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수정
캐나다, 미국에 전기공급 중단 검토했지만 가뭄 탓에 미국산 전기가 경쟁력 우위 확보 관세 위협 '최후 수단'으로 원자재 수출세 검토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미국 우선주의'가 강화될 전망인 가운데, 캐나다 정부의 협상력이 약해질 것이란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디지털화와 제조업의 리쇼어링(해외 진출 기업의 국내 복귀)에 따른 전력 수요 급증이 가뭄으로 인한 전력 공급 감소와 맞물리면서 미국과의 무역 관계를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에 막대한 전기 수출량을 무기로 트럼프 2기 내각과의 무역 협상에서 우위를 점하려던 구상에도 차질이 불가피한 실정이다.
캐나다, 가뭄 등 이상 기후에 수력 발전량 급감
2일(현지시간) 미 에너지정보청(EIA) 자료에 따르면 캐나다는 2023년 9월에서 2024년 6월 사이의 기간 동안 미국으로부터 상당량의 전력을 수입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앞서 약 20년 간 미국에 초과 전기를 수출해 오던 추세가 반전된 것이다. 이는 세계 3위 수력 발전국인 캐나다에서 최근 가뭄 등으로 인해 수력 발전량이 급감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됐다. 캐나다의 공식 가뭄 모니터에 따르면 퀘벡, 브리티시컬럼비아, 매니토바와 같은 주요 수력 생산 주에서는 매우 심각하거나 중간 강도 이상의 가뭄을 겪고 있다.
미국 역시 지난해 수력 발전량이 2001년 이후 가장 적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다만 EIA는 "미국의 경우 천연가스 가격 하락으로 전기료가 낮아졌고, 이 덕분에 미국산 전기가 (캐나다산 전기에 비해) 더 경쟁력을 갖게 됐다"고 설명했다. 실제 캐나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3년 캐나다의 전기 생산량은 전년 대비 3.9% 감소해 2016년 이후 최저치인 6억1,530만 메가와트시(MWh)에 머무른 것으로 나타났다.
이 때문에 2023년 미국의 캐나다로의 월평균 전력 수출량은 전년 대비 70% 증가한 1,809기가와트시(GWh)에 달했다. 반면 캐나다에서 미국으로의 월평균 전력 수입량은 36% 감소한 3,315GWh였다. 2023년 한 해 동안 미국은 여전히 캐나다산 전력의 순수입국이었지만, 총 수입량은 2022년 42테라와트시(TWh)에서 2023년 15 TWh로 급격히 감소했다. 같은 기간 대미국 전기 수출에 의한 수입(Income)도 32억 달러에 불과했다. 이는 전년보다 약 30% 급감한 수치다. 이에 반해 미국의 캐나다향(向) 전기 수출 규모는 4억5,450만 달러 증가해 지난해 12억 달러에 달했다.
'관세폭탄' 대항 무기 사라질까 우려
이를 두고 캐나다 싱크탱크들은 트럼프 당선인의 귀환으로 캐나다가 미국에 대해 최대한의 협상력을 갖춰야 하는 시기에 무역 협상을 복잡하게 만들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실제 캐나다는 트럼프발 관세를 피하기 위해 장관들을 미국에 보내는 등 트럼프 측과 협상을 이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앞서 트럼프 당선인은 캐나다와 멕시코가 미국으로 유입되는 불법 이민과 펜타닐을 막기 위해 국경을 더 통제하지 않으면 25%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협박했다.
트럼프의 도발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지난달부터 트럼프는 캐나다를 미국에 편입해야 한다는 뜻을 지속해서 드러내고 있다. 트럼프는 자신의 소설미디어(SNS) 트루스소셜에 “왜 미국에서 연간 1억 달러가 넘는 보조금을 캐나다에 지원하는지 아무도 대답할 수 없느냐, 말이 안 된다”면서 “많은 캐나다인은 캐나다가 (미국의) 51번째 주(州, state)가 되길 원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들은 세금과 군사 보호 비용을 크게 절약할 수 있다. 대단한 아이디어라고 생각한다”며 “51번째 주!”라고 덧붙였다.
뿐만 아니라 지난달 2일(현지시간)에는 소셜미디어에 자신이 거대한 캐나다 국기 옆에 서서 캐나다의 상징인 로키 산맥을 바라보는 장면을 그린 AI 이미지를 게시하면서 별다른 설명 없이 “오 캐나다!”라는 한 줄짜리 글을 적기도 했다. 해당 글은 앞서 트럼프가 자신을 만나러 온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와 만찬에서 관세를 감당하기 어려우면 캐나다가 미국의 51번째 주가 될 수 있다는 위협 섞인 농담을 한 다음날 게재됐다. 당시 만찬에서 트뤼도 총리는 관세 부과는 캐나다 경제를 완전히 죽여놓을 것이라고 호소했지만, 트럼프는 “캐나다는 미국으로부터 무려 1,000억 달러(약 147조원)를 뜯어내지 못하면 살아남지 못한다는 뜻이냐”며 "그렇다면 미국의 51번째 주가 돼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결국 캐나다는 6년간 13억 캐나다 달러(약 1조3,000억원)를 추가로 투입해 국경 보안을 개선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으며 트럼프 정책에 보조를 맞췄다.
美 수출 비중 큰 원자재에 '수출세' 검토 반격
다만 캐나다가 트럼프의 도발에 모두 수용으로 대응한 것은 아니다. 캐나다 정부는 트럼프의 관세 부과 위협에 미국에 수출하는 원자재 일부에 대한 '수출세 부과' 카드를 검토 중이다. 미국이 캐나다산 원자재 의존도가 크다는 점을 이용해 미국의 약점인 '인플레이션(물가상승률)'을 겨냥한 반격을 고려하고 있는 셈이다. 캐나다 정부 한 관계자는 "캐나다는 트럼프의 본격적인 무역전쟁 시작에 미국 소비자, 농민 및 기업의 비용을 증가시키실 수 있는 상품 수출세로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블룸버그통신은 "캐나다는 미국의 주요 석유 공급국으로, (미국의) 일부 정유업체들은 저렴한 캐나다산 석유에 의존하고 있으며 이에 대한 대안은 거의 없다"면서 "(캐나다의 수출세 부과가 시행되면) 미국 중서부 지역은 비용 상승으로 큰 타격을 입게 될 것"이라고 관측했다. 현재 미 중서부 지역의 연료 제조업체들은 휘발유와 경유를 만드는 원유의 절반 이상을 캐나다로부터 공급받고 있다. 캐나다산 우라늄 역시 미국 원자력 발전소의 주요 연료며, 칼륨은 미국 농장의 거대한 비료 공급원이다.
미국은 그간 중국 공급망 의존도를 낮추고자 캐나다산 원자재 비중을 늘렸다. 미 국방부는 코발트와 흑연 공급원 확보와 중국 의존도 탈피를 위해 캐나다 원자재 프로젝트에 투자하기도 했다. 이를 근거로 일각에서는 차기 트럼프 행정부의 캐나다 추가 관세 대상이 원자재 제외 제조업체 집중될 거란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美와 새로운 양자협정 추진, "親中 멕시코는 빼자"
한편 캐나다 정부는 트럼프 2기 행정부와의 미국·멕시코·캐나다협정(USMCA) 재협상에서 ‘멕시코 배제’ 카드도 준비하고 있다. 친(親)중국 행보를 보이는 멕시코를 제외하고 트럼프 행정부와 독자적 거래를 추진한다는 구상이다.
USMCA는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대체해 2020년 발효됐다. USMCA는 6년마다 협정 이행 사항을 검토하게 돼 있고, 오는 2026년에 첫 시점이 도래한다. 이에 내년 재협상을 앞두고 트뤼도 총리 등 캐나다 지도부는 트럼프에게 새로운 협정을 체결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산 제품이 멕시코를 통해 미국과 캐나다로 유입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캐나다 정부 관계자들은 “해당 제품들이 북미 자유무역지대로 우회하지 않았다면 캐나다와 미국에서 높은 관세를 부과받았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트뤼도 총리도 “최근 브라질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때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멕시코 대통령에게 이 문제를 직접 제기했다”고 밝혔다. 그는 “중국이 멕시코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는 데 심각한 우려를 나타냈다”며 “이상적으로는 통합된 북미 시장으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하지만, 멕시코가 내린 결정과 선택에 따라 다른 옵션을 고려해야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멕시코가 중국과 무역 및 투자 협업을 지속할 경우 3각 구도에서 멕시코를 고립시키겠다는 의미로, 북미 무역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트럼프 2기 내각과 더 긴밀한 관계를 구축하려는 캐나다의 복안이 여실히 드러나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