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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업계 '선별 수주' 기조 뚜렷 치솟은 공사비에 원가율 93% 넘어 사업성 떨어지는 단지는 시공사 선정 난항

업황 악화와 공사비 부담 증가로 수익성 확보가 시급해진 건설사들이 선별 수주 기조를 강화하면서, 서울 강남권 '알짜' 정비사업 단지들도 단독입찰 혹은 무응찰로 유찰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 당초 수주전을 예상했던 단지들도 규모나 수익성 문제로 건설사들이 소극적인 모습이다.
개포주공 6·7단지, 잠실 우성 1·2·3차, 단독입찰로 유찰
13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이날 시공사 입찰을 마감한 강남 개포주공 6·7단지 재건축 사업에서 현대건설만 단독입찰하면서 유찰됐다. 개포주공 6·7단지는 총공사비 1조5,319억원의 대형 사업으로 당초 삼성물산과 현대건설이 경쟁 벌일 가능성 있다는 전망이 나왔지만, 적극적인 수주 의지를 보인 현대건설과 달리 삼성물산에서는 확실한 수주의지를 보이지 않으면서 이번 입찰에 참여하지 않았다. 양사는 올해 초 한남4구역 재건축을 놓고 출혈경쟁을 벌인 바 있다. 입찰에 참여하지 않은 삼성물산 측은 오는 9월 시공사 선정 총회를 열 예정인 압구정 2구역 재건축 사업 수주에 총력을 다하겠다는 방침이다.
앞서 지난 4일 진행된 잠실 우성 1·2·3차 재건축 시공사 입찰에서도 GS건설과 삼성물산의 수주전이 예상됐지만 GS건설만 참여하면서 유찰됐다. 이곳은 잠실종합운동장 마이스(MICE) 개발사업과 인접해 있고, 총 공사비만 1조7,000억원에 달해 사업성이 높다고 평가받았지만, GS건설의 수의계약 가능성이 높아졌다. 방배15구역도 지난달 27일 첫 시공사 선정 입찰에서 포스코이앤씨만 참여해 유찰됐다.
입찰 참여 건설사 없는 사업장도 속출
이처럼 서울 정비사업지에서 반복되는 단독입찰에 수의계약으로 전환하는 경우가 다수 발생하고 있다. 관악구 봉천동 봉천 제14구역 재개발 조합은 지난 8일 총회를 열어 수의계약 입찰에 단독 참여한 GS건설을 시공사로 선정했다. 이 같은 상황에 일부 단지 조합에서 입찰 조건을 변경하기도 했다. 서울 중구 신당10구역 조합은 지난 7일 네 번째 시공사 선정 입찰 공고를 냈다. 조합은 공동도급(컨소시엄) 불가 조건을 완화해 네 번째 입찰에서는 공동도급을 허용했다.
한강변 단지도 예외는 아니다. 서초구 신반포2차는 두 차례 유찰 이후 지난해 말 현대건설을 시공사로 선정했다. 지하철 3·7·9호선 고속터미널역과 가까운 알짜 재건축 단지로 꼽히는 데다 총공사비가 1조310억원에 달하는 신반포4차의 경우 삼성물산의 단독 참여에 따른 수의계약이 유력하다. 용산구 한강변에 위치한 산호아파트도 네 차례 유찰 끝에 작년 말 롯데건설을 시공사로 선정했다.
입찰에 참여하는 건설사가 없어 유찰을 겪는 정비사업장도 속출하고 있다. 서초구 삼호가든5차는 지난해 시공사 선정을 위한 입찰에 참여한 곳이 없어 유찰되자, 공사비를 올려 다시 시공사 찾기에 나섰다. 서울시 신통기획 1호 사업장인 중구 신당10구역 재개발 사업은 비교적 사업성이 높은 곳으로 꼽히는데도 시공사 선정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올해 들어 정비사업 수주를 시작하지 않은 건설사도 많다. 지난해 시공능력평가 기준 10대 대형 건설사 중 △현대건설 △대우건설 △현대엔지니어링 △SK에코플랜트 △HDC현대산업개발 등이 아직 첫 수주를 기록하지 못했다.

재건축 시공사 선정도 '양극화'
건설사들이 수주전에 몸을 살리는 건 최근 몇 년간 원자재 가격과 인건비 급등으로 도시정비사업의 공사비 부담이 크게 증가했기 때문이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에 따르면 지난달 건설공사비지수(잠정)는 130.99로, 코로나19 이전인 2020년 1월(99.86) 대비 30.13% 상승했다. 건설사들의 평균 매출원가율도 지난해 3분기 93%를 넘어서며 수익성이 악화했다. 현대건설은 100.6%까지 상승했으며, GS건설(91.3%)과 HDC현대산업개발(90.9%)도 90%를 초과했다. 일반적으로 업계에서 적정 원가율로 여겨지는 80%를 크게 상회하는 수준이다.
도시정비사업의 높은 입찰 보증금과 경쟁 과정에서 발생하는 출혈 비용도 건설사들이 수주 경쟁을 기피하는 요인이다. 대규모 보증금을 선납해야 하는 정비사업 특성상 기업의 현금 흐름에 부담이 크며, 최근 금융시장 불안정성까지 겹쳐 건설사들은 유동성 확보에 더욱 신경 쓰고 있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주택 사업 원가율이 90%를 넘어 수익성이 악화한 상황에서, 건설사들은 수익성이 높은 사업지를 선별적으로 수주하려는 경향이 강하다"며 "수주전은 추진 비용이 크고 경쟁에서 밀리면 모든 비용이 손실로 처리되는 구조기 때문에 신중한 태도를 보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건설사 관계자는 “여러 사업지에 뛰어들어 다 수주하면 좋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지 않나. 지금은 건설사들 상황이 좋지 않아 큰 비용이 들어가는 것을 꺼리고 있어 기존 사업들을 성공적으로 유지하는 것이 중요한 상황”이라며 “강남권에서도 유찰이 발생하다 보니 다른 지역에서 선별수주 기조가 더 심해질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