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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美 관세 규제에도 수출 오히려 늘어 동남아로 디플레 수출 늘리며 저가 공세 현지 산업 구조조정에 반덤핑 관세 대응

중국이 부동산 경기 침체와 내수 둔화의 돌파구로 '디플레 수출'에 나서면서, 동남아시아를 비롯한 전 세계 시장이 중국발 저가 공세로 인한 가격 압박에 직면하고 있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 이후 미·중 무역 갈등이 심화하자 중국은 대미 수출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수출 시장 다변화에 나섰고, 이 과정에서 디플레 수출이 확산되면서 수입국의 산업 구조조정과 반덤핑 조치로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中 저가 공세에 브라질 철강산업 위기
29일 중국 해관총서에 따르면 지난달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으로 유입되는 중국산 수입품이 전년 동기 대비 21% 증가했다. 이는 3월 증가율 12%에 비해서도 크게 높아진 수치다. 대중국 관세를 145%로 높였던 미국향 수출이 21% 줄어든 것과 대조적으로 ASEAN향 수출이 급증했다. 동남아시아 역내에서도 중국과의 무역이 활발한 베트남, 태국, 인도네시아에 대한 수출이 20~30%씩 증가했다. 3월 감소세를 보였던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로의 수출도 4월에는 각각 15%씩 늘었다.
이러한 현상을 두고 전문가들은 중국이 가격을 낮춰 수출 물량을 늘리는 이른바 디플레 수출 전략을 동남아시아에 집중되고 있다고 분석한다. 이에 따른 파급 효과도 뚜렷하다. 일례로 인도네시아에서는 중국산 저가 제품 공세로 섬유·제화 업계의 공장 폐쇄와 인력 감축이 이어지면서 산업 전체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정부 차원에서 대응하는 나라도 있다. 말레이시아 정부는 덤핑 방지법을 도입한 데 이어, 이달 7일부터 중국 등에서 수입되는 폴리에틸렌 테레프탈레이트(PET)에 반덤핑 관세를 부과했다.
디플레 수출의 여파는 동남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세계 2위의 철강 수출국 브라질은 중국산 저가 철강 제품 유입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지난해 중국의 대브라질 철강 제품 수출 규모는 27억 달러로 2023년 19억 달러와 비교해 42.1% 증가했다. 반면 같은 기간 국내산 철강 생산은 6.5% 감소했고 브라질 최대 철강회사 게르다우는 경영난으로 상파울루 공장 직원 700명을 해고했다. 이에 브라질 정부는 지난해 10월 중국산 철강 제품에 최대 25%의 관세를 부과하기로 하는 등 조치에 나섰다.
美 대신 日·EU 등으로 '수출 다변화'
이런 상황에서 지난달 중국의 수출은 예상치를 상회하는 '어닝 서프라이즈'를 기록했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 후 대중국 관세 규제가 본격화한 가운데도 호실적을 달성한 것이다. 해관총서에 따르면 지난달 중국 수출액은 전년 동월 대비 8.1% 증가한 3,156억9,000만 달러를 기록했다. 반면 수입액은 같은 기간 0.2% 감소한 2,195억1,000만 달러로 집계됐다. 수출 증가율은 로이터통신(1.9%), 블룸버그통신(2.0%) 등의 예상치를 훨씬 뛰어넘었고 수입액 감소 폭은 로이터 예상치(-5.9%)보다 작았다.
수출입을 합친 무역 총액은 5,352억 달러로 전년 동월 대비 4.6% 늘어났다. 무역수지는 961억8,000만 달러 흑자를 냈다. 시장의 예상치 890억 달러를 70억 달러 가량 상회한 규모다. 다만, 3월 1,026억 달러 흑자보다는 감소했다. 현지 이코노미스트는 미국의 대중 고율 관세 발동 영향과 전년 동기 대비로 낮은 기저효과가 없어지면서 대미 수출이 줄어든 게 전체 수출 증가율을 둔화시켰다고 분석했다.
수출 품목별로는 자동차가 4% 증대했고 농산물, 비료, 섬유, 미가공 알루미늄 등도 수출 증가 품목으로 집계됐고 반면 장난감과 스마트폰, 컴퓨터 관련 제품은 전년 동월을 하회했다. 국가별로는 미국의 대중 고율 관세 발동 영향과 전년 동기 대비 낮은 기저효과가 사라지면서 대미 수출이 21% 급감했다. 미국과 달리 일본(7.8%), 대만(15.5%), EU(8.3%), 아세안(20.8%) 등 다른 교역국으로의 수출이 크게 늘어 전체 성장세를 견인했다.

부동산 시장 붕괴로 소비 위축 장기화
이처럼 중국이 디플레 수출에 나선 배경으로는 내수 침체 장기화가 꼽힌다. 특히 소비 부진과 부동산 시장 위축이 큰 영향을 미쳤다. 중국 GDP의 약 20%를 차지하는 부동산 시장은 2021년 헝다그룹의 디폴트 위기 이후 정부의 강력한 규제로 얼어붙었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9월까지 중국의 부동산 가격과 거래량은 각각 18개월, 17개월 연속 감소세를 기록했다. 올해 들어 일부 대도시를 중심으로 점진적인 회복세가 나타나고 있지만, 부동산 개발 업체의 높은 부채와 금융리스크, 미분양 주택 재고 등 구조적 문제가 남아 있다.
중국의 가계 자산에서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60%에 이른다. 이러한 상황에서 부동산 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지자 가계는 긴축 모드에 돌입했다. 빚을 갚고 예금을 하며 소비를 줄이는, 이른바 ‘대차대조표 불황’에 빠지면서 소비 여력이 줄어든 것이다. 가계의 버티기 태세에 지난해 중국 정부는 금리를 내리고 대출을 완화하는 경기부양책을 내놨지만 통하지 않았다. 국제금융센터는 올해 소비 증가율 전망치를 당초 5.6%에서 4.5%로 하향 조정했다. 통 큰 통화정책에도 오히려 씀씀이가 더 줄어들 것이란 전망이다.
부동산 시장 둔화로 인한 소비 부진은 결국 디플레이션으로 이어졌다. 식료품과 에너지 가격을 제외한 근원 물가는 20개월 연속 1.0% 미만으로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소비자물가와 생산자물가 상승세도 둔화하며 24개월 연속 디플레이션 위험이 이어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중국 경제의 ‘일본화(Japanication)’에 대한 우려마저 나온다. '일본화'란 한 국가의 경제가 충격 요법 없이는 저성장·저물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에 놓여 있거나 그런 국면으로 빠져드는 과정을 의미한다.
문제는 부동산 시장 침체가 촉발한 중국의 장기 침체가 세계 경제에 적신호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중국의 부동산 영역 조정 장기화가 아시아와 세계 경제에 해로울 수 있다"며 "가장 우려되는 상황은 경기 둔화로 인한 디플레이션 압력에 직면한 중국이 상품 수출로 문제를 풀려고 나서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중국의 디플레 수출로 싼값의 중국 제품의 공세에 중국과 유사한 수출 구조를 가진 국가의 산업 경쟁력이 타격을 입을 수 있고, 무역 갈등이 격화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