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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 설계와 실제 수요 간 괴리
재정 한계로 매입 확대도 어려워
수요·공급 불균형 해소는 과제로

정부가 빌라 시장을 살리겠다며 도입한 든든주택이 전국적으로 대규모 미달 사태를 겪으면서 공공 임대주택 정책의 구조적 한계가 다시 한번 드러났다. 특히 서울과 수도권에서는 일정 수준의 수요가 있었지만, 지방에서는 거의 전무한 수준으로 외면당하며 그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지금까지의 공급 전략이 수요와 괴리된 채 정책적 효능을 잃은 가운데, 정부가 새롭게 제시할 주택 정책에도 기대와 우려의 시선이 공존하는 모습이다.
수요 부진 넘어 ‘상품 구조 자체 문제’
10일 업계에 따르면 LH가 지난달 청약을 진행한 ‘전세임대형 든든주택’은 수도권을 제외한 대부분 지역에서 청약 미달 사태를 겪은 것으로 파악됐다. 5월 LH가 공급한 든든주택은 총 2,800가구로, △서울 249가구 △인천 10가구 △경기남부 165가구 △경기북부 △97가구 등 수도권 물량 521가구를 제한 나머지 2,279가구는 모두 비수도권 물량이다. LH와 국토교통부는 제도 안정화를 위해 청약 경쟁률은 공개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든든주택은 지난해 발표된 8·8 대책에 따라 올해 처음 시행되는 제도로, 빌라·다세대·도시형 생활주택 등 비(非)아파트 주택을 대상으로 마련된 제도다. LH가 먼저 권리 분석 등을 거친 뒤 임대차 계약을 체결하고 입주자에게 재임대하는 방식으로 세입자의 보증금 보호와 안정적 주거 환경 제공에 그 목적이 있다. 무주택 신생아·다자녀 가구라면 소득이나 자산과 관계없이 최대 8년간 거주할 수 있으며, 전세보증금은 △수도권 2억원 △광역시 1억2,000만원 △기타 지역 9,000만원까지 지원받을 수 있다.
시장에서는 든든주택의 실패가 예견된 일이었다는 반응이 주를 이룬다. 수혜 대상으로 설정된 계층의 빌라에 대한 선호도가 낮은 만큼 실거주 니즈에 부합하지 않는 공간을 선택할 이유가 없을 것이란 이유에서다. 예컨대 빌라의 경우 저층 매물이 주를 이루는 탓에 엘리베이터가 없는 곳이 많고, 건물 또한 밀집돼 있어 아이를 안거나 유모차에 태워 이동해야 하는 신생아·다자녀 가구엔 적합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공급자 논리에 따라서만 설계된 임대 사업이 실제 수요를 전혀 고려하지 못한 셈이다.
앞서 도입된 매입 임대주택 또한 유사한 이유로 시장의 외면을 받았다. 매입 임대는 정부가 민간 주택을 직접 매입해 저소득층과 청년, 신혼부부, 고령자 등 주거 취약 계층에게 시세보다 저렴한 임대료로 제공하는 공공 임대주택을 의미한다. 이 같은 임대 모델은 여러 구조적 비효율을 안고 있다. 특히 도심 외곽의 소형 빌라처럼 원래 시장 수요가 낮은 상품을 무리하게 매입해 임대하는 경우, 애초에 입주를 원하는 이들이 적고 공실률이 높아지는 문제가 반복된다. 든든주택 역시 이 같은 조건을 가진 물량이 상당수였다는 점에서 앞선 실패를 그대로 답습했다고 할 수 있다.
LH·HUG 재정 위기, 정책 지속 가능성 빨간 불
일각에선 매입임대 제도를 일부 수정해 확대하는 방안 등을 논의 중이지만, 비용 문제로 이 역시 쉽지 않다. 매입임대 정책의 주체인 LH는 2023년 말 기준 이미 137조원에 육박하는 부채를 안고 있는 상황이다. 이는 전체 비금융 공기업 중 가장 높은 수준으로, 추가적인 주택 매입 여력 자체가 매우 제한적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단기적인 주거 안정 목적에서 무리하게 매입을 확대할 경우, 공사의 재무 건전성 악화는 물론 장기적으로는 전체 공공주택 사업 기반이 흔들릴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일관된 시각이다.
이와 더불어 주택도시보증공사(HUG) 역시 지방 미분양 아파트에 대한 분양 보증 손실과 공사 중단 프로젝트에 대한 비용 부담으로 재정 여력이 급격히 위축되고 있다. 2023년부터 지난달까지 2년 5개월간 분양 계약을 이행하지 못한 채 공사 일정이 중단된 단지는 37곳에 달하며, 이에 따른 사고 금액은 2조4,000억원을 넘어섰다. 이는 HUG가 부실 사업을 떠안으며 금융 안전판 역할을 수행한 결과라는 점에서 지방 주택시장의 구조적 수요 부족을 공공이 감당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사실이 명확히 드러났다는 평가다.
이 같은 재정 한계 속에서 정부의 매입 확대에만 의지하는 전략은 사실상 지속 불가능한 국면에 들어섰다. 이미 현장에서는 매입 가능한 주택조차 수요에 맞는 조건을 갖추기 어려운 상황이며, 지자체나 공공기관 역시 수요자 맞춤형 물건 확보에 줄줄이 실패하고 있다. LH와 HUG 모두 기존 사업 유지조차 벅찬 상황에서 신규 매입 물량 확대는 현실적으로 실행이 어려운 실정이다. 무분별한 물량 확대보다 비효율 자산 정리와 정책 재설계에 대한 결단이 시급하다는 평가가 나오는 배경이다.

‘불량 자산 정리+실수요 맞춤형 공급’ 이중 트랙
든든주택 미달 사태 이후, 시장의 이목은 새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지로 쏠리고 있다. 이재명 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세금보다 공급”을 핵심 기조로 내세우며 대대적인 공급 확대를 예고 중이다. 정부 관계자들 사이에선 “이르면 연내 구체적인 공급 대책이 발표될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되는 등 정책 시계가 빨라지고 있다는 관측이 주를 이룬다. 치솟는 서울 집값과 전세 불안이 다시 사회적 이슈로 부각된 상황에서 새 정부는 공급 카드를 통해 근본적인 안정 방안을 제시해야 하는 상황이다.
정부는 주택 공급을 가로막던 각종 규제를 완화하고, 민간사업자 중심의 주택 공급을 전폭적으로 지원하겠다는 방침이다. 수도권을 중심으로 한 대규모 정비사업과 도심 고밀개발, 1기 신도시 재정비 등 다양한 공급 모델이 검토되고 있으며, 이전 정부에서 지연되거나 중단됐던 프로젝트들이 재가동될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정부는 이러한 정책을 통해 ‘집값은 잡되, 공급은 끊이지 않게 하겠다’는 이중 과제를 동시에 해결하겠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건설사들은 여전히 급등한 자재비와 인건비, 금리 부담을 호소하고 있으며, 분양가 규제나 사업성 부족 등을 이유로 착공을 미루는 사례 또한 속출하는 상황이다. 특히 중소형 건설사는 금융권 대출조차 쉽지 않아 정부가 공급 확대를 선언해도 실제 시장에서는 ‘공급할 주체가 없다’는 반응이 적지 않다. 이런 구조 속에서는 정부의 공급 확대 의지가 현실화하기까지 상당한 시간 소요와 인센티브 설계가 불가피하다.
결국 새 정부의 부동산 전략은 방향성 면에서는 긍정적 평가를 받지만, 실행 가능성을 놓고는 기대와 우려가 공존하는 국면이다. 세금보다 공급이라는 기조는 정답에 가까워 보이지만, 이를 가능케 할 제도적 기반과 재정 여력, 민간의 참여 유인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자칫 공허한 구호에 그칠 수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단순한 물량 약속이 아니라, 공공과 민간이 동시에 움직일 수 있는 설계된 구조인 만큼 곧 발표될 새 정부의 부동산 대책이 그 전환점이 될 수 있을지 시장의 이목이 쏠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