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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부터 외국인 투자 순유출 3개월째 이어져
韓 떠난 자금은 대규모 부양책 발표한 中으로 몰려
시총 1위 삼성전자 등 주요 기업 '경쟁력 약화' 원인
10월 한 달간 주요 아시아 국가 가운데 한국에서만 글로벌 펀드의 투자 자금이 유출됐다. 하반기 들어 삼성전자 등 주요 기업의 부진이 겹치면서 지난달에도 주식시장에서 55억 달러가 넘는 외국인 투자자금이 빠져나가는 등 외국인 투자자금의 순유출이 이어지고 있다. 여기에 지난달 중국이 대규모 경기 부양책을 발표하면서 아시아 신흥국 내 비중국 국가에서 중국으로 자금 리밸런싱이 일어난 것도 자금 이탈을 부추기는 원인이 되고 있다. 다만 바이오, 방산 등 일부 산업에서는 외국인 투자가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9월 외국인 주식자금 순유출 55억7,000만 달러
7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한국 증시에서 34억 달러의 글로벌 펀드 자금이 빠져나갔다. 이 기간 코스피지수는 1.43% 하락했다. 10월 한 달간 자금을 가장 많이 흡수한 나라는 중국으로 963억 달러가 유입됐다. 일본과 대만에는 각각 166억 달러, 11억 달러의 자금이 흘러 들어간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일본 닛케이225지수와 대만 자취안지수는 각각 3.06%, 2.68% 상승했다. 이 외에도 미국은 647억 달러의 자금이 들어오는 등 주요국에 글로벌 펀드 자금이 몰렸다.
특히 지난달 한국의 자금 유출에는 중국의 경기 부양책이 영향을 미쳤다. 미국의 '빅컷(기준금리 0.5%포인트 인하)' 이후 신흥국으로 자금 유입이 돼야 하는데 중국 경기 부양책이 촉발한 랠리에 글로벌 투자자금이 중국으로 간 것이다.10월 7일 블룸버그에 따르면 10월 1주 차에 아시아 증시에서 유출된 자금은 인도 32억3,500만 달러, 대만 22억7,800만 달러, 한국 9억5,400만 달러다. 중국증시로 유입된 자금은 올해 7월 이후 집계하지 않으나 아시아 신흥국 내 비중국 국가에서 중국으로 자금 리밸런싱이 일어난 것으로 블룸버그는 보고 있다.
다만 한국의 경우 지난달에만 자금 유출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9월 외국인의 국내 증권투자자금 25억3,000만 달러가 순유출됐다. 8월 36억3,000만 달러가 순유입된 것과 비교해 50억 달러 넘게 자금이 빠져나간 셈이다. 외국인의 증권투자자금이 순유출을 기록한 것은 지난해 10월 이후 1년 만이다. 주식시장만 떼어 놓고 보면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증권투자자금은 주식과 채권으로 분류되는데 이중 주식자금의 순유출 폭은 55억7,000만 달러로 지난 8월 -18억5,000만 달러에 이어 순유출이 계속됐다.
6년 새 2배 이상 늘어난 상장 주식 수도 부정적 영향
전문가들은 외국인 자금이 이탈하는 한국 증시의 상황은 기업 경쟁력 둔화에 본질적인 원인이 있다고 지적한다. 시가총액 기준으로 17%의 비중을 차지하는 삼성전자가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에서 부진하면서 시장 전체의 경쟁력이 크게 하락했고 시총 5위인 현대자동차도 자동차산업의 미래인 자율주행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면서 주가가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여기에 2차전지와 D램 반도체, 조선 등 한때 글로벌 시장을 선도했던 국내 기업들도 중국에 쫓기는 처지가 됐다.
급증한 상장 주식 수도 증시를 짓누르는 원인이 되고 있다. 지난 5일 기준 코스피지수는 0.47% 하락한 2576.88에 마감했다. 이는 2018년 초와 비슷한 수준이다. 반면 지난해 유가증권시장 상장사의 순이익은 약 81조원으로 2018년(약 36조원) 대비 2.2배로 증가했다. 상장사가 벌어 들인 돈이 두 배 넘게 늘어났지만 상장 주식 수가 너무 많이 늘어나면서 지수는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빈번한 유상증자와 주식연계채권 발행, 신규 상장이 원인으로 꼽힌다.
국장에 대한 부정적 인식도 악재로 자리 잡았다. 지난 2021~2022년 카카오페이·뱅크와 LG에너지솔루션의 '쪼개기 상장'은 소액 주주의 이익을 보호해 주지 않는다는 인식을 심어줬다. 부실 공시도 증시에 대한 불신을 키웠다. 11월 5일까지 기준 올해 불성실공시법인 지정 건수는 136건으로 전년 동기 대비 33% 급증했다. 일례로 금양은 지난 9월 '몽골 광산 개발 사업에 대한 판단 오류'라며 올해 영업이익 전망치를 1,610억원에서 13억원으로 대폭 축소했다. 주가도 고점 대비 3분의 1토막이 났다.
'고기술 저평가' 韓 바이오텍에 투자하는 해외 자본들
다만 최근에는 바이오산업이 두각을 나타내며 외국인 투자자의 관심을 끌고 있다. 이들은 일본에 비해 기술력과 산업화 성향이 강한 반면 상대적으로 저평가된 한국 기업을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최근 일본 다이와증권그룹 내 야마토기업투자의 대주주인 DCI파트너스는 자사가 운용하는 3호 헬스케어 펀드에 기존 일본과 대만에 이어 한국 기업을 물색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일본 소프트뱅크 계열 벤처캐피탈(VC)이 다양한 기업에 투자한 사례는 있지만, 헬스케어 분야만 전담하는 일본 기업이 한국에 직접 투자를 결정한 것은 사실상 처음이다.
해외 자본의 본격적인 투자 사례도 생겼다. 웨이센은 지난달 스파크랩그룹의 사우디펀드 국내 1호 투자 기업으로 선정됐다고 밝혔다. 웨이센은 지난 2월 사우디아라비아 의료전문 기업인 메가마인드와 손잡고 자사의 인공지능(AI) 내시경 제품 웨이메드 엔도를 판매하고 있다. 이어 올해 3월 사우디아라비아는 총 400억 달러의 AI 투자 계획을 발표했는데 이와 관련해 스파크랩과 손잡고 5,000만 달러 규모의 AIM-X 프로젝트를 추진한다. 이 외에도 스파크랩은 사우디아라비아 복수의 기업과 투자 관련 상담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방산주도 선전하고 있다. 올해 하반기 외국인 투자자들은 본격적인 '셀 코리아' 흐름에도 국내 방산주의 지분은 늘린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7월부터 10월 15일까지 외국인 투자자의 국내 주식 보유 비율은 12.15%에서 11.93%로 감소했으나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6.48%포인트 증가했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폴란드에 K2 전차를 수출하는 현대로템의 지분도 꾸준히 늘려 3개월여 만에 지분율을 4.48%포인트 증가한 26.11%로 끌어올렸다. 주요 방산 기업인 한국항공우주의 외국인 지분율 또한 29.95%에서 33.35%로 3.4%포인트 늘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