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main content
[동아시아포럼] 싱가포르, 국경은 그대로 무대는 더 넓게
Picture

Member for

2 weeks 4 days
Real name
송혜리
Position
연구원
Bio
[email protected]
다양한 주제에 대해 사실에 근거한 분석으로 균형 잡힌 시각을 제공하고자 합니다. 정확하고 신뢰할 수 있는 정보 전달에 책임을 다하겠습니다.

수정

좁은 도시의 새로운 확장 해법
조호르를 통한 이동과 생산의 재설계
국경 안팎을 잇는 에너지·산업 연계 전략

본 기사는 VoxEU–CEPR(경제정책연구센터)의 칼럼을 The Economy 편집팀이 재작성한 것입니다. 원문 분석을 참조해 해석과 논평을 추가했으며 본 기사에 제시된 견해는 VoxEU 및 CEPR과 반드시 일치하지 않음을 밝힙니다.

싱가포르는 면적 735.7km²의 도시국가다. 서울보다 작고, 런던 도심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국토의 협소함은 경제 성장의 구조적 제약으로 작용해 왔다. 매립으로 확장을 모색해 왔지만, 지질적 한계와 외교적 부담이 커지며 기존 방식의 유효성이 줄고 있다. 이에 따라 싱가포르는 국경선을 유지한 채 실질적인 경제 공간을 확장하는 전략으로 전환했다. 말레이시아 조호르주와 손잡고 출범한 조호르–싱가포르 경제특구(JS-SEZ)가 그 해법이다

사진=ChatGPT

고정된 국경, 확장된 무대

2025년 1월 7일, 말레이시아 푸트라자야에서 조호르–싱가포르 경제특구 협정이 공식 체결됐다. 이번 특구의 핵심은 영토의 주권을 유지한 채 통관·이민·자본 이동을 조율해 양국이 공간과 제도를 공유하는 데 있다. 싱가포르는 조호르 전역(1만 9,166km²)에 대한 실질적 접근권을 확보하게 되며, 이는 자국 면적의 26배에 해당하는 '가상의 확장'이다. 토지 소유권과 노동법은 말레이시아 법을 따르되, 기업 운영과 자본 흐름, 인력 이동은 양국이 공동 관리한다. 단일 통관 창구, 생체인식 기반 이민 시스템 등도 구축된다. 싱가포르는 제도를 설계하고, 조호르는 공간을 제공하는 방식이다.

국경을 넘는 출근, 노동 유연성 확대

2024년, 싱가포르 북부 우드랜드 국경검문소를 통과한 하루 평균 통행자는 32만 7천명으로 전년 대비 22% 증가했다. 이 중 15%가 정기 출근자라고 가정할 경우, 약 4만 9천명의 추가 노동력을 확보한 셈이다. 이는 동부 외곽 주거지 파시르리스의 전체 노동인구와 비슷한 규모다.

국경 간 출퇴근 이동 증가 추이 (2022–2024)(단위: 명)
주: 연도 (X축), 국경 검문소의 일평균 통행자 수(Y축)

2026년 개통 예정인 조호르바루–싱가포르 고속 경전철(RTS)이 이 흐름을 가속화할 전망이다. RTS는 두 도시 간 플랫폼 이동 시간을 5분으로 줄이며, 2025년 4월 기준 공정률은 77%다. 국경 간 통근 부담을 완화하면서 양국 노동시장의 연계를 강화할 것으로 기대된다.

싱가포르 무역산업부는 “국경 통근자 10만 명이 늘어날 경우, 철도 및 검문소 인프라에 대한 투자 효과는 향후 10년간 약 100억 싱가포르달러(약 10조8천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한다. 특히 고령화로 인한 노동력 감소가 우려되는 가운데, 국경 외부에서 유연하게 인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전략적 가치가 크다.

생산성까지 바꾼 부동산 격차

2024년 2분기 기준, 싱가포르 공공주택(Housing and Development Board, HDB) 중위 거래가는 57만3,000 싱가포르달러(약 6억2천만원)다. 반면 조호르의 평균 주택 가격은 30%가 상승한다고 가정하더라도, 싱가포르보다 약 65% 저렴한 수준이다. 이러한 격차는 기업의 생산 시설 이전에도 영향을 준다. 조호르에 공장을 두면 부동산 비용이 줄고, 생산 원가 절감으로 이어진다. 콥–더글라스 함수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부동산 비용이 15% 낮아질 때 수출 제조업의 총요소생산성은 3~4% 증가할 수 있다.

2024년 조호르주 제조업 승인 투자액은 485억 링깃(약 14조원)으로 말레이시아 전체에서 세 번째로 많았다. 조호르의 저렴한 토지와 싱가포르의 정교한 물류·금융 시스템이 결합해 새로운 산업 경쟁력이 형성되고 있다.

조호르 제조업 투자 승인액 추이 (2020–2024)
주: 연도(X축), 제조업 투자 승인액(Y축)(단위: 십억 말레이시아 링깃)

복합 도시권 실험, 동남아 버전

조호르–싱가포르 경제특구는 중국의 홍콩–선전 모델과 구조적으로 유사하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선전은 산업·소득·인구 모두에서 홍콩에 크게 뒤처졌지만, 홍콩으로부터 유입된 자본과 제도를 바탕으로 기술 도시로 빠르게 성장했다. 현재는 화웨이, 텐센트, DJI 등 세계적 기업들이 본사를 두는 ‘중국의 실리콘밸리’로 자리 잡았다. 홍콩이 금융과 서비스를, 선전이 제조와 기술을 맡으며 ‘전방 상점, 후방 공장’ 모델이 완성됐다. 양 도시가 기능적으로 연결되며 상호보완적 구조가 만들어진 것이다.

조호르와 싱가포르도 유사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싱가포르는 공간 대신 자본과 제도를, 조호르는 저렴한 토지와 노동력을 제공하며 산업 지도를 재편하고 있다. 도시 간 역할 분담을 통해 양국의 성장 전략을 정교하게 조율하는 구조다.

교통 불편과 일자리 경쟁, 정치적 변수

경제 통합의 속도가 빨라지면서 정치적 반발도 감지된다. 말레이시아에서는 임금 하락과 자국민 일자리 감소에 대한 노동계 우려가, 싱가포르에서는 교통 혼잡과 외국인 노동자 유입에 대한 시민들의 불만이 제기되고 있다.

그런데도 시장은 낙관적이다. 2024년 1~9월, 조호르 지역 상업용 부동산 거래액은 67억7천만 링깃(약 1조9천억원)으로 전년 대비 54.9% 증가했으며, 산업용 거래도 46.3% 늘었다. 투자자들은 정치적 불확실성보다 구조적 기회를 주목하고 있는 셈이다.

싱가포르 정부도 GDP 1% 증가 시 중위 가구소득이 0.6% 상승한다는 과거 데이터를 근거로, 철도 투자나 소비세 환급 등 보완 정책으로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전력까지 공유하는 양국 협력

이번 특구 협정에는 재생에너지 공동 조달 조항도 포함됐다. 말레이반도 남부는 하루 일사량이 m²당 4.5kWh로 싱가포르보다 30% 높지만, 안정적 수요처 부족으로 활용되지 못했다. 이 협정을 통해 싱가포르는 국경 밖 태양광 발전소에서 생산된 전력을 장기 계약으로 도입할 수 있게 됐고, 조호르는 에너지 수출 거점으로 부상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양국은 2028년까지 특구 전력의 30%를 재생에너지로 전환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는 유럽연합(EU) 등 탄소 기준을 강화하는 주요 수출 시장에 대응하고, 특구 산업의 ESG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전략이다. 향후 수소·암모니아 기반 청정연료나 대규모 전력 저장 설비 유치도 추진된다.

수치로 평가하는 성과

조호르–싱가포르 경제특구는 2030년까지 여섯 가지 핵심 지표를 중심으로 성과를 평가할 예정이다. 평균 출입국 소요 시간을 10분 이내로 줄이고, 싱가포르 공공 조달의 15%를 조호르 기업이 담당하는 구조를 목표로 한다. 조호르 남부의 실질 가계소득은 말레이시아 평균보다 빠르게 증가해야 하며, 환율 결제 시스템에서는 싱가포르 달러·링깃·미 달러 간 거래의 90% 이상을 실시간으로 처리한다는 계획이다. 에너지 전환 지표로는 특구 내 전력의 30%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하는 것이 포함되며, 기술 창업 활성화를 위해 연간 2,000개 스타트업 설립 목표도 제시됐다. 이 지표들은 정부 교체와 무관하게 유지되는 기준선 역할을 하며, 특구가 단기 협력이 아닌 제도 실험임을 보여준다.

국경은 그대로, 역할은 재편

2030년까지 주요 지표가 현실화된다면, 조호르–싱가포르 경제특구는 국경선을 바꾸지 않고도 경제적 영토를 확장한 사례로 기록될 수 있다. 싱가포르는 물리적 국토가 아닌 플랫폼을 확장하고 있으며, 이 모델은 동남아가 홍콩–선전을 넘어 자체적인 지역 통합 전략을 모색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시사한다.

원문의 저자는 셀리나 링(Selena Ling) OCB은행(Oversea-Chinese Banking Corporation Limited) 이코노미스트입니다. 영어 원문 기사는 Johor-Singapore Special Economic Zone borders on success | EAST ASIA FORUM에 게재돼 있습니다.

Picture

Member for

2 weeks 4 days
Real name
송혜리
Position
연구원
Bio
[email protected]
다양한 주제에 대해 사실에 근거한 분석으로 균형 잡힌 시각을 제공하고자 합니다. 정확하고 신뢰할 수 있는 정보 전달에 책임을 다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