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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닫는 문구점 매년 500곳 이상 아동 인구 감소→유통 채널 다양화 정부 지원은 “영업 피해” 비판 일색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대형 유통업체와 온라인으로 옮겨간 문구 시장의 소비자들이 좀처럼 동네 문방구로 돌아오지 않고 있다. 통상 설 연휴부터 3월 초 입학·개학 시즌까지 사람들로 북적이던 국내 최대 문구시장 창신동 일대도 마찬가지다. 정부가 소상공인 보호를 위해 내놓은 대책들도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하면서 문을 닫는 문구점은 해마다 증가하는 추세다.
나가는 사람만 있고 들어오는 사람 없어
4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서울 종로구 창신동 문구·완구 시장에서는 지난해부터 올해 초까지 약 10곳의 매장이 영업을 종료했다. 한때 100곳이 넘는 문구·완구 매장이 밀집해 ‘국내 최대 문구 거리’로 불렸던 것과는 대비되는 모습이다. 인근 한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매장은 계속 빠지고 있는데, 새로 문을 열겠다고 문의하는 사람은 아예 찾아볼 수 없다”고 전했다.
남아 있는 점포들도 경영난을 호소하긴 마찬가지다. 한 자리에서 40년 넘게 매장을 운영했다는 자영업자는 “월세를 감당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라 보증금이 계속 줄어들고 있다”며 “매장 규모를 줄이는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인근 점포 운영자 역시 “팬데믹 이전과 비교하면 매출이 10분의 1로 줄었다”며 “시장 점포 대부분 상황이 비슷하다”고 거들었다.
유통업계에서는 창신동 문구·완구 시장의 주요 기능인 도매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도매 시장에서 물건을 구입하는 소매상들이 급감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실제 한국문구유통협동조합에 따르면 2022년 8,900곳에 달했던 전국 문구점은 2023년 8,300곳, 2024년에는 7,800곳으로 줄었다. 해마다 500곳이 넘는 문구점이 문을 닫은 셈이다.
주요 소비자층인 아동 인구가 감소세를 거듭하고 있다는 창신동 시장의 앞날에 먹구름을 드리우는 요소다. 통계청이 운영하는 지표통합서비스 ‘e나라지표’에 의하면 2015년 896만1,805명이던 국내 아동 인구(0세~17세)는 지속적으로 감소해 지난해 687만6,330명으로 700만 명 아래로 내려왔다. 올해 전국 초등학교 1학년 취학 예정 아동 역시 35만6,258명으로 10년 전과 비교해 21.8%(9만9,421명) 감소했다.
온라인 거래액 3년 사이 2배 가까이 확대
전문가들은 구매처 확대 등 시대의 변화가 국내 문구업계의 쇠퇴를 부추기고 있다는 진단을 내놓는다. 편의점, 다이소 등 대형 유통업체와 온라인 쇼핑몰들이 학교 앞 문구점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는 꾸준한 상승세를 보이는 편의점의 문구류 매출에서 확인할 수 있다. 코로나19로 문구점 폐점이 본격화한 2022년 GS25의 문구·완구류 매출 증가율은 62.6%에 달했다.
다이소 역시 2022년 이후 문구류 매출액이 매년 10%대 성장세를 그리고 있다. 다이소 전체 상품 중 문구류가 차치하는 비중은 5% 미만이지만, 상품 수는 3년 전과 비교해 20% 가까이 늘었다. 비슷한 시기 온라인 문구 거래액도 급증했다. 온라인 사무·문구 거래액은 2020년 1조874억원에서 2023년 1조9,171억원으로 두 배 가까이 성장했다.
이와 관련해 이영애 인천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저출산으로 아이들이 귀해지면서 아이, 부모들의 소비 눈높이도 동시에 올라갔다”고 짚으며 “문구점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더 세련된 물건을 살 수 있게 된 환경이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아이와 부모가 함께 경험할 수 있는 어떤 것, 혹은 차별화된 고객관리나 재미를 줄 수 있는 콘텐츠가 없다면 (오프라인 문구점의) 정체성은 더욱 모호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허울뿐인 지역경제 발전
정부가 소상공인 보호와 지역경제 발전을 위해 추진한 정책들도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대표적으로 문화체육관광부가 지원하는 관광특구 활성화 지원 사업을 꼽을 수 있다. 종로구청은 2015년 창신동 시장을 관광특구로 지정하고 ‘동대문 보물섬, 문구·완구 거리 특화 사업’ 시행에 나섰다.
종로구는 해당 사업의 일환으로 창신동 시장 일대 도로를 새로 포장하고 캐릭터 디자인을 입힌 ‘디자인 도로’를 조성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이를 위해 시장 일대 점포들이 내놓은 가판 및 매대 등 도로 점용물을 철수할 것을 지시하기도 했다. 이에 시장 상인들은 불만을 쏟아냈다. 오래된 천막이나 간판을 정비하는 사업 정도로 알고 있었는데, 도로 정비를 이유로 영업에 피해만 끼치고 있다는 지적이다.
50대 상인 A씨는 “손님도 없는 마당에 캐릭터 도로를 만든다고 가판을 치우라고 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며 “불이행 시 벌금까지 내라는데, 이게 과연 누구를 위한 관광특구 활성화 지원 사업인지 알 수가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비나 뜨거운 햇빛을 막을 지붕을 만드는 게 더 시급한데, 엉뚱한 다리만 긁고 있다”고 일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