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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과정에서 동아시아 외교사 비중 작아 이해 부족 한국·동남아의 대응 전략을 교육에 포함해야 한다는 제안 중국과의 경쟁·협력에 필요한 전략적 판단력 함양 필요
본 기사는 The Economy 연구팀의 The Economy Research 기고를 번역한 기사입니다. 본 기고 시리즈는 글로벌 유수 연구 기관의 최근 연구 결과, 경제 분석, 정책 제안 등을 평범한 언어로 풀어내 일반 독자들에게 친근한 콘텐츠를 제공하는 데 목표를 두고 있습니다. 기고자의 해석과 논평이 추가된 만큼, 본 기사에 제시된 견해는 원문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전 세계 35개국 성인 중 ‘메이드 인 차이나’라는 아이디어·제품·데이터를 신뢰한다고 답한 비율은 30%에 불과하다. 그러나 중국은 이미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교역 네트워크의 중심에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보유한 42개국 사회과 교육과정을 분석한 결과, 1800년 이후 동아시아 외교사를 독립적으로 다루는 과목이나 단원을 포함한 국가는 6곳뿐이었다. 한국, 베트남, 말레이 술탄국 등이 지난 2천 년간 중국의 영향력에 대응한 역사를 다룬 사례는 2곳에 불과했다. 세계 각국 교실에서는 관세, 공급망 충격, 남중국해 갈등과 같은 뉴스를 매일 접하지만, 조공 외교나 전략적 모호성처럼 소규모 국가들이 강대국 속에서 자율성을 지켜온 역사적 방식은 거의 가르치지 않는다. 이에 따라 대중은 중국을 자주 논쟁의 주제로 삼으면서도, 미래 지도자들은 동아시아가 축적해 온 현실적 공존 경험을 배울 기회를 얻지 못하고 있다.

차단보다 이해, 정책 교육 전환 필요
미국, 유럽, 호주 등 서방 국가의 정책 논의는 여전히 억지력 강화, 반도체 수출 통제, 동맹 재편에 집중돼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중국을 차단하는 전략보다 중국과 주변국이 수천 년 동안 유지해 온 권력의 언어를 이해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지적한다.
중국도 변화 움직임을 보인다. 2025년 3월, 중국 협상단은 일본과 한국에 미국의 신규 관세에 공동 대응하자고 제안했다. 단순한 위계로는 협력을 확보할 수 없다는 점을 인정한 것으로 해석된다. 비록 성과는 없었지만, 중국이 기존에 무시하던 ‘파트너십 방식’을 실험한 사례로 주목된다.
전문가들은 한국과 동남아의 대응 방식을 정책 교육에 포함하는 것이, 중국 경제 영향력이 확대되는 시대에 시민 역량을 강화하는 안전장치가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세계 교육과정의 불균형
2023년부터 2025년 초까지 OECD가 운영하는 교육과정 자료를 분석한 결과, 전 세계 고등학교 상급 과정 학생 중 아편전쟁 이후 중국을 주제로 한 심층 사례를 배우는 비율은 14%에 그쳤다. 한국의 1992년 중국과의 수교나 아세안의 2016년 남중국해 중재 승소를 다루는 경우는 6%였다. 반면 유럽 통합을 심층적으로 학습하는 비율은 83%였다.

주: 교육 주제-아편전쟁 이후 동아시아 외교사, 한국 및 아세안 심화 사례 연구, 유럽 통합(X축), 교육 과정 비중(Y축)
2024년 퓨리서치(Pew Research Center) 조사에서는 고소득국 성인의 57%가 중국의 경제적 영향력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며, 보다 명확한 정책 대안을 요구했다. 전문가들은 정책 대안이 실효성을 가지려면 정확한 이해와 교육이 뒷받침돼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왜곡된 인식이 그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적응형 주권, 동아시아의 역사적 대응
교육 현장에 필요한 것은 도덕적 훈계가 아니라, 강대국 속에서도 자율성을 지켜낸 실제 경험이다. 한국 사서에는 신라 상인들이 조공 사절단을 활용해 명나라 시장 진출을 확대하면서도 완전히 종속되는 것을 막은 사례가 기록돼 있다. 베트남 황제들은 베이징에 금박 칙서를 보내면서 동시에 독립성을 드러내는 연호를 제정해 이중 의례를 확립했다.
근현대에도 이러한 방식은 이어졌다. 싱가포르는 미국 해군 기항권을 기반으로 말레이시아에서 수자원 보장을 확보하고, 중국과의 교역에서 시장 개방을 이끌어냈다. 아세안은 의장 성명 발표를 늦춰 중국의 분열 전략을 무력화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사례가 상황에 맞춘 유연한 대응과 명확한 경계 설정의 중요성을 보여준다고 말한다. 이를 교육에 포함하면 학생들은 외교의 세부 차이를 구분하고, 표면상 양보처럼 보이는 결정 속 전략적 의도를 파악하는 역량을 기를 수 있다.
2025년 관세 연대 시도의 의미
2025년 중국은 한국과 일본에 미국의 보복관세에 공동 대응할 때 희토류를 우대 공급하겠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두 나라는 해양 분쟁 미해결과 국제 평판 부담을 이유로 거절했다. 이 사건은 중국이 미국의 압박에 항상 단독으로 대응하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주변국이 이해관계가 커진다고 해서 반드시 중국에 협력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이 사례는 신뢰성을 검증하고, 조건을 조율하며, 동맹을 강화한 뒤에야 제안을 수용하는 동아시아 특유의 외교 패턴을 잘 보여준다. 교육 현장에서는 이를 통해 GDP 규모보다 신뢰가 연대 형성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이해할 수 있다.
실험적 교육 프로그램 확대 가능성
한국, 베트남, 싱가포르에서 시범 운영된 ‘동아시아 전략 실습 프로그램’은 동아시아 외교사, 게임이론, 언어를 활용한 역할 학습을 한 학기에 압축해 진행했다. 학생들은 1884년 조선 조약 위기를 재현하고, 미국의 수출 통제 상황에서 반도체 공급 협상을 모의로 진행했다.
OECD 글로벌 역량 평가 기준에 맞춰 실시한 시험에서, 협상 핵심 요소를 파악하고 외교적 절차를 예측하는 능력이 평균 22% 향상됐다. 2025년 중반 유네스코 조사에서는 동아시아 대학의 68%가 교육과정의 33% 이상을 온라인으로 제공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기반을 활용하면 국가 간 원격 협력 수업이 가능해져, 교과서로는 전달하기 어려운 외교적 뉘앙스를 익힐 수 있다.
성과 측정 지표 도입
교육 개혁이 지속되려면 성과를 수치로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8개국 연구진은 ‘중국 문해 지수’를 설계해 교육 성과를 측정하고 있다. 지수는 역사·조약·경제 지식, 창의성과 윤리적 판단을 평가하는 모의 협상 능력, 교육 전후의 사고 변화와 아시아 유학 의향 등 세 영역으로 구성된다. 시범 집단 4,000명의 학생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경쟁에서 반드시 승자와 패자가 갈린다는 인식이 평균 6% 줄었고 아시아 유학 의향은 9% 늘었다.

주: 학생 태도 변화 항목-지정학 제로섬 인식, 아시아 유학 의향(X축), 비율(Y축)/수강 전(진한 파랑), 수강 후(연한 파랑)
중국 외교 교육, 비판적 시각 유지 전제
2024년 글로벌 커뮤니케이션 기업 에델만(Edelman) 신뢰도 조사에 따르면, 캐나다는 해외에서 가장 신뢰받는 국가 브랜드 1위로 평가됐지만 중국은 30%대에 머물렀다. 반면 아프리카와 라틴아메리카 중소득국에서는 중국 투자를 긍정적으로 보는 비율이 더 높았다. 전문가들은 이 결과가 국가 이미지는 도덕적 가치보다 실제 성과에 크게 좌우된다고 분석한다. 따라서 중국 외교 방식과 이에 대한 주변국의 대응을 교육에 포함하는 것은 권위주의 미화가 아니라 국제 인식 형성의 실제 과정을 이해하는 데 목적이 있다.
교육을 전략으로 전환해야
전문가들은 지금이야말로 한국과 동남아의 역사적 대응 방식을 교육에 반영해, 변화하는 국제 질서 속에서 주도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할 수 있는 시민을 길러야 한다고 강조한다. 동아시아 외교 전략을 주류 교육에 포함한다고 해서 특정 국가에 종속된 세대가 나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기후 금융, 공급망 회복력, 데이터 거버넌스 규칙을 좌우하는 국제 권력 구조를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는 인재를 육성하게 된다.
본 연구 기사의 원문은 Rehearsing with the Dragon: Why Global Curricula Must Absorb Two Millennia of East Asian Statecraft | The Economy를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2차 저작물의 저작권은 The Economy Research를 운영 중인 The Gordon Institute of Artificial Intelligence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