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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자체 기술 5나노로 진보할 것이란 기대 엇나가 소문과 달리 SMIC가 생산한 7나노 기린 9020 탑재 화웨이 등 中 기업, TSMC·삼성전자와 격차 벌어져
중국 최대 통신장비 업체 화웨이테크놀로지가 최근 출시한 프리미엄 스마트폰에 이전 제품과 마찬가지로 7㎚(나노미터·10억분의 1m) 공정 모바일 AP(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를 탑재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중국의 반도체 기술 발전 속도가 떨어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화웨이, 기술 개발 주춤하며 기존 설계 개선에 집중
12일(현지 시각) 캐나다의 시장조사업체 테크인사이츠는 화웨이가 지난달 출시한 '메이트70 프로 플러스(Mate 70 Pro+)'를 분해해 분석한 결과, 화웨이 자회사 하이실리콘이 설계하고 중국 최대 파운드리 업체인 중신궈지(中芯國際·SMIC)가 생산한 7나노 공정 프로세서 '기린 9020'이 탑재된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기린9020은 화웨이가 지난해 출시한 메이트 60 시리즈에 탑재된 기린 9010과 비교해 기능 일부가 개선됐으나 일각의 예상과는 달리 획기적 진전은 보이지 못한 것이라고 테크인사이츠는 평가했다.
테크인사이츠에 따르면 메이트70 시리즈 개발 초기 소문에는 5나노 공정의 기린9100이 탑재될 것으로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이전 모델서에서 점진적으로 개선된 제품을 사용한 것은 화웨이가 현재 SMIC의 역량을 활용하면서 기존 설계의 개선에 집중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실제로 다만 기린9020을 기린9010과 비교하면 회로 평면도에서 눈에 띄는 변화가 있었는데 이러한 수정은 SMIC의 7나노 공정과의 호환성을 유지하면서 성능과 효율성을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한다.
블룸버그통신은 "세계 1위 반도체 파운드리 기업인 대만 TSMC가 7나노 칩을 처음 출시한 시기는 2018년으로 현재 화웨이의 기술은 TSMC에 5년 정도 뒤쳐진 것"이라며 "지난해 진일보한 기술력으로 미국의 기술 산업계를 경종을 울렸던 메이트60 프로와 달리 메이트70 시리즈는 화웨이가 연내 5나노 기술을 갖출 것이란 시장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로이터통신는 화웨이의 기술 발전이 늦어지는 원인에 대해 "미 행정부의 대중국 규제 강화로 ASML의 최신 장비를 사용하지 못하면서 칩 성능과 수율 개선 등에 제약이 있다"고 설명했다.
中 정부 '반도체 굴기', 레거시 등 기술 독립 가속화
앞서 2022년 10월 미 상무부는 16나노 이하 시스템 반도체, 18나노 이하 D램, 128단 이상 낸드플래시 생산 장비에 대한 대중국 수출 규제를 발표했고 이후 일본과 네덜란드의 동참을 이끌어 냈다. 하지만 미국의 제재에도 불구하고 올해 8월 화웨이와 SMIC는 메이트60 프로에 첨단 미세공정으로 분류되는 7나노 칩을 탑재하면서 자체 기술력으로 생산능력을 향상시킨 사실을 전 세계에 알렸다. 이 시기 중국 관영매체인 베이징 위성TV도 샤오미가 중국 최초로 최첨단 공정인 3나노 칩의 설계를 마치고 양산 전 단계인 테이프아웃에 성공했다고 보도했다.
당초 7나노 칩이 탑재될 것으로 예상됐던 메이트70 시리즈 역시 미 정부의 재제 조치 영향에서 벗어나기 위해 구글 안드로이드 생태계와 결별을 고하고, 메이트70 시리즈에 자체 개발한 토종 운영체제(OS) '홍멍(鴻蒙·Harmony) OS 넥스트(이하 하모니 넥스트)'를 탑재했다. 하모니 넥스트는 하모니 OS의 다섯 번째 업그레이드 버전으로 안드로이드 오픈소스 코드에서 벗어난 최초의 완전한 독립 운영 체제다. 화웨이는 하모니 넥스트가 애플 iOS와 구글 안드로이드를 잇는 세 번째 주요 모바일 운영체제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미국의 대중국 제재가 오히려 중국의 기술 굴기를 촉발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중국은 첨단 장비 조달이 제한된 상황에서 28나노 이상의 레거시 반도체 분야에 주력했다. 그 결과 레거시 반도체 부문에서 중국의 생산능력 비중은 오는 2028년 32%까지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수백 개의 중국 반도체 관련 기업들은 주요국과의 기술 격차를 줄이기 위해 공동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중국 정부 역시 막대한 보조금을 제공하며 반도체 부품과 주요 장비의 국산화율 제고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美 대중국 수출 규제 속에 최신 장비 확보에 어려움
다만 인공지능(AI)를 중심으로 첨단 반도체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는 상황을 고려할 때 화웨이, SMIC 등 중국 기업의 경쟁력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중국 내부에서도 자국의 반도체 산업이 레거시 반도체에 대한 매출 의존도가 높은 구조로 향후 미국의 제재로 첨단 반도체 분야 제조 경쟁력이 뒤쳐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지난달 자오하이쥔 SMIC 최고경영자(CEO)는 "AI와 연관된 레거시 반도체를 제조할 수는 있지만, 제조 공정에 대한 제재로 그래픽처리장치(GPU)와 같은 경쟁력 있는 제품을 만들 수는 없다"며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런정페이 화웨이 창업자도 "화웨이는 미국의 제재로 경쟁사들이 사용할 수 있는 더 나은 칩과 기술에 대한 접근성이 부족하다"며 "AI는 멈출 수 없는 흐름이지만,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다고 확신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화웨이는 스마트폰 시장에서 애플, 삼성전자와 경쟁하고 있지만 ‘스마트폰의 두뇌’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의 성능은 글로벌 스마트폰 제조기업의 제품과 비교할 때 뒤처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미국의 수출 통제에 첨단 장비 활용이 불가능해지자 차세대 AP 개발 및 생산 난도도 치솟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화웨이의 스마트폰은 애플과 삼성전자가 프리미엄 스마트폰 모델에 TSMC 3나노 공정을 통해 양산된 칩을 적용하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첨단 분야 기술 격차가 벌어지고 모습이다. 업계에서는 아직 SMIC 5㎚ 공정의 수율이나 성능이 아직 안정화되지 않았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이 같은 공정을 무리해서 사용하게 되면 화웨이나 SMIC 입장에선 막대한 손실을 치를 수밖에 없다.
SMIC가 첨단 공정의 필수 장비인 극자외선(EUV) 노광 장비를 활용하지 못하면서 제조 비용이 치솟자, 화웨이 AP를 대량 생산했음에도 지난 1분기 SMIC의 순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70% 가까이 줄었다. 대만 디지타임스 등에 따르면, 화웨이가 탑재할 AP 신제품 가격도 최대 185달러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TSMC 4㎚ 공정을 활용해 제조된 퀄컴의 스냅드래곤 8 3세대 가격과 유사한 수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