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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케미칼 실적 부진 장기화에 신용등급 하락 롯데지주 비롯해 다른 계열사들도 줄줄이 하향 유통·건설에 PEF까지, 산업 전반에 리스크 확산

롯데케미칼의 신용등급 강등을 시작으로 지주사인 롯데지주와 주요 계열사들의 신용도까지 줄줄이 하락하면서, 그룹 전반의 재무 건전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SK그룹 역시 배터리와 석유화학 부문 주력 계열사의 부진이 장기화하며 그룹 전체의 신용도에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여기에 올해 들어 건설·유통 업종과 사모펀드 운용사(PEF) 보유 기업들까지 신용등급이 잇따라 하향 조정되면서, 산업 전반으로 신용 리스크가 빠르게 확산되는 모습이다.
"롯데케미칼, 향후 2년 내 흑자 전환 불확실"
1일 신용평가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30일 국내 신용평가 3사(한국기업평가·한국신용평가·NICE신용평가)는 롯데케미칼의 기업 신용등급을 'AA(부정적)'에서 'AA-(안정적)'으로 한 단계 내렸다. 롯데지주의 경우, 무보증사채 신용등급을 'AA-(부정적)'에서 'A+(안정적)'으로, 기업어음 신용등급을 'A1'에서 'A2+'로 하향 조정됐다. 롯데케미칼은 최근 3년간 수요 부진으로 기초화학 부문의 수익성 저하되면서 전사 영업적자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중국발 증설 압력은 다소 완화됐지만, 그간 누적된 공급 과잉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
한기평은 롯데케미칼에 대해 "첨단소재 부문과 롯데정밀화학이 이익을 창출했지만, 기초화학과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의 적자를 상쇄하기에는 역부족"이라며 "공급 과잉과 올레핀계 중심의 사업구조 탓에 향후 2년 내 흑자 전환이 불확실하다"고 평가했다. 차입 부담도 리스크 요인으로 꼽힌다. 그동안 자본적지출(CAPEX), 지분투자 재원을 외부 차입에 의존한 결과, 지난해 말 연결기준 순차입금 규모가 7조1941억원으로 급증했다. 올해 1분기에는 6조6244억원으로 소폭 감소했으나, 여전히 차입 부담이 과중하다는 지적이다.
핵심 계열사인 롯데케미칼의 신용도 하락은 롯데지주와 주요 계열사의 신용등급에도 직격탄이 됐다. 한기평은 "롯데지주의 기준 신용도 하락으로 기존에 롯데물산·롯데캐피탈·롯데렌탈에 적용해 온 '유사시 계열사 지원 가능성에 따른 한 단계 등급 상향' 요전을 더 이상 반영하기 어렵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룹의 통합 신용도는 △롯데쇼핑(AA), 롯데케미칼(AA-), 롯데웰푸드(AA), 롯데칠성음료(AA) 등 주요 계열사의 자체 신용도를 가중 평균해 산정되는데 가중치가 높은 롯데케미칼 신용 하향으로 계열 전반에 신뢰도가 흔들리게 된 셈이다.

SK이노 대규모 투자로 그룹 재무 건전성 우려
롯데그룹뿐 아니라 SK그룹도 에너지·석유화학 부문 주력 계열사의 부진이 그룹 전체의 신용도에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올해 1분기 SK그룹의 매출은 31조2,300억원, 영업이익은 3,998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각각 5.4%, 72.8% 감소했다. 배터리 사업을 주도하는 SK온은 지난해 1조 1,270억 원의 대규모 영업적자를 낸 데 이어 올해 1분기에도 2,993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SK이노베이션은 합병 효과로 1분기 매출이 21조1,466억원까지 늘었지만, 업황 부진 속에 446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이에 따라 국제 신용평가사의 신용등급도 하향 조정됐다. 지난 3월 무디스는 SK이노베이션의 신용등급을 기존 '투자적격등급(Baa3)'에서 '투자부적격등급(Ba1)'으로 낮춰잡았다. 같은 시기, 화학 부문 자회사인 SK지오센트릭과 SK이노베이션이 보증하는 미국 법인 SK배터리아메리카(SKBA)의 채권 등급도 'Baa3'에서 'Ba1'로 강등됐다. 현재 SK그룹은 국내 신용평가사 기준으로 'AA' 등급을 유지하고 있으나, 무디스의 하향 조정으로 국내 신용도에도 압박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주력 계열사의 실적 악화는 그룹의 재무구조 전반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SK온의 1분기 순차입금은 23조4,659억원에 달하며, SK이노베이션도 대규모 투자와 실적 부진으로 부채비율이 높아진 상태다. 그룹 전체적으로는 2023년 83조원에 달했던 순차입금이 2024년 75조 원으로 다소 줄었으나, 일부 계열사의 과도한 차입과 투자 부담이 지속되면서 재무 건전성에 대한 우려가 이어지고 있다. 여기에 고부가가치 신사업 투자 확대, 글로벌 경기 불확실성 증대 등 외생 변수가 겹치면서 신용도 하방 압력이 커지고 있다.
다만, SK하이닉스, SK스퀘어 등 반도체 및 ICT 계열사가 양호한 실적을 유지하며 그룹 전체 수익성을 일정 부분 방어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글로벌 반도체 수요 회복과 기술 경쟁력 강화에 힘입어 1분기에도 안정적인 영업이익을 기록했고, SK스퀘어 역시 투자 포트폴리오 다변화로 수익성을 높이고 있다. 그룹 차원에서는 지난해 말부터 자산 매각 등 강도 높은 리밸런싱도 진행되고 있다. 그럼에도 업계에서는 SK온, SK이노베이션 등 주력 계열사의 부진이 장기화될 경우, 그룹 차원의 신용등급 하락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올 들어 대기업 계열사, 줄줄이 신용등급 하락
최근에는 대기업에 대한 신용 리스크가 산업 전반에 대한 우려로 확산되고 있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올해 들어 회사채 신용등급이나 전망이 하향 조정된 기업이 속출하고 있다. 실제로 올해 상반기 기준 국내 신용평가 3사가 신용도를 낮춘 기업은 10곳을 넘어섰다. 나이스신용평가는 전방산업의 업황 둔화를 이유로 에코프로·에코프로비엠·LG화학의 신용등급 전망을 부정적으로 조정했고, 한기평은 지난 1월 해외 플랜트 사업에서 대규모 손실을 낸 현대엔지니어링의 신용등급을 하향했다.
업종별로 보면 석유화학, 배터리, 유통, 건설 등이 부정적 흐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특히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이 해소되지 않은 건설사와 신탁사들이 신용등급 강등의 직격탄을 맞으면서 신세계건설, GS건설 등이 신용등급이 하락했다. PEF가 최대주주로 있거나 경영권을 보유한 기업의 신용도 하락도 두드러진다. PEF의 투자 관행과 영업실적 부진, 재무구조 불확실성 등이 복합적 요인이 작용하면서 올해 상반기 홈플러스, 롯데손해보험, 쌍용씨앤이 등의 신용등급이 일제히 하향 조정됐다
더욱이 내년부터는 펀드 만기가 다수 도래하면서 PEF가 사들인 기업의 사정이 악화될 수 있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PEF가 저금리 호황기 때, 대규모 인수 자금을 차입해 공격적으로 기업 인수에 대거 나섰다"며 "하지만 이제 경기 침체와 업황 둔화로 현금 창출력 대비 순차입금 수준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펀드 만기가 대거 도래하면서 수면 아래에 있던 문제가 드러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실제로 최근 신용등급 하향 위험이 거론된 기업 8곳 중 4곳이 PEF가 투자하거나 투자를 진행하고 있는 기업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