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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디스, 美 국가신용등급 하향 조정 美 2배로 뛴 韓, 24년간 5배로 역대 첫 비기축통화국 평균 추월

우리나라 국가채무가 빠른 속도로 불어나고 있다. 저출생·고령화 속 복지지출은 눈덩이처럼 늘어나고 있지만, 세수는 뒷걸음질 치고 있어서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채 비율은 이미 비기축통화국 평균을 넘어섰고, 국가부채 증가 속도는 미국의 2배를 뛰어넘는다. 최근 무디스가 미국의 정부 부채와 재정적자 등을 이유로 국가 신용등급을 하향한 가운데, 우리나라도 안심할 수 없다는 우려가 나온다.
韓 재정 적자·부채 증가 속도 우려
21일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2000년 9월 말부터 2024년 9월 말까지 24년간 한국의 GDP 대비 중앙·지방정부 부채 비율은 9%에서 45.3%로 5배가량 증가했다. 이는 재정적자와 국가부채 증가를 이유로 국제 신용평가사들이 국가신용등급을 하향 조정한 미국보다 2.5배 이상 빠른 속도다. 같은 기간 미국의 정부 부채 비율은 51.1%에서 107.4%로 2.1배 증가했다.
한국의 국가채무 비율은 100~200%인 미국, 일본, 유럽 주요국 등 선진국과 비교하면 아직은 낮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국가채무 비율이 빠르게 높아진다고 경고한다. 국가채무 비율은 2004년 20%대를 돌파한 뒤 9년 만인 2013년(31.2%) 30%를, 이로부터 7년 후인 2020년(41.1%) 40%를 넘어섰다.
이런 증가 속도는 다른 국가와 비교해도 과도하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올해 말 한국의 GDP 대비 일반정부부채(D2) 비율은 54.5%로 추정된다. IMF가 비교 대상으로 꼽은 주요 비기축통화국 11곳 평균(54.3%)을 처음으로 웃돈다. IMF는 한국의 일반정부부채 비율이 올해부터 2030년까지 5년 동안 4.7%포인트 치솟을 것으로 추산했다. 비기축통화국 11곳 중 체코(6.1%포인트) 다음으로 빠른 속도다.

‘남의 일’ 아닌 신용등급 강등
국가채무는 2016∼2018년 600조원대, 2019년 723조2,000억원에서 코로나19 시기를 거치며 2020년 846조6,000억원, 2021년 970조7,000억원으로 크게 늘었다. 올해 말 국가채무는 1,280조8,000억원으로 지난해 말보다 105조6,000억원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새 정부 출범 이후 예상되는 2차 추경 편성까지 고려하면 1,300조원을 넘어설 가능성도 열려 있다.
향후에도 국가채무 비율은 고령화와 성장 기조 둔화 등에 따라 빠르게 상승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망된다. 국회예산정책처는 '2025∼2072년 장기재정전망' 보고서에서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이 매년 상승해 2040년 80%, 2050년 100%를 넘어서고 2072년에는 173%에 이를 것으로 봤다. 이미 올해 1분기 관리재정수지 적자는 61조3,000억원을 기록하고 있다. 최근 추경 요인이 반영되면 역대 최대 적자를 기록한 작년에 육박하는 규모로 나랏빚이 확대된다.
현재 3대 글로벌 신평사(무디스·S&P·피치) 모두 한국의 국가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지만, 재정적자와 국가채무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만큼 중장기적으로는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지난해 우리나라 GDP가 약 2,500조원임을 고려하면 국가채무가 25조 원만 더 늘어도 GDP 대비 채무 비율이 1%포인트 치솟으며 순식간에 50%, 60%를 돌파할 수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저출생·고령화가 진행되고 있어 향후 복지지출 증가와 세입 감소에 따른 재정적자와 국가채무 속도도 가팔라질 수 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정부의 부채 관리 능력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고, 결국 신용등급이 하락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신용등급이 떨어지면 국채 수요는 감소하고, 금리는 치솟으면서 위기가 올 공산이 크다. 2010년 스페인과 이탈리아가 겪은 재정위기가 현실화할 수 있다는 얘기다.
정부 한은서 173조 차입, 세수부족 심각
국가부채가 빠르게 증가하는 이유는 4대 공적연금 등 정부의 의무지출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어서다. 2024~2028년 국가재정운용계획을 보면 복지 지출 등 정부의 의무지출은 올해 365조6,000억원에서 2028년 433조1,000억원까지 불어날 전망이다.
정부의 재정 운용 부실도 국가부채 증가에 영향을 끼쳤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지난해 정부가 한국은행에서 빌려 쓴 돈만 170조원에 달한다. 연간 누적 대출 규모로는 해당 통계를 확인할 수 있는 2011년 이후 역대 최대 액수다. 직전 최대치인 2023년의 117조6,000억원보다도 47% 불어났다. 차입 횟수 역시 2023년(64회)보다 20차례 더 많았다.
한은의 대(對)정부 일시 대출은 세입과 세출 간 시차에 따라 발생하는 자금 부족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활용하는 임시방편이다. 연간 누적 대출액은 2019년 36조5,072억원에서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정부 지출이 급증한 2020년 102조9,130억원으로 큰 폭 증가한 바 있다. 이어 2021년 7조6,130억원, 2022년 34조2,000억원으로 줄었다가 2023년 117조6,000억원으로 다시 급증세를 보였다.
정부는 지난해 10월에만 10차례에 걸쳐 15조4,000억원을 일시 차입했고, 지난해 12월 30일과 31일에도 2조5,000억원씩 5조원을 추가로 빌렸다. 지난해 빌린 173조원 중 1조원은 아직 갚지 못한 상태다. 작년 누적 대출에 따른 이자액도 2,092억원에 이른다. 이 또한 역대 최대 규모로, 2023년 연간 이자액(1,506억원)을 크게 웃돌았다.
정부의 차입이 늘어난 것은 기업 실적 부진과 경기 둔화 등으로 2023년에 이어 지난해에도 세금이 예상보다 덜 걷혔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지난해 12월 31일 기재부가 발표한 ‘2024년 11월 국세수입 현황’에 의하면 지난해 11월까지 누계 국세수입은 315조7,0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8조5,000억원 감소했다. 작년 11월까지 세입예산 대비 진도율은 86.0%로 집계됐다. 정부가 예상한 국세 수입(367조3,000억원)의 86%가량을 걷는 데 그쳤다는 의미다. 저조한 기업 실적으로 법인세(60조2,000억원)가 1년 전보다 17조8,000억원 덜 걷힌 것이 큰 영향을 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