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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아연 지배구조 개선 계획 발표
무분별 투자 사례 속속 수면 위로
MBK 기술기업 경영 능력 관련 우려도
고려아연 경영권을 두고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측과 갈등을 빚고 있는 사모펀드 MBK파트너스가 강력한 주주환원책을 꺼내 들고 본격적인 표심 얻기에 나섰다. 주식 액면분할과 자사주 전량 소각을 전면에 내세운 해당 주주환원책은 운영 체계의 투명성을 높여 불필요한 투자를 원천 차단하겠다는 내용 또한 담고 있다. 그간 불필요한 투자로 인해 증발한 기업가치만 3조원을 훌쩍 넘는다는 게 MBK 측의 지적이다.
이사회 내 내부거래위원회 권한 강화 강조
MBK는 10일 오전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고려아연의 주주가치 제고 및 지배구조 개선 계획을 발표했다. 이 자리에서 김광일 MBK 부회장은 “(고려아연 주식) 유통 물량이 대폭 줄었는데, 이를 해결하려면 유상증자가 아니라 주식 액면분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 회장 측이 2조5,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 계획을 발표했다가 철회한 것을 겨냥한 발언으로, 김 부회장은 “고려아연 이사회는 주가 불안정 해소가 목적이라며 일반 공모 유증을 시도했지만, 실질은 최 회장의 경영권 방어를 위한 것이었다”고 비판했다.
주식 액면분할을 통해 유통 주식 수를 늘려 시장의 가치발견 기능을 강화하고, 고려아연의 기보유 자기주식 253만9,726주(발행주식 총수의 12.3%)를 전량 소각하겠다는 게 MBK의 구상이다. 이에 더해 배당에 대한 예측 가능성 제고를 위해서는 배당정책 공시를 정례화하는 방안을 주주환원 정책으로 제시했다.
현재 고려아연 배당정책은 자기자본비용(COE·투자자들이 기업의 자본조달 비용과 사업의 불확실성 위험에 상응해 기대하는 요구 수익률)과 자기자본이익률(ROE) 등 두 지표를 고려해 수립한다. 김 부회장은 “고려아연의 COE는 10∼12% 수준인데, ROE는 5∼6% 정도에 그친다”고 지적하며 “ROE와 COE의 격차를 줄일 수 있도록 중장기 플랜을 개발해 이사회에서 발표하겠다”고 말했다. 또한 분리선출 사외이사(감사위원이 되는 사외이사)를 소수주주가 추천한 후보 가운데 선임할 수 있도록 하고, 사외이사 중 주주권익보호 담당 사외이사를 이사회 결의로 지정하는 ‘주주권익보호 사외이사 제도’를 도입해 주주들이 경영에 참여할 수 있는 통로를 넓히기로 했다.
이번 주주환원책의 핵심 내용인 거버넌스 개선을 위해서는 이사회 내 내부거래위원회 권한을 강화하고, 투자심의위원회와 ESG·양성평등위원회를 신설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김 부회장은 “현재 (MBK와 영풍이) 최대주주임에도 고려아연의 외부자에 머물고 있는 만큼 이사회에 들어가야 한다”며 “이사회 입성 후 이들 안건을 다각도로 검토해 정기주총이나 그다음 주총에서 통과시킬 것”이라고 강조했다.
투자 실패에 재무상태 포장 급급
MBK가 고려아연 거버넌스를 개선에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는 고려아연 이사회의 견제·감독 기능이 약화한 상태에서 최 회장 이해관계에 따라 불필요한 투자가 반복된 탓이다. MBK에 따르면 최 회장 취임 후 고려아연은 원아시아파트너스, 이그니오홀딩스, 정석기업 등에 약 1조2,000억원을 투자했다. 이로 인해 훼손된 고려아연의 기업가치는 2조5,000억원에 달한다. 여기에 자사주 공개매수로 훼손된 주주가치 9,000억원까지 감안하면 거버넌스 개선을 통해 3조4,000억원의 주주가치 제고를 기대할 수 있다는 게 MBK의 설명이다.
그간 시장에서도 고려아연의 무분별한 투자를 향한 의혹이 끊이지 않았다. 일례로 2022년 7월 고려아연이 인수한 전자폐기물 재활용 기업 이그니오는 인수 당시 자본금 106억원, 유형자산 416억원의 중견 업체였지만, 250억원 상당의 부채를 보유하고 있어 건전성은 열악한 수준으로 평가됐다. 하지만 고려아연은 미국도 아닌 프랑스에 소규모 제련소 1곳을 보유한 이그니오를 “장래성이 있다”며 무려 5,819억원을 들여 인수했다. 이그니오의 지난해 매출은 650만 유로(약 96억원)로 전년 대비 108만 유로(약 16억원) 감소했다.
고려아연은 이그니오 투자 실패가 명백한 상황에서 올해 4월 비철금속 트레이딩 업체 캐터맨의 지분 100%를 5,500만 달러(약 740억원)에 인수했다. 그런데 캐터맨의 지난해 매출은 1조6,500억원대로, 5,819억원에 인수한 이그니오의 동기 매출보다 20배가량 많다. 고려아연의 이그니오 인수가 정상적인 과정을 거쳤는지에 대한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는 지점이다. 여기에 캐터맨이 미국 JP모건체이스은행에 지고 있는 부채 2,694억원에 대한 고려아연의 채무 보증 등 인수 조건이 알려지면서 회사의 재무상태를 포장하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의구심이 불거졌다.
결국 고려아연은 이그니오 인수에 투입된 5,819억원과 캐터맨 인수액 740억원, 캐터맨 채무보증 2,694억원 등 9,200억원 상당을 해외 투자 명목으로 쏟아부었지만, 재무제표상 매출액만 과대포장 해주는 캐터맨 외에는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
국가기간산업 경영 능력엔 의구심
이처럼 시장 분위기가 최 회장에게 불리하게 흘러가는 가운데, MBK는 경영 능력 입증이라는 과제를 떠안게 됐다. MBK는 정체성이 사모펀드인 만큼 기본적으로 기업 인수 후 가치를 높여 이를 다시 매각해 수익을 실현하는 구조를 갖는다. 국가기간산업을 영위하는 고려아연을 MBK가 경영하는 것에 대한 주주들의 우려가 끊이지 않는 이유다.
심지어 최근에는 MBK의 과거 투자 실패 사례까지 재조명되며 주주들의 우려를 키우는 모습이다. MBK는 지난 2009년 철골·플랜트 기업 영화엔지니어링을 1,000억원에 인수한 바 있다. 당시 영화엔지니어링은 국내 강구조물 시공능력평가 6년 연속 1위를 기록하는 등 기술력 있는 강소기업으로 평가받았다. 하지만 MBK 인수 5년 차인 2013년부터 영업손실 111억원을 기록하며 급격하게 실적이 악화했다.
MBK는 영화엔지니어링의 우수한 기술력을 가지고도 중장기적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했고, 단기성과 및 외형 확대에만 치중했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결국 영화엔지니어링은 2016년 회생절차를 밟기 시작했고, 이듬해 496억원의 매각 대금으로 유암코에 넘겨졌다. MBK의 야심 찬 기술기업 투자는 실패로 막을 내렸다.
고려아연 역시 국가핵심기술을 토대로 기간산업을 영위하는 기술 중심 기업이다. 특히 고려아연은 시가총액은 20조원대의 대기업이기도 하다. 고려아연은 무려 25년간 99분기 연속 흑자를 기록하며 글로벌 비철금속 시장점유율 1위를 지키고 있으며, ‘트로이카 드라이브(Troika Drive)’라는 슬로건 아래 신사업 확장이 한창인 단계다.
업계 한 관계자는 “MBK는 과거 우수한 기술력을 가진 영화엔지니어링의 경쟁력을 살리지 못한 데서 알 수 있듯 업황에 대한 이해도가 다소 부족한 게 현실”이라며 “특히 장기간의 기술 축적과 지속적인 연구·개발(R&D) 투자가 필요한 중화학 업계에서는 이런 우려점이 더욱 치명적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변수는 고려아연과 유사한 사업구조를 가지고 있는 영풍이 MBK와 손을 잡았다는 점이다. 다만 영풍의 연결 기준 올해 3분기 매출액은 6,567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38%가량 줄어들며 실적이 부진한 상황이다. 당기순이익 또한 178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78% 줄었다. 동일한 경영 환경 속에서 극과 극의 성적표를 받은 만큼 MBK·영풍의 경영능력 입증 또한 쉽지 않을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