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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송파 291곳, 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 은마아파트 등 재건축 단지 14곳 규제 유지 시장 왜곡 해소에도 가격 상승 우려 여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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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가 재개발·재건축 사업지만 남기고 토지거래허가구역 규제를 대거 해제했다. 이번 조치로 강남구 삼성·대치·청담동과 송파구 잠실동의 아파트 291곳이 4년 8개월 만에 규제 지역에서 풀려났다. 이에 일각에서는 규제가 풀려 갭투자 수요 등이 몰리면 강남권을 중심으로 아파트값이 다시 상승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 4년 8개월 만에 규제 해제
12일 서울시는 도시계획위원회를 열어 삼성동 코엑스 주변과 잠실 종합운동장을 잇는 국제교류복합지구 인근 4개 동(잠실·삼성·대치·청담동)의 아파트 305곳 중 291곳의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을 해제하는 '토지거래허가구역 조정안'을 승인했다고 밝혔다. 조정안은 13일 공고 즉시 효력이 발생한다. 규제 지역으로 지정된 지 4년 8개월 만이다. 이날 신속통합기획 재건축·재개발 사업지 123곳 중 정비구역 지정 후 조합 설립인가까지 마친 6곳도 토지거래허가구역에서 해제됐다.
토지거래허가제는 토지 투기와 지가 급등을 막기 위해 지정 구역 내에서 일정 규모 이상 집이나 땅을 거래할 때 관할 기초자치단체장의 허가를 받도록 한 제도로 토지공개념을 기반으로 도입됐다. 주택은 2년간 실거주 목적 매매만 허용하기 때문에 전세를 끼고 집을 매수하는 갭투자가 불가능하다. 서울시는 "최근 부동산 거래가 하향 안정화에 접어들었다고 판단해 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 결단을 내렸다"며 "이번 조치를 시작으로 조합 설립 인가 여부에 따라 2027년까지 총 59곳에 지정된 토지거래허가구역을 순차적으로 풀 방침"이라고 밝혔다.
다만 잠실·삼성·대치·청담동의 재건축 아파트 단지 14곳은 투기 수요가 몰릴 우려가 있어 해제 대상에서 제외했다. 개포우성1·2차, 선경, 미도, 쌍용 1·2차, 은마아파트(이상 대치동), 진흥아파트(삼성동), 현대1차아파트(청담동), 주공5단지, 우성 1·2·3·4차, 아시아선수촌 아파트(이상 잠실동)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강남구 압구정동, 양천구 목동, 영등포구 여의도동, 성동구 성수동 등 주요 재건축·재개발 구역과 투기과열지구(강남·서초·송파·용산구) 내 신속통합기획 대상지, 공공 재개발 34곳에 지정된 토지거래허가구역도 현행 규제를 유지하기로 했다.
재산권 침해·풍선효과 등 실효성 문제 제기
서울시의 이번 결정은 토지거래허가제를 두고 제기된 그간의 논란을 반영한 조치다. 지난해 서울시의 연구 용역 결과를 보면 토지거래허가제 시행 후 단기적으로는 부동산 거래량이 줄고 가격을 안정화하는 효과가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효과가 점차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남준 서울시 도시공간본부장도 "초기에는 상당히 도움이 됐지만 장기화하면서 생활 불편은 커졌고 정상적인 부동산 거래를 억압했다"며 "실질적인 효과는 2~3년이면 사라진다고 보고 규제를 지속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번에 규제가 해제된 지역에서도 제도의 실효성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지난 2020년 6월 서울시는 삼성동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 일대 개발로 인한 투기를 우려해 잠실·삼성·대치·청담동을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했다. 하지만 GBC를 비롯한 국제교류복합지구의 개발이 지연되자 해당 지역 주민들은 토지거래허가제가 재산권이 침해하고 있다고 반발했다. 같은 강남권에서도 토지거래허가제의 적용을 받지 않는 서초구 반포 일대 집값이 폭등하면서 풍선효과가 나타났다는 지적도 나왔다.
규제 지역의 거래 위축 역시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실거주 의무, 종전 주택 처분 등으로 인해 진입 장벽이 높아 거래 자체를 위축시키는 부작용을 초래했다는 지적이다. 국토부에 따르면 청담동의 월평균 거래량은 지정 전 26.25건에서 지정 후 8.33건으로 68% 감소했다. 잠실동도 같은 기간 277.83건에서 44.92건으로 84%나 줄었다. 실거주 의무 조건으로 전세 물량이 감소하면서 전셋값도 올랐다. 청담동의 아파트 전셋값은 2019년 1.46%에서 2020년 18.08%로 올랐고 대치동(7.17%→27.21%), 삼성동(2.39%→15.66%), 잠실동(8.42%→30.97%)도 전셋값이 상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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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안정 위해 불가피하단 의견도
다만 이 같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토지거래허가제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한국의 부동산 시장은 이른바 '대장 아파트'가 있는 인기 지역에 수요가 집중되면 다른 지역까지 연쇄적으로 반응하며 집값이 전체가 급등하는 구조로 돼 있다. 특히 아파트값이 단기간 급등하면 주택·토지 관련한 조세 정책이나 금융 규제만으로는 이를 효과적으로 통제하기 어렵다. 여기에 저금리 기조 등과 맞물려 불안 심리가 형성되면 시장의 자율 조정만으로는 급등세를 막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지난달 14일 오세훈 서울시장이 토지거래허가제 해제를 검토한다고 밝히자, 5주 연속 보합권에 이어오던 서울 아파트값이 상승세로 돌아섰다. 잠실 리센츠(전용 124m²)는 지난해 12월 37억 5,000만원에서 올해 1월 37억원에 거래되며 신고가를 기록했다. 대치동 래미안대치팰리스(114m²)도 올해 1월 52억9,000만원에 거래되며 최고가를 갱신했다. 이후에도 강남 3구의 집값은 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의 영향으로 각 지역 랜드마크를 중심으로 큰 폭의 상승이 예상된다.
서울시는 이러한 우려를 반영해 앞으로 광범위한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보다는 '핀셋(선별)' 지정 방식으로 전환하고 해제 지역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해 필요시 재지정을 검토할 방침이다. 조 본부장도 "집값 상승 우려에 대해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다"며 "타지역과 비교해 과도하게 거래량이나 집값 상승 폭이 커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면 재지정을 검토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현재 서울시 전체 면적(605.24㎢)의 10.8%에 해당하는 65.25㎢가 여전히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