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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넷플릭스와 콘텐츠 제공 파트너십 체결 국내 넷플릭스 회원에게 인기 프로그램 유통 토종 OTT '웨이브' 지분 19.8% 처분 가능성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넷플릭스가 지상파 방송사 SBS와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내년 1월부터 6년간 SBS의 드라마·예능·교양 등 프로그램을 넷플릭스에 제공하는 내용으로 넷플릭스는 지상파 콘텐츠를 확보해 한국 안방 시청자의 일상을 공략하고 SBS는 콘텐츠의 글로벌화를 기대할 수 있게 됐다. 국내 미디어 시장에도 큰 파장이 예상된다. 지상파 독점을 앞세운 토종 OTT 플랫폼 웨이브의 경쟁력 약화가 우려되는 만큼, 티빙-웨이브 통합법인의 행보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뉴스·스포츠 제외한 모든 콘텐츠 넷플릭스서 제공
30일 미디어 업계에 따르면 최근 SBS와 넷플릭스는 콘텐츠 제공과 관련한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계약기간은 2025년부터 2030년까지 6년간이며 SBS의 드라마·예능·교양 프로그램을 국내 넷플릭스 회원에게 제공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이에 따라 내년 1월부터 '런닝맨', '그것이 알고 싶다, '골 때리는 그녀들' 등 현재 방영 중인 프로그램뿐 아니라 '모래시계', '스토브리그', ' 펜트하우스' 등 과거 인기 콘텐츠들도 넷플릭스를 통해 제공된다. 이와 함께 신규 콘텐츠의 경우 넷플릭스가 소정의 제작비를 투자하고, 내년 하반기에는 신작 드라마 중 일부를 전 세계에 동시 공개하는 방식의 프로젝트도 진행하기로 했다.
넷플릭스는 양사가 공동 제작한 콘텐츠에 대해 다양한 언어 자막과 더빙을 제작하고 해외 홍보와 마케팅 활동에도 나설 계획이다. 사실상 뉴스와 스포츠를 제외한 SBS의 모든 콘텐츠를 넷플릭스에 공급하는 계약으로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전례를 찾기 어려운 파격적인 계약이다. 방문신 SBS 사장은 "이번 협약은 지상파TV를 넘어 미래로 가자는 회사의 미래 전략에 기반한다"면서 "이를 통해 시청자와의 접점을 늘리고 콘텐츠의 글로벌화에 기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넷플릭스 투자에 힘입어 올해 연간 10편 미만으로 떨어진 SBS의 드라마 제작 편수도 내년부터 최소 13편 이상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업계에서는 넷플릭스 역시 한국의 토종 OTT를 견제하면서 동시에 폭넓은 콘텐츠 확보가 가능해진 만큼 '윈윈(win-win)하는 제휴'란 평가가 나온다.
SBS, 리스크 덜기 위해 희망퇴직 단행
다만 넷플릭스와의 계약은 SBS 내부에도 큰 변화를 불러왔다. SBS는 지난 23일 희망퇴직 신청 공고를 게시했다. 이는 2021년 9월 이후 3년 3개월 만의 희망퇴직이다. 신청 대상은 만 50세 이상 직원으로 일주일간 퇴직 신청을 받은 후 다음 날인 이달 31일 인사위원회를 거쳐 신청자에 대한 퇴직 처리가 이뤄진다. 노동조합에 희망퇴직 시행계획을 사전 통지한 날을 기준으로 보면 약 보름 만에 모든 절차가 완료되는 초고속 일정이다.
이번 희망퇴직은 과거보다 실질적이고 수준 높은 보상안으로 구성됐다. 56~59세 직원의 희망퇴직금은 60세 정년까지의 기대임금 전액을, 50~55세 직원은 현 기본급의 50개월분을 지급한다. 이와 별개로 자녀 학자금, 조기퇴직 격려금, 명예승진(1개 직급) 등의 혜택을 제공하며 실업급여 수급도 가능하다. 인사팀에서 공지한 시뮬레이션을 보면 56세 직원이 대학생 자녀 1명과 고등학생 자녀 1명이 있는 경우, 희망퇴직금 약 3억8,000만원에 자녀 학자금, 조기퇴직 격려금, 실업급여 등을 포함해 총액 4억5,500만원 정도를 수령하는 것으로 제시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SBS가 넷플릭스와의 협약 체결로 내년 실적 반등이 기대되는 상황에서 적자 부담과 리스크 요인을 모두 털고 가기 위해 연내 희망퇴직 시행을 서두른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지난 6월부터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한 SBS는 올해 8년 만에 적자가 예상된다. SBS를 소유한 태영그룹의 지배권 변동 위험성이 상당한 상황에서 넷플릭스와의 '역대급 계약'으로 충분한 현금을 확보한 만큼 기업의 체질을 개선해 실적 상승을 위한 토대를 마련하겠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지상파 독점' 앞세운 웨이브, 경쟁력 약화 우려
SBS뿐 아니라 국내 미디어 업계와 OTT 시장에도 지각 변동이 불가피해 보인다. 특히 SBS가 주요 주주로 있는 토종 OTT 웨이브의 경쟁이 약화할 것이란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웨이브는 SK스퀘어와 KBS·MBC·SBS 등 주주사를 통해 성장해 왔다. 최대주주인 SK스퀘어는 40.5%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으며 KBS·MBC·SBS 지상파 3사의 지분율은 각 19.8%다. 특히 지상파 3사의 콘텐츠는 웨이브의 핵심 경쟁력으로 꼽히는데, 이번에 SBS가 넷플릭스와 파트너십을 맺으면서 웨이브의 콘텐츠 역량도 후퇴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물론 기존 콘텐츠에 대한 독점 계약이 아닌 만큼 당장 웨이브에서 철수하는 것은 아니지만, 양사의 협약에 따라 넷플릭스가 투자하는 신작드라마 등 SBS의 주요 콘텐츠를 웨이브에서 시청하지 못하게 되면 이는 SBS가 보유한 웨이브의 지분 가치가 하락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이번 SBS의 행보를 '탈웨이브, 탈지상파 전략'으로 해석하면서, 장기적으로는 SBS가 웨이브 지분을 정리하는 수순에 돌입할 것으로 점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SBS가 SK스퀘어나 CJ ENM에 지분을 매각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한다.
일각에서는 지상파 3사가 넷플릭스 같은 글로벌 OTT 플랫폼과 경쟁하는 대신 콘텐츠 영향력을 늘리는 선택지를 택하면서 사실상 웨이브 진영에서 이탈이 본격화한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최근에는 SBS뿐만 아니라 KBS가 MBC도 넷플릭스를 비롯한 글로벌 OTT와의 협력을 모색하고 있다. 일례로 MBC는 지난 22일부터 디즈니플러스와 손잡고 '무빙'을 지상파로 방송하기 시작했다. 이에 반해 웨이브는 최근 2년간 누적 적자가 2,000억원에 달하면서 콘텐츠 투자를 크게 줄인 상황이다.
업계는 이런 분위기가 내년 출범할 것으로 전망되는 티빙-웨이브 통합법인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하고 있다. 현재 티빙은 프로야구 중계, 모바일에 최적화된 숏폼(짧은 동영상) 서비스를 시작하며 넷플릭스와 경쟁 구도를 이어 나가고 있다. 여기에 합병 효과까지 더해지면 웨이브의 지상파 콘텐츠 대부분을 안정적으로 수급할 수 있게 된다. 지난 11월 기준 월간활성사용자수(MAU)는 넷플릭스가 1,160만 명으로 독주 체제를 이어가고 있으며, 티빙이 730만 명, 쿠팡플레이가 630만 명, 웨이브는 425만 명으로 그 뒤를 잇고 있다. 디즈니플러스는 260만 명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