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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대신 유튜브로 정치 의사 결정 유튜브에 판치는 가짜뉴스, 정치편향 부추겨 소득 및 교육 수준 막론하고 대다수에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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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전 ‘당신의 TV(Your TV)’라는 이름으로 탄생한 유튜브가 이제는 TV를 넘어서는 명실상부한 글로벌 1위 영상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했다. '미디어 권력'이 미디어 기업에서 시청자에게로 넘어가는 결정적인 역할을 유튜브가 해낸 셈이다. 하지만 시청을 유도하기 위해 이용자가 본 것과 비슷한 콘텐츠를 계속 보여주는 알고리즘으로 과도한 정치 편향을 부추긴다는 비판도 끊이지 않는다. 이런 정치 편향성이 유튜브의 취약점인 가짜뉴스, 음모론과 결합해 사회 여론을 극단화하고 결국 분열을 일으킨다는 지적이다.
"유튜브가 TV 이겼다"
13(현지시간) 외신 등에 따르면 11일 닐 모한 유튜브 최고경영자(CEO)는 연례서한에서 “유튜브가 TV를 이겼다”고 밝혔다. 모한 CEO는 “지난해 미국에서 스마트폰보다 TV를 통해 유튜브를 시청한 이용자가 더 많아졌다”며 “유튜브가 ‘오래된 TV’를 넘어 ‘새로운 TV’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동안 유튜브가 글로벌 콘텐츠와 인터넷 산업 전반에 끼친 영향력은 막대하다. 우선 기존에 거대 미디어의 자의적인 편성에만 의존했던 시청자들이 능동적으로 자신이 원하는 콘텐츠를 선택하고 거기에 직접 제작까지 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됐다. 특히 누구나 쉽게 영상을 올리고 이를 통해 광고를 포함해 다양한 수익을 얻을 수 있는 산업구조를 만든 것은 유튜브의 가장 큰 공으로 꼽힌다.
골드만삭스에 따르면 유튜브가 연 글로벌 크리에이터 산업 규모는 2023년 2,500억 달러(약 362조원)에서 2027년 4,800억 달러(약 695조원)까지 성장할 전망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발표한 ‘2024년 디지털미디어산업 실태조사’를 보면 국내에서도 유튜브를 필두로 한 디지털 창작자 산업의 전체 매출은 5조3,159억원으로 전년 대비 28.9% 성장한 것으로 나타났다.
알고리즘 필터 버블 심화, 확증편향 불러
그러나 부작용도 적지 않다. 유튜브에 판치는 가짜뉴스가 정치 편향 및 음모론을 불러일으킨다는 지적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12·3 비상계엄의 주요 동기로 알려진 부정선거 음모론 유튜브에서 시작됐다. 일부 극우 유튜버가 관련 내용을 확대 재생산하며 사실과 상관없이 과도한 영향력을 갖게 되면서 결국 계엄이라는 극단적 형태로 현실화된 것이다. 지난달 발생한 법원 폭력 사태 당시 현장에서 이를 생중계하며 사태를 부추긴 유튜버들이 ‘슈퍼챗(후원)’으로 수백만 원의 수익을 올렸음에도 유튜브는 사실상 이를 수수방관하는 데 그쳤다는 점도 비판받고 있다.
유튜브는 이용자의 시청 또는 검색기록을 분석해 이용자가 계속해서 관심을 가질만한 영상을 추천한다. 이처럼 성향에 맞게 걸러진 정보만을 접하는 현상을 ‘필터 버블’이라고 하는데, 유튜브 추천 알고리즘은 이러한 필터 버블을 심화시키고 나아가 확증편향을 부를 수 있다. 확증편향이란 가설 진위를 가리거나 문제를 해결할 때 자신의 신념과 일치하는 정보만을 취하고 상반되는 정보는 무시하는 무의식적 사고 성향을 가리킨다.
이와 관련해 김성완 정치평론가는 “TV 대신에 즐겨보는 유튜브로 정치 의사를 결정하는 건 그만큼 유튜브 영향력이 커졌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다만 “나 스스로가 일단 ‘신뢰한다’고 생각하는 채널에서 정보를 받아들일 때 가짜뉴스도 믿게 되고, 거기에서 확증편향이 생기고, 극단적인 폭동으로 발전한다고 봐야 한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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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한 사람도 홀리는 가짜뉴스
더군다나 가짜뉴스는 소득과 교육 수준을 막론하고 대부분 이용자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제프리 코헨 미국 스탠퍼드대 심리학과 교수가 이끄는 연구팀이 국제 학술지 '실험심리학 저널'에 발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대다수 사람은 자신의 정치적 성향에 맞춰 가짜뉴스와 진짜뉴스를 판가름한다. 이 경향은 교육 및 소득 수준과 무관했다.
연구팀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전 대통령의 재선 투표를 앞둔 2020년 무렵, 1,808명의 참가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성별, 연령, 인종, 소득, 교육 수준 등을 모두 고려해 참가자 표본을 구성했으며 참가자의 30%는 학사 학위 이상을 보유했다. 전체 참가자의 38%는 트럼프의 재선을 지지했고 52%는 재선을 반대했다. 나머지 10%는 중도층이었다. 참가자 중 1,445명은 사실 검증을 마친 진짜뉴스와 가짜뉴스가 절반씩 혼재하는 환경에, 나머지 363명은 진짜뉴스만 볼 수 있는 환경에 무작위로 배정됐다. 이어 참가자에게 뉴스 헤드라인 총 16개를 주고, 이중 어떤 헤드라인이 진짜뉴스인지 판단하게 했다. 정치와 관련된 헤드라인에는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한 부정적 견해와 긍정적 견해가 섞여 있었다.
그 결과, 대부분의 참가자는 자신의 기존 정치적 성향과 일치하는 뉴스의 손을 들어주면서도 "나의 판단엔 정치적 편향이 없다"고 답했다. 이는 성별, 연령, 교육 수준과 상관없었다. 이들은 대체로 정보의 정확성에 근거해 가짜뉴스와 진짜뉴스를 구별했지만, 적중 확률은 뉴스의 내용이 자신의 성향과 일치할 때 특히 높았다. 연구팀은 이를 '편리한 정확성'이라고 불렀다. 무엇인가를 정확하게 판단하려는 행동이 추론의 결과가 자신의 마음에 드는 방향으로 흐를 때 더 극대화됐다는 것이다. 불편한 결론이 나올 것 같은 상황에선 정확성으로 사실을 가늠하려는 태도가 옅어졌다.
또한 실험 말미 참가자들에게 어떤 뉴스 헤드라인이 가장 기억에 남았는지 묻자 대부분 가짜뉴스의 헤드라인을 먼저 꼽았다. 자신의 성향과 일치하는 뉴스의 헤드라인은 오히려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다. 당초 연구팀은 가짜뉴스를 접한 참가자가 진짜뉴스만 접한 참가자보다 실험 후 좀 더 극단적인 정치적 견해를 보일 것으로 예상했지만, 전혀 영향을 주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연구 결과에 대해 "어떤 정보가 '나의 믿음과 일치하는가'가 사안 판단에 있어 정확성보다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뜻"이라며 "모든 사람은 나보단 '다른 사람이 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