근의 상황도 비슷하다. 용인 마북동 ‘블루밍구성더센트럴’ 전용 59㎡는 8월 6억9,500만원(12층)에서 이달 6억7,000만원(3층)으로 하락했다.
‘GTX 벨트’ 중 유일하게 성남역 인근은 부동산 시장 열기가 지속되고 있다. 올해 5월 12억9,000만원(10층)이던 성남 분당구 이매동 ‘이매진흥’ 전용 84㎡는 지난달 14억7,800만원(10층)에 거래됐다. 이는 올해 12월 1기 신도시 재건축 선도지구 지정을 앞두고 정비사업 기대가 반영됐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GTX역 인근 집값이 하락한 이유는 복합적이다. 당초 시장에선 GTX에 집과 목적지를 바로 잇는 지하철 역할을 기대했지만 막상 이용해 보니 주요 거점을 연결하는 데 그치는 일반 기차와 가깝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GTX를 타러 가는 데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리고, 평균 배차 간격이 20분가량 되는 것도 단점으로 꼽힌다.
냉기 도는 수도권 부동산 시장, 대출 막히자 집값 뚝뚝
더 큰 원인은 가계부채 관리를 명목으로 한 금융 당국의 대출 규제에 있다. 지난달부터 2단계 스트레스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규제가 시행되면서 주택담보대출 한도가 줄었고, 시중 은행들도 가산 금리를 올리는 등 대출 문턱을 높이자 아파트 시장이 크게 얼어붙은 것이다. 금융권에 따르면 최근 시중은행의 주담대 혼합형(고정) 금리(은행채 5년물 기준)는 연 4.150∼5.720% 수준으로, 한은이 이달 11일 기준금리를 3.50%에서 3.35%로 인하했음에도 일주일 새 금리 하단이 0.160%포인트(p) 높아졌다.
주담대의 하단이 4%를 넘어서면서 일반 급여소득자가 수억원을 대출 받아 내 집을 마련하기가 더욱 어렵게 됐다. 이와 함께 지난 3월부터 서울의 아파트 값이 가파르게 오르며 수요자들 사이에서 피로감이 조성됐다는 분석이다.
이렇다 보니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아파트 거래량도 빠르게 급감하고 있다. 국토부 실거래가 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7월까지만 해도 서울 아파트 거래량(계약일 기준)은 8,987건을 기록하며 2020년 7월(1만1,170건) 이후 3년 11개월 만에 최대를 기록했지만, 9월은 신고일이 열흘밖에 남지 않은 현재 2,730건에 그쳤다. 7월은 물론 시중은행의 대출 금리 인상으로 거래가 줄어들기 시작한 8월(6,288건)에 비해서도 절반 이하로 감소한 것이다. 10월 거래량도 현재까지 722건 신고에 그쳐 거래 침체가 이어지는 분위기다.
거래가 얼어붙으면서 서울 아파트 매물 적체 현상도 심화하는 양상이다. 부동산 빅데이터 아파트실거래가(아실)에 따르면 이달 18일 기준 서울 아파트 매물량은 8만8,635개로, 집계를 시작한 2021년 10월 1일 이래 가장 많다. 서울 25개구 중에서는 올 초부터 거래가 많았고, 상승세가 가팔랐던 마포구(9.7%), 동작구(8.8%), 성북구(8.3%), 양천구(7.5%) 등에서 매물이 빠르게 늘어난 것으로 파악됐다.
거래만 멈춰 선 것이 아니다. 가격 상승세도 꺾일 조짐을 보이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이 발표한 10월 둘째 주(14일 기준) 주간 아파트 가격 동향을 살펴보면 지난주 서울 아파트값은 전주 대비 평균 0.11% 오르며, 지난 4주간(0.23%→0.16%→0.12%→0.10%→0.10%)의 둔화세를 끝냈다. 9월 서울 아파트 실거래가 잠정지수도 -0.47%를 기록해 올해 1월부터 이어진 8개월간의 상승세를 멈추고 하락 전환할 전망이다.
집값 상승을 주도했던 '대장주' 아파트들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국토부에 따르면 지난달 30일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한양1차 전용면적 49㎡(1층)는 20억8,000만원에 거래됐는데, 이는 직전 거래가(25억7,000만원·7층) 대비 23.5%(4억9,000만원) 하락한 것이다. 같은 달 22일 강남구 도곡동 타워팰리스3차 전용 141㎡도 직전 거래(40억원) 대비 12%(4억8,000만원) 하락한 35억2,000만원에 거래됐고, 지난달 29일 서초구 서초동 삼풍 전용 130㎡ 또한 32억5,000만원(1층)에 거래되며, 전달 실거래가(36억원·9층) 대비 약 10%(3억5,000만원)가 빠졌다. 이달 송파구 가락동 헬리오시티 전용 84㎡(11층) 역시 23억3,000만원에 손바뀜되며 지난 9월 기록한 최고가(24억3,000만원) 대비 1억원 하락을 기록했다.
전세 시장도 수요 감소, 역전세난 우려 확대
금융당국과 시중은행의 돈줄 죄기에 따른 불똥은 전세시장까지 튀었다. 전세자금대출 금리가 올라 이자 부담이 커진 데다, 1주택 이상 보유자들은 아예 대출 창구가 막히면서 전세 갈아타기가 어려워진 것이다. 현지 중개업소들이 "가을 이사철이 무색하다"고 입을 모을 정도다. 실제로 추석 이후 가을 이사 수요와 겨울 신학기 수요들이 움직여야 하는 시기에 신규 전세는 거래가 크게 줄어든 모습이다. 이런 가운데 전월세 매물만 계속 쌓이고 있다. 아실 집계에 따르면 20일 기준 서울 아파트 전월세 물건은 4만9,099건으로 불과 보름 전보다 무려 11.9% 증가했다. 이는 전국에서 가장 큰 증가 폭이다.
이에 시장에서는 1∼2년 전 전세사기 사태를 촉발한 역전세난이 다시 재현되는 게 아니냐는 불안감이 나온다. 또한 전세 만기가 다가오는데 거래는 안 되니 보증금을 내줘야 하는 집주인들의 걱정도 커지고 있다. 노원구 상계동의 한 중개업소 대표는 "의정부에 집이 있는 고객이 출퇴근 문제로 서울에 전세를 얻으려다가 대출이 안 돼서 포기했다"며 "매매든 전세든 대출이 필요한 사람은 서민들인데 대출 규제로 돈줄이 막히니 결국 서민들만 피해를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