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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슬라, 슈퍼컴 성능 강화 위해 삼성·SK에 러브콜 공정방식 바뀌는 HBM4, 삼성 '역전' vs SK '수성' 빅테크 커스터마이징 요청에 소품종 다양화 경향
내년 하반기 세상에 나오는 6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 제품인 HBM4에 대한 빅테크의 러브콜이 이어지고 있다. 엔비디아, 구글, 메타, 마이크로소프트(MS) 등 빅테크에 이어 미국 1위 전기차 기업인 테슬라도 고객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공급 부족 여파로 물량 확보가 쉽지 않은 지금의 HBM 시장 상황(5세대 HBM3E 기준)이 6세대에도 지속될 것으로 보고, 주요 메모리업체의 HBM4 개발 현황과 공급 여력 등을 선제적으로 확인하고 나선 것이다.
HBM4 확보 나선 테슬라
19일 반도체업계에 따르면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는 최근 테슬라로부터 자체 개발한 인공지능(AI) 수퍼컴퓨터 '도조(Dojo)'에 탑재할 HBM4 공급 요청을 받고 시제품을 개발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빅테크들이 맞춤형 HBM을 주문한 것과 달리 테슬라는 범용 HBM4 공급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테슬라는 추후 시제품이 나오면 성능을 비교한 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중 한 곳을 메인 공급업체를 선정할 예정이다. 업계에서는 전기차 업체의 특성상 안전이 중요한 만큼 HBM4 패키징 성능과 안정성이 수주 성패를 가를 것으로 보고 있다.
테슬라가 HBM4 공급을 요청한 건 도조의 성능을 끌어올리려면 그에 걸맞은 고용량 메모리 반도체가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최근 테슬라는 "단순한 전기차 기업을 넘어 AI 기업이 되겠다"는 일론 머스크 최고경영자(CEO)의 뜻에 따라 도조의 성능 향상에 사활을 걸고 있다. 도조의 초기 모델에는 3세대 'HBM2E'가 들어갔지만 성능 향상을 위해 HBM4를 대규모 공급 받아 업그레이드 버전을 개발할 가능성이 크다. 이는 전기차의 자율주행 기술 고도화를 위한 전략으로 현재 개발 중인 AI 데이터센터에 사용될 가능성도 있다.
특히 테슬라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반드시 잡아야 할 핵심 고객사로 꼽힌다. 글로벌 자율주행차량 시장은 내년 209조원에서 2035년 1,347조원으로 연평균 40%씩 급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자율주행차량은 센서 데이터 처리, 실시간 의사결정 등을 위해 대규모 데이터 처리가 필수적인 만큼 시장을 주도하는 테슬라를 필두로 HBM에 대한 수요 증가가 기대된다. 테슬라는 특히 양사 경쟁을 부추겨 양사가 HBM4 적층에 적극 활용할 자체 패키징 기술을 끌어올리고, HBM 성능과 전력 효율도 극대화한다는 전략이다.
시장 선점 위한 HBM4 경쟁
업계에서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간 HBM 경쟁에서는 SK하이닉스가 한발짝 앞선 것으로 평가한다. 세계 최초로 HBM3E 양산에 성공해 엔비디아에 공급하기 시작했고 패키징, 수율 등의 측면에서 기술적 우위를 점한 것으로 보고 있다. 글로벌 투자은행 모건스탠리에 따르면 세계 HBM 시장 규모는 지난해 40억 달러(약 5조3,000억원)에서 2027년엔 330억 달러(약 44조원)로 커진다. 현재 HBM 시장은 SK하이닉스가 AI가속기 시장의 90% 이상을 점유한 엔비디아를 고객사로 확보하면서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하지만 HBM4부터는 이전 세대와 다른 공정 방식이 적용된다. HBM3E까지는 메모리업체가 그래픽처리장치(GPU)와 HBM을 연결하는 베이스다이를 만들었지만, HBM4부터는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업체와 협업해서 개발해야 한다. 공정 방식이 확 바뀐다는 점에서 HBM4는 삼성전자에는 판세를 뒤엎을 기회로, SK하이닉스에는 시장 주도권을 더욱 확고하게 움켜쥘 승부처로 꼽힌다.
현재 HBM 시장 1위를 차지하고 있는 SK하이닉스는 HBM4에서도 16단까지는 어드밴스드 MR-MUF 방식을 적용한다는 계획이다. 곽노정 SK하이닉스 사장은 "16단 제품을 시뮬레이션한 결과 HBM3E 12단보다 학습 성능은 18%, 추론 성능은 32% 향상됐다"며 "이미 12단에서 양산성이 검증된 어드밴드스 MR-MUF 방식을 계속 적용하고, 백업으로 하이브리드 본딩도 개발 중"이라고 말했다. HBM4 16단에서도 어드밴스드 MR-MUF 방식을 적용한다면 입증된 공정을 활용할 수 있기에 지금까지의 안정적인 제품 생산 토대를 가져갈 수 있다.
5세대 HBM3E 경쟁에서 한 발 늦은 삼성전자는 내년 HBM4에서 본격적인 승부를 본다는 계획이다. 삼성전자는 3분기 실적 발표에서 내년 하반기까지 HBM4 개발을 끝내고 양산까지 돌입하겠다는 구상을 밝힌 바 있다. 애초 목표인 2026년 보다 6개월 가까이 앞당겼다. HBM4에서 역전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경쟁사인 대만 TSMC와도 손잡기로 했다. 삼성이 최대 강점으로 내세우던 설계·생산·파운드리를 총괄하는 '턴키(일괄 수주)' 능력을 앞세우기보다 고객이 원하면 HBM4만 직접 설계·생산하고 베이스다이 제작은 TSMC에 맡기겠다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HBM4 역전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하이브리드 본딩 기술 도입 계획도 앞당겼다. 삼성전자는 지난 5월 논문을 통해 "16단 이상 HBM에는 하이브리드 본딩 기술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또 지난달 말 3분기 실적 발표 컨퍼런스콜에서는 “고객 맞춤형 HBM 제조와 관련, 파운드리 파트너 선정은 고객 요구를 우선으로 내·외부 관계없이 유연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HBM4에 하이브리드 본딩을 적용하는 것과 더불어 TSMC의 패키징 기술을 활용할 것을 시사한 것이다.
차세대 HBM4 시장은 '맞춤형'
최근에는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자체 AI 칩 설계를 통해 엔비디아를 견제하는 가운데, 6세대 고대역폭 메모리 HBM4 주문을 맞춤형으로 요청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주요 빅테크 기업 메타(Meta), 마이크로소프트(MS), 구글(Google)이 자사 AI 칩 경쟁력 강화를 위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각각 맞춤형 HBM4 메모리를 요구했다. 이는 엔비디아가 사실상 독점해 온 HBM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자사 AI 칩 성능을 극대화하기 위한 시도로 풀이된다.
빅테크 기업들의 이같은 요구에는 5세대 HBM3E까지 엔비디아의 기술 요구사항이 사실상 업계 표준으로 자리잡은 것이 배경으로 깔려 있다. 그간 메타,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등 주요 빅테크 기업들도 AI 칩을 선보였지만, 이들 제품은 성능 면에서 엔비디아의 AI 칩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게 평가돼왔다. 업계에서는 HBM 표준이 엔비디아의 설계에 최적화돼 다른 AI 칩 제조사들이 이와 경쟁하기 어려웠다는 분석도 따른다. 이에 따라 메모리 업체들이 엔비디아 맞춤형 HBM을 생산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6세대 HBM4부터는 상황이 반전됐다. HBM4부터는 그래픽 처리 장치(GPU)와 HBM을 연결하는 베이스 다이에 고객 요구에 맞춘 맞춤형 기능을 추가할 수 있는 로직 공정이 적용된다. 이를 통해 고객이 원하는 특정 기능을 HBM에 직접 통합하는 것이 가능해져, 커스터마이징이 용이해졌다. 메타, MS, 구글이 AI 경쟁력을 위해 HBM4에 대해 보다 높은 커스터마이징을 요구하면서 메모리 업체들도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모두 성능과 차별화된 기능을 내세워 빅테크의 선택을 받기 위해 경쟁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