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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 병자 일으켜 세운 밀레이의 '전기톱 개혁', IMF도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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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차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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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든 아르헨티나 경제 '대수술'
인플레 주범 정부 지출 '싹둑'
적자였던 무역수지, 1년 연속 흑자

‘남미의 병자’로 불리던 아르헨티나가 하비에르 밀레이(Javier Milei) 대통령 취임 1년 만에 체질 개선에 성공했다. 퍼주기 정책으로 고질적인 채무에 시달리던 아르헨티나가 포퓰리즘 척결을 내세운 밀레이 대통령 집권 이후 빠른 속도로 재정 건전성을 회복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IMF 총재 아르헨 정부 극찬 "최근 가장 인상적인 사례 중 하나"

13일(현지시간) 아르헨티나 현지 매체에 따르면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Kristalina Georgieva)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10일 아르헨티나의 경제 개혁을 언급하며 “최근 역사에서 가장 인상적인 사례 중 하나”라고 극찬했다. 이어 "많은 국가에서 공공 정책의 변화를 살펴볼 수 있었는데, 아르헨티나 정부가 시행한 조치가 큰 영향을 미쳤다"고 강조했다.

IMF 총재의 극찬은 밀레이 정부가 IMF로부터 110억 달러(약 16조2,000억원) 상당의 신규 자금 지원을 희망하는 가운데 이뤄졌다. 지난해 5월 아르헨티나는 IMF의 신규대출을 확보하지 못했다. 밀레이 대통령은 아르헨티나의 경제 위기가 자본 통제, 산업 정책, 무절제한 정부 지출 등에서 비롯된 만큼 기업 친화적인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선 추가 자금이 필요하다는 입장이었지만, IMF 이사회는 이를 승인하지 않았다.

현재 아르헨티나는 IMF의 최대 채무국으로, 400억 달러(약 59조원)를 상환해야 한다. 2018년 당시 전 중도우파 마우리시오 마크리 정부는 IMF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인 440억 달러(약 64조9,000억원)의 차관을 지원받았다. 이런 가운데 밀레이 정부는 2018년 지원받은 차관 상환 프로그램의 재협상도 희망하고 있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이미 2022년 관련 차관의 재협상을 한 바 있다.

하비에르 밀레이 아르헨티나 대통령/사진=게티이미지뱅크

밀레이 대통령, 1년 만에 개혁 성공

아르헨티나 경제는 재정적자와 살인적인 인플레이션, 바닥을 기는 페소화 가치로 만신창이였다. 1944년부터 2023년까지 물가는 연평균 190% 상승했고, 정부는 무려 아홉 차례 채무불이행(디폴트)를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지난 10년동안 1인당 국민소득은 10.4% 뒷걸음쳤고, 신용도 하락으로 비싼 이자를 줘야만 겨우 국제금융시장에서 돈을 빌릴 수 있었다.

페소화 가치는 땅에 떨어지고, 정부가 정한 공식환율과 시중환율이 큰 차이가 있는 이중환율제가 일상화됐다. 이전 좌파 정부는 가격 및 자본 통제, 수입 수량 제한, 수출세 등으로 대응했으나 상황을 악화시킬 뿐이었다. 이렇게 암울했던 아르헨티나에 희망의 빛이 든 건 밀레이 정부의 출범 이후다.

자유주의 경제학자 프리드먼을 존경한 밀레이는 전기톱으로 규제를 쓸어버리겠다며 강도 높은 개혁에 착수했다. 의회와 충돌하면서도 경제조정법안을 통과시키고 연료·교통 보조금 삭감, 은퇴자 연금 동결, 생필품 가격통제 폐지, 대학 재정지원 축소 등을 단행했다. 정부 부처 수를 18개에서 9개로 축소하고, 7만 명의 공무원도 줄였다. 법정 공식 환율과 암시장 환율 격차 해소를 위해 달러당 페소화 가치도 50% 이상 평가절하했다. 비효율 국영 기업을 민영화하고 노동·연금·교육개혁에도 나섰다.

그 결과 2023년 11월 55억9,000만 달러(약 8조2,000억원) 적자였던 아르헨티나 무역수지는 같은 해 12월 102억 달러(약 15조원) 흑자로 전환했다. 이후 지난해 11월까지 1년 연속 무역수지 흑자를 거뒀다. 물가상승률은 지난해 11월 2.5%까지 낮아졌고, 국가 디폴트 위험성을 나타내는 아르헨티나 신흥국채권지수(EMBI)도 2023년 말 2,500대에서 이달 6일 444로 떨어졌다.

빈곤율 치솟는데 증시는 상승, 혼돈의 아르헨 경제

문제는 재정에 좋은 정책은 경기엔 매우 치명적이란 데 있다. 실제 아르헨티나 개혁 과정에서도 빈곤율이 급등하는 부작용이 있었다. 서민층을 대상으로 지급하던 교통비·에너지 등 보조금이 사라지고 정부 일자리도 줄어들면서다. 특히 밀레이 정부의 강력한 긴축 정책은 현재 아르헨티나 중산층을 덮치고 있다. 지난해 상반기 아르헨티나 빈곤율(중위 소득의 50% 이하 비율)은 무려 53%로, 이는 지난해 말보다 11%포인트 높아진 수치이자 20년 만에 최고다.

아르헨티나는 ‘중산층 국가’라는 자부심이 큰 나라였다. 남미에선 드물게 소득분배가 균등한 편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한때 중산층이었지만 이젠 일자리를 잃거나 실질 급여가 삭감된 이들이 당장 먹고살 걱정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소고기 천국이던 아르헨티나에서 소고기 소비량(1인당 연 44.8㎏)이 지난 100년 중 최저로 떨어졌을 정도다. 의류·연료는 물론 식품·의약품 같은 필수품까지, 거의 모든 소비가 급감했다. 특히 주류와 화장품 판매는 1년 새 20%, 가전제품은 30% 넘게 쪼그라들었다.

아이러니한 부분은 경기가 극심한 침체의 늪에 빠진 지금, 아르헨티나에서 증시는 회복하고 있다는 점이다. 부에노스아이레스 거래소의 주요 21개 종목을 담은 메르발(MERVAL) 지수는 밀레이 대통령 취임일 대비 203% 올랐고, 아르헨티나 관련 지수를 추종하는 상품인 글로벌X MSCI 아르헨티나 ETF(티커 ARGT)의 지난해 수익률은 31%에 달한다.

특히 은행주는 훨훨 날고 있다. 그동안 아르헨티나는 높은 금리로 인해 은행 대출을 받으려는 수요가 없었는데, 이제 물가상승률이 구조적으로 낮아지면서 기준금리가 내려가는 추세에 접어들자, 투자자들이 은행주에 베팅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지금 당장은 아르헨티나가 고통의 터널을 통과하는 중이지만 그 뒤엔 V자형 경제회복이 기다리고 있다고 보는 낙관론이 금융시장에 퍼져있는 셈이다. 이는 곧 밀레이 대통령의 목표기도 하다. 그는 올해 경제성장률은 5%로 전망하고 있는데, 밀레이 대통령의 말대로 된다면 전 세계가 찬탄할 만한 기적적 턴어라운드로 기록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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