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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SMC에 ‘공동 투자 및 기술 이전’ 제안 인텔 파운드리 분할→TSMC 합작 가능성↑ 웨이퍼 후공정 단축 과제 해소 방안 대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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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반도체 기업 인텔이 대만 거대 경쟁사인 TSMC에 미국 내 공장 운영권을 넘길 것이란 관측이 제기됐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위시한 미국 정부가 TSMC에 이를 압박하고 나서면서다. 다만 TSMC로서는 투자자들의 반발 등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산적해 있어 실제 인수가 성사될지는 미지수다. 시장에서 ‘실리콘밸리 몰락의 상징’으로 여겨지던 인텔이 이번 운영권 매각을 계기로 분위기 반전에 성공할 수 있을지 이목이 쏠린다.
경쟁사와 동행 가시화에 인텔 주가 반등 신호
15일(이하 현지시각) 블룸버그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TSMC는 트럼프 미국 정부 고위 관계자의 요청에 따라 인텔의 현지 공장 운영권 인수를 검토하고 있다. 미국 정부는 TSMC 측에 △미국 내 첨단 반도체 패키징 시설 구축 △인텔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사업에 공동 투자 및 기술 이전 △미국 내 생산 반도체 패키징을 인텔에 위탁 등 방안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텔 파운드리는 막대한 시설 투자로 여러 분기째 수십억 달러 규모의 적자를 내고 있다. 스마트폰 등 모바일 중심 변화에 대응하지 못한 채 엔비디아 같은 인공지능(AI) 칩 제조업체들과의 경쟁에서도 고전하면서 실적이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것이다. 전임 최고경영자(CEO) 팻 겔싱어가 2021년 제시한 로드맵의 가장 마지막 공정인 18A(1.8나노급)는 올 하반기 대량 생산을 앞두고 있지만, 성능과 수율 등 불확실성이 크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지난달 20일 출범한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주요 수입 품목에 대대적인 관세 부과를 선언하는 등 자국 보호주의 강화에 한창이다. 특히 대만산 반도체에 대해서는 최대 100%의 관세 부과를 예고했다. 이 때문에 미국 투자회사 베어드는 최근 보고서에서 “트럼프 행정부가 TSMC와 인텔 간 협력을 적극 추진할 수 있다”고 전망하기도 했다. 베어드는 보고서에서 “인텔이 웨이퍼 파운드리 사업부를 분할한 다음 TSMC와 합작 투자로 전환할 것”이라며 구체적인 방안도 제시했다. 아울러 “TSMC가 일부 반도체 엔지니어와 전문 지식을 제공해 미국에서 3나노미터(㎚, 1㎚=10억분의 1m), 2㎚ 공정을 생산할 수 있도록 도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TSMC가 미국 정부의 제안에 수용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두 기업의 주가는 들썩였다. 14일 뉴욕 증시에서 장 초반 한때 5.3% 하락세를 그리던 인텔 주가는 TSMC의 인텔 공장 지분 인수 검토 보도가 나온 직후 낙폭을 줄여 2.20% 하락한 23.6달러에 장을 마쳤다. TSMC 주가 또한 1.03% 오른 203.9달러로 상승 마감했다.
투자자 우려 종식은 선행 과제로
다만 TSMC 주주 중 70% 이상을 차지하는 외국인 투자자 대부분은 인텔과의 협력에 부정적인 견해를 가진 것으로 전해진다. 세계 최대 파운드리 업체인 TSMC 입장에서 실적이 악화할 대로 악화한 인텔을 떠안는 건 득보다 실이 클 것이란 판단에서다. 지난해 인텔은 파운드리 사업에서만 70억 달러(약 9조4,500억원)의 영업 손실을 기록한 바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엄격한 이민 정책 또한 인텔 인수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대만중앙통신사(CNA)는 “TSMC의 엔지니어는 대부분 대만 또는 미국 이외 지역 출신”이라고 짚으며 “트럼프의 반이민 정책으로 TSMC가 자체 엔지니어를 미국에 보내 (반도체) 생산을 감독할 수 있느냐가 인수 추진 및 결정에 관건”이라고 전했다.
대만 내에서도 강력한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TSMC의 인텔 인수가 대만의 ‘실리콘 실드’ 상실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전 세계 파운드리 시장에서 약 65%의 점유율을 기록 중인 TSMC는 중국의 대만 침략을 막고, 유사시 다른 국가들이 서둘러 원조에 나서도록 자극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하지만 인텔과의 협력이 가시화하면, 세계 최대 첨단 프로세서 공급 업체로서의 가치가 희석되는 만큼 실리콘 실드 기능 또한 약화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일부 대만 언론이 “TSMC가 부분적으로 미국 기업이 되면, ‘호국신산(護國神山·나라를 지키는 신령스러운 산)’으로서의 지위 또한 위협받을 것”이라는 경고를 내놓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대만 공상시보는 최근 관련 소식을 전하며 “TSMC가 최신 합작 투자 계획으로 기술 유출 위험에 직면했다”며 “첨단 제조 리더십 또한 위태로워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이는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위협보다 더 부정적인 요소”라고 힘줘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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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투자 시기 조절해 온 TSMC, 지금이 적기?
현재 인텔과 TSMC는 이번 소식에 별도의 논평을 내놓지 않고 있다. 다만 업계에서는 TSMC가 그간 정치권의 향배에 따라 미국 투자 시기를 조절해 온 만큼 트럼프 대통령의 자국 내 반도체 생산 정책에 적극적으로 협조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앞서 TSMC는 2020년 총 650억 달러(약 86조9,000억원)를 투입해 미국 애리조나주에 반도체 공장 3기를 건설할 계획을 밝혔으나, 당초 지난해로 예정됐던 1공장의 생산 시기를 올해 상반기로 연기한 바 있다.
이달 초 열린 이사회에서도 TSMC의 미국 시장 투자 확대 움직임이 포착됐다. 지난 10일과 11일 미국 현지에서 열린 이사회 직후 TSMC는 올해 미국 제3공장 건설을 공식적으로 시작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건설에는 약 18개월이 소요되며, 2027년 초 시험 생산을 시작해 2028년에는 양산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이는 직전 발표된 것보다 1년 반가량 앞당겨진 일정이다.
나아가 완제품을 바탕으로 한 첨단 패키징(CoWoS) 공장 설립도 검토하고 있다. 현재 TSMC 애리조나 팹에서 생산된 웨이퍼는 후공정을 위해 대만으로 보내졌다가 다시 미국으로 돌아오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하지만 CoWoS 공장이 설립되면 미국 내 생산 능력이 비약적으로 확대될 것이란 관측이다. 시장에서 TSMC와 인텔의 협업이 패키징 사업을 시작으로 단계적 확대될 것이란 전망이 힘을 얻는 배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