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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개발 원조, 중국 ‘부상’ 수혜국 여론은 ‘오히려 악화’ 미국, 개발 원조 “재개해야”
본 기사는 VoxEU–CEPR(경제정책연구센터)의 칼럼을 The Economy 편집팀이 재작성한 것입니다. 원문 분석을 참조해 해석과 논평을 추가했으며 본 기사에 제시된 견해는 VoxEU 및 CEPR과 반드시 일치하지 않음을 밝힙니다.
아프리카의 개발 금융(development financing)은 중국이 주도권을 확보하는 양상이 분명하다. 미국이 해외 원조와 개발 프로그램을 대폭 줄이면서 떠난 공간을 채우고 있는 것이다. 이제 중국이 일대일로 이니셔티브(Belt and Road Initiative, BRI)를 통해 원하는 것은 서구와의 경쟁이 아닌 주도권 확보다.

트럼프 행정부, 대외 원조 대폭 축소
중국의 대아프리카 무역과 투자는 최근 들어 급증했다. 두 세기를 조금 지나 양자 간 무역 규모가 117억 달러(약 16조원)에서 2,960억 달러(약 413조원)로 치솟으며 중국은 아프리카 대륙의 최대 무역국으로 부상했다. 중국 기업들은 1,120억 달러(약 156조원)에 이르는 개발 투자와 250억 달러(약 35조원) 규모의 인수합병을 통해 아프리카의 산업을 중국 공급망에 편입시켰다.

그 사이 미국은 정책 방향을 급격히 선회했다. 예산 절감을 앞세운 트럼프(Trump) 행정부가 올해 예정된 미국 국제개발청(U.S. Agency for International Development, USAID) 자금 계획의 90%를 도려냈다. 이미 지난 3월에 대부분의 지원금과 식량 지원이 끊겼다. 나이지리아 아동의 영양실조와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에이즈 예방을 위한 의료 지원도 마찬가지다.
중국, 미국 공백 메우는 ‘새로운 접근’
미국의 철수로 선택권이 없어진 아프리카 국가들에 중국이 새롭게 접근하고 있다. 이제 중국은 중단된 미국의 에이즈 예방 및 관리 프로그램까지 흉내 내고 있다. 융자와 함께 백신 지원, 디지털 교육, 중국어 미디어 허브까지 장착한 일대일로가 도입된 것이다. 시진핑 중국 주석은 최근 친중국 미디어 전문가와 정책 엘리트를 육성하기 위한 500억 달러(약 70조원) 규모의 장학 사업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중국의 문화적 접근 방식은 이미 결실을 보고 있다. 8만 명을 넘는 아프리카 학생들이 중국 대학에서 유학하고 있으며 CGTN(China Global Television Network, 중국 글로벌 텔레비전 네트워크)은 아프리카 40여 개 나라에 방송되고 있다. 모두 중국의 규범과 시스템에 친숙한 신세대 아프리카 리더들을 길러내기 위한 포석이다.
수혜국 여론은 ‘악화 일로’
물론 논란이 없지는 않고 여론도 변하고 있다. 아프로바로미터(Afrobarometer) 설문조사에 따르면 아직은 대부분의 아프리카인이 중국의 영향력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으나 지지율은 정점을 찍고 하락 중이다. 특히 시에라리온과 짐바브웨 등에서 급격하다.

주: 시에라리온, 짐바브웨, 보츠와나, 말라위, 나이지리아, 말리(좌측부터)
여론 악화는 실제 사건에서 기인하기도 한다. 지난 2월 중국이 운영하는 잠비아 광산에서 독성물질이 유출돼 카푸에강(Kafue River)을 오염시킨 사고로 수십만 명이 대피했고 지역 어업도 크나큰 타격을 입었다. 중국이 내세우던 친환경 개발은 물론 원조 프로젝트에 대한 중국의 관리·감독에도 의심의 눈길이 더해지고 있다. 자금 지원은 빠른 데 책임감은 없다는 비판도 나온다.
융자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크다. 중국은 2006~2021년 기간 1,910억 달러(약 266조원)의 개발 융자를 약속했지만 아프리카 국가들의 채무 부담이 늘어나며 신용 제공을 늦추는 모습이다. 철도나 발전소 프로젝트도 중단되거나 비활성화 상태가 늘고 있다. 중국이 전략 광물(strategic minerals) 획득에 더욱 치중하는 가운데 신규 기반 시설 융자도 20년 만에 최저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영향력, “돈으로만 살 수 없어”
어쨌든 숫자만 보면 미국에 대한 역전이 이미 일어났음을 알 수 있다. 2022~2024년 중국의 연평균 투자 규모는 250억 달러(약 35조원)였지만 작년 미국 정부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지원 예산으로 요청한 금액은 80억 달러(약 11조원)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도 대부분은 의료 지원용이고 더 이상의 자금 지원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대로 가면 국제개발청을 통한 지원 규모는 연간 40억 달러(약 5조6천억원)를 밑돌 것으로 보이며 중국은 이 틈을 놓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지원 규모 자체가 영향력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미국의 원조 프로그램도 약점이 있지만 적어도 거버넌스(governance) 기준과 시민사회 지원, 조달 규정(procurement rules) 등은 갖추고 있었다. 이것들이 신뢰를 얻고 장기적 협력 관계를 만드는 데 기여했음도 분명하다. 중국의 원조가 해당 요소를 보강하지 못한다면 환경 피해와 부패는 물론 수혜국이 장기적 의존 관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부작용으로 연결될 것이 자명하다.
아프리카 국가들도 이제 수동적 입장에 머물지 않고 지정학적 변화 속에서 주도권 확보를 노리고 있다. 르완다는 중국 자금 지원에 서구의 투명성과 지속 가능성을 결합하는 하이브리드 모델을 이끌고 있으며 케냐도 중국과 세계은행 원조를 동시 추진하고 있다. 잠비아 역시 중국의 광산 개발 건과 국제통화기금(IMF)을 통한 채무 구조조정을 병행하고 있다.
미국과 동맹국들은 개발 원조가 스위치처럼 껐다 다시 켤 수 있는 것이 아님을 깨달아야 한다. 의료 및 식량 지원을 통해 수십 년간 쌓은 영향력은 한순간에 증발해 버릴 수 있다. 미국이 다시 신뢰를 되찾고 싶다면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한 자금 지원과 함께 아프리카 국가들의 우선순위를 맞추려는 노력도 함께 해야 한다.
신뢰와 영향력은 노력으로 얻어내는 것이지 돈으로만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원문의 저자는 사미르 바타차랴(Samir Bhattacharya) 뉴델리 옵서버 연구 재단(Observer Research Foundation) 연구원입니다. 영어 원문 기사는 Beijing’s global vision takes shape in Africa | EAST ASIA FORUM에 게재돼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