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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TI 78.82달러, 브렌트 81.01달러 美 대러시아 신규 제재 여파에 급등 중국·인도 대체 수입처 찾아야
국제유가가 5개월 만에 최고치를 또다시 갈아치웠다. 러시아 석유회사는 물론, 러시아산(産) 석유를 몰래 수송해 오던 유조선들에 대한 미국 정부의 제재 여파가 식지 않고 있어서다.
러시아 석유 제재 여파 지속
13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상업거래소에서 2월 인도분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는 배럴당 78.82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전 거래일보다 2.25달러(2.9%) 오른 수준으로, 지난해 8월 12일 이후 5개월 만에 가장 높다. 3월 인도분 브렌트유도 배럴당 81.01달러로 1.25달러(1.6%) 뛰었다. 브렌트유 역시 지난해 8월 26일 이후 최고치다.
국제유가는 이달 10일 미 재무부가 제재를 발표한 이후 계속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제재 대상에는 가즈프롬 네프트(Gazprom Neft)와 수르구트네프테가즈(Surgutneftegaz)와 같은 생산업체뿐 아니라 러시아산 원유를 다른 나라로 수출해 온 이른바 ‘그림자 함대’ 유조선 183척 등이 포함됐다. 제재 대상 선박들은 하루에만 러시아 전체 수출 물량의 25%를 차지하는 170만 배럴의 원유를 운송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함께 러시아 내 선박 보험회사와 몇몇 관료, 트레이더 등의 이름도 올랐다.
EU도 러시아 추가 제재 합의
미국의 이번 대러시아 제재는 도널드 트럼프 차기 행정부 관료들이 향후 몇 달간 이란으로부터의 원유 공급 억제를 강화할 것이라는 추측 등으로 유가가 연초 상승세를 보이던 시점에 나온 터라 시장이 더욱 민감하게 반응한 것으로 분석된다. 북반구의 난방수요 증가도 유가 상승세를 부추겼다. 이에 골드만삭스를 비롯한 주요 분석기관은 추가 상승을 점치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러시아산 원유의 공급 위축을 유발하는 미국 조치에 따라 브렌트유 가격이 배럴당 최고 85달러 수준으로 올라갈 수 있다”고 예상했다. 미국에서 시작한 글로벌 관세전쟁이 본격화하는 한편 인플레이션과 강달러 기조가 맞물릴 경우 유가가 가파르게 상승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지난달 유럽연합(EU)이 러시아산 원유 수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추가 제재에 합의한 것도 국제유가를 끌어올린 요소로 꼽힌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지난달 11일 EU 회원국 대사들은 우크라이나와의 전쟁과 관련해 러시아에 대한 15차 제재 패키지에 합의했다. 당시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Ursula Gertrud von der Leyen) EU 집행위원장은 "러시아의 그림자 함대를 겨냥한 15번째 제재 패키지 채택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시장은 러시아산 석유 흐름을 제한하는 EU의 제재가 시행된다면 석유 공급이 더욱 제한될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印·中 수요, 중동·미국으로 향할 전망
미국과 EU가 대러시아 석유산업 제재를 강화하면서 중국과 인도는 비상등이 켜졌다. 그동안 값싸게 러시아산 원유를 들여온 양국은 대체 수입처를 찾아야 하는 상황에 내몰렸기 때문이다. 러시아산 석유 무역은 서방의 제재와 2022년부터 적용된 주요 7개국(G7)의 러시아산 원유 가격 상한제로 인해 유럽에서 아시아로 이동했고, 많은 유조선이 인도와 중국으로 석유를 운송하는 데 사용됐다.
실제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지난해 1~11월 인도의 러시아산 원유 수입량은 전년 동기 대비 4.5% 증가한 176만4,000배럴로, 인도 전체 수입량의 36%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중국의 수입량은 파이프라인 공급을 포함해 전년 동기 대비 2% 증가한 9,099만 톤에 달하며 전체 수입량의 20%를 차지했다.
로이터통신은 이 같은 인도와 중국의 수요가 중동 및 미국으로 향할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로이터는 "러시아 석유 업체와 유조선에 대한 미국의 새로운 제재로 인해 러시아의 주요 고객인 중국과 인도의 정유업체는 중동·아프리카 및 미국에서 더 많은 석유를 조달할 것"이라며 이것이 석유 가격과 운임 비용을 높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인도의 한 정유업계 관계자도 "중동산 원유를 사용하는 것 외에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며 "미국산 원유를 찾아야 할 수도 있다"고 매체에 전했다.
오닉스캐피탈그룹의 해리 칠링구이리안 연구 책임자 역시 "러시아산 원유의 주요 수입처인 인도 정유사들은 중동 및 브렌트유 관련 대서양 유역 원유에서 대체재를 찾기 위해 분주히 움직일 것"이라며 "중국도 중동산 중질유에 눈을 돌릴 것이고, 트랜스마운틴 파이프라인을 통한 캐나다산 원유 수입을 극대화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