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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관세 위헌소송, 첫 심리 돌입 쟁점은 IEEPA에 따른 권한 남용 여부 이달 중 국제통상법원 예비 판결 예정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정책이 적법한지 판단하기 위한 법원 심리가 시작됐다. 지난달 현지 기업과 주정부는 트럼프 행정부 상대로 관세의 위법성을 판단해 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원고들은 연방의회를 거치지 않은 트럼프 행정부의 고율 관세가 위헌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만약 트럼프 행정부가 패소한다면 현재 진행 중인 주요국과의 관세 협상이 중단될 가능성이 있어 트럼프 대통령의 무역 정책에 차질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IEEPA 자의적 해석, 권한 없이 관세 부과"
13일(현 시각) AP통신은 3명의 판사로 구성된 미국 연방국제통상법원(CIT) 재판부가 이날 뉴욕주 맨해튼 법정에서 트럼프 행정부 관세 관련 소송에 대한 첫 번째 심리를 연다고 보도했다. 지난달 미국 소재 5개 기업은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 결정 권한을 가진 연방의회를 거치지 않고 위법하게 관세 정책을 펼쳤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원고들은 소장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International Emergency Economic Powers Act)을 자의적으로 해석해 권한 없이 관세를 부과했다고 주장했다.
IEEPA는 1977년 제정된 연방법으로 국가 안보·외교·경제에 '특이하고 비상한 위협'이 발생할 경우 대통령이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외국과의 무역·금융 거래 등 경제 활동을 통제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실제로 2001년 9.11 테러 이후 테러단체 자금 차단 등에 적용된 바 있다. 그러나 IEEPA를 관세 부과의 근거로 삼은 사례는 트럼프 대통령이 처음으로 발표 직후부터 적법성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소송을 제기한 기업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IEEPA 적용을 위해 선언한 국가 비상사태는 사실상 '상상의 산물'이라고 비판했다.
뉴욕주 등 12개 주, 캘리포니아주도 소송 제기
주정부들도 소송에 동참했다. 지난달 23일 뉴욕주를 비롯해 미국 내 12개 주가 트럼프 대통령이 연방의회를 거치지 않고 위법하게 관세 정책을 펼쳤다며 CIT에 소장을 제출했다. 소송 원고로 나선 주는 뉴욕주를 비롯해 오리건·애리조나·콜로라도·코네티컷·델라웨어·일리노이·메인·미네소타·네바다·뉴멕시코·버몬트주 등 모두 12곳이다. 이 중 네바다주와 버몬트주는 주지사가 공화당 소속으로 온건 성향의 인사로 꼽힌다. 이 두 곳을 제외한 10곳 모두 주지사가 민주당 소속이다.
앞서 지난달 16일에는 캘리포니아주가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집행을 무효화하는 소송을 캘리포니아 북부 연방지방법원에 제기했다. 소송을 주도한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소셜미디어(SNS) X를 통해 "캘리포니아는 미국 최대의 제조업 중심지이자 세계 최대의 무역 파트너 중 하나로 관세 정책에 큰 영향을 받는다"며 "트럼프 대통령은 권한 없이 파괴적이고 일방적인 관세로 우리 생애 최대 규모의 세금 인상을 일방적으로 부과했다"고 비판했다. 뉴섬 주지사는 트럼프 대통령과는 오랜 앙숙 사이로, 민주당의 잠재적 대선 주자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다.
이 외에도 보수 성향의 비영리기구 신시민자유연맹(NCLA)은 지난달 3일 중국산 수입품에 부과한 관세를 중단해 달라는 소송을 제기했고, 한 중소기업도 시민단체를 통해 트럼프의 대중 관세에 대해 플로리다 연방 법원에 소송을 냈다. 미국 원주민 부족 단체 '블랙풋 국가'는 캐나다에 부과한 관세에 대해 법원에 제소했다. 이들 모두 소장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이 IEEPA를 자의적으로 해석해 권한 없이 관세를 부과했으며 이로 인해 헌법적 질서가 훼손되고 소비자 물가 상승, 인플레이션, 일자리 감소 등 미국 경제에 부정적인 파급효과를 야기했다고 주장했다.

폴리티코 "불법 판결 시 통상 협상 중단 가능성"
현지 언론에 따르면 미국 소재 5개 기업이 CIT에 제기한 소송은 이날 본격적인 청문 절차를 게시해 이달 내 예비 판결(preliminary ruling)을 내릴 예정이다. 이 예비 판결에서 법원이 원고 측 주장을 받아들여 관세 부과 등 트럼프 행정부의 조처가 불법이라고 판결하게 되면 미 행정부는 현재 60여 국가와 진행 중인 통상 협상을 전면 중단할 가능성이 있다. 다만 미 행정부가 판결에 불복해 항소 절차에 들어갈 경우 연방항소법원, 나아가 미국 연방대법원까지 재판이 이어질 수 있다.
문제는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관세는 계속 부과된다는 점이다. 앞서 지난달 22일 CIT는 원고 측이 제기한 관세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당시 CIT는 소송을 제기한 기업들이 수입품에 대한 새로운 관세로 즉각적인 피해를 볼 것이라는 점을 입증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미국의 정치 전문지 폴리티코는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한 관세 전쟁이 협상 대상국의 협력 여부와 상관없이 이달 말에 전격 중단될 가능성이 있다"며 "CIT가 위법 판결을 내리면 각국의 무역 협상이 중대한 차질이 발생할 것"이라고 짚었다.
관세 소송 등으로 미국 무역 정책의 불확실성이 확대되면서 이미 미국과의 협상에서 구체적인 성과를 확보한 국가와 그렇지 않은 국가들 사이에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영국은 자동차, 철강, 알루미늄 등 주요 품목에 대해 관세를 대폭 인하하는 합의를 끌어냈고, 중국 역시 100%가 넘는 상호 관세를 30% 이하로 대폭 낮추는 데 합의하며 시장 개방과 미국산 제품 대량 수입 등에서 실질적 성과를 확보했다. 반면 일본은 미국과 2차 장관급 협상까지 마쳤지만, 자동차 등 핵심 품목 관세 인하 등 실질적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