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이시바 퇴진에 ‘확장 재정’ 기대, “단기적 활황에서 장기 재정 위기로 귀결” 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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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기 후보들 재정 확대·통화정책 완화 관측 국가부채 누증 및 금리 상승에 따른 재정 압박 경기 회복세 속 팽창 재정, 장기적 부담 심화 전망

이시바 시게루 총리의 사임이 권력 공백을 넘어 일본 재정정책의 궤적을 뒤흔들 변곡점으로 작용하고 있다. 차기 정권에서 공격적 재정 팽창 정책인 ‘아베노믹스’를 재현할 것이라는 관측이 커지면서 증시가 최고치를 경신하고 채권도 하락 압력을 받고 있지만, 시장에서는 확장 재정이 단기적 활황은 불러와도, 일본 경제 전반엔 결국 독으로 작용할 위험이 짙다는 분석이 나온다.
‘제2의 아베노믹스’ 기대에 도쿄증시, 사상 최고치 근접
9일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에 따르면 8일 기준 도쿄증시 닛케이225지수는 전 거래일 대비 1.48% 상승한 4만3,643.81로 마감했다. 장 초반에는 4만3,838.60까지 고점을 높이면서 지난달 18일 기록했던 종가 기준 사상 최고치 4만3,714.31을 일시적으로 웃돌기도 했다. 장중 최고가는 8월 19일의 4만3,876.42다. 미국 달러당 엔화 가치는 최대 0.8% 하락해 엔·달러 환율이 148.58엔까지 올랐다. 엔화 가치는 유로화에 대해서는 173.91엔, 영국 파운드화 대비로는 200.33엔까지 하락하며 1년 만의 최저치를 기록했다.
이 같은 흐름은 ‘재정적 매파’로 분류되는 이시바 총리가 7일 퇴진한 가운데, 집권당인 자민당이 참·중의원에서 과반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어 향후 야당 협력을 얻기 위해 더욱 재정 확장적인 정책을 내놓을 가능성이 크다고 시장이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차기 자민당 유력 총재 후보로 지목되는 다카이치 사나에 전 경제안보상의 경우 ‘여자 아베’라고 불릴 정도로 아베노믹스를 옹호하는 인물로, 중앙은행 초저금리 정책 유지를 주장하며 경기회복을 위한 정부 지출 확대를 지지해 왔다. 이와 관련해 GCI자산운용의 이케다 다카마사 수석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만약 다카이치 의원이 후임 총리가 된다면, 이는 주식시장에 긍정적인 재료”라며 “정부 지출 확대를 강하게 지지하는 입장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日 국가부채, 국내총생산의 두 배 "재정여력 경고등"
문제는 일본의 재정 구조가 이미 정부 부채로 인해 팽창해 있다는 점이다. 후임 총리가 무한정 완화 정책을 하기에는 상황이 여의치 않다는 얘기다. 그간 일본은 중앙은행인 일본은행과 국내 금융기관이 자국 국채를 대부분 보유하고 있어 외국 자본의 급격한 유출 위험은 낮다는 점에서 비교적 안정돼 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과도한 국가부채는 경제 전반에 부담이 되고 국채 금리 상승은 정부 차입 비용을 끌어올려 장기적으로 심각한 재정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일본 재무성에 따르면 일본의 국가부채는 현재 9조 달러(약 1경2,330조원) 규모로, 이는 국내총생산(GDP)의 두 배를 넘어선 것이자, 선진국 중 가장 높은 수치다. 농민과 소규모 자영업자에 대한 지원, 코로나19 팬데믹 당시의 긴급 구호자금 등과 더불어, 최근에는 국방비 확대와 소비자 물가 보조금까지 정부가 직접 지원한 분야는 광범위하다. 여기에 고령인구 증가로 인한 연금 및 사회보장 지출까지 더해지며 재정 부담은 계속 커지고 있다.
이런 상황 속 일본은행이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해제하고 장기 국채 매입도 축소하면서 국채시장에서는 일본 재정에 대한 우려가 수면 위로 드러나고 있다. 이달 4일 30년 만기 국채 금리는 연 3.286%로 치솟으며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고 40년물도 올해 들어 약 90bp 상승해 3.506%에 도달하면서 시장 불안이 확대됐다. 국채금리가 소폭만 상승해도 일본의 이자 지출 규모가 기하급수적으로 확대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일본 재무성의 전 사무차관인 야노 코지는 “일본의 부채는 이미 신용등급 강등 위험에 놓여 있다”면서 “금리가 조금이라도 오르면 전체 경제에 파급효과가 클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2021년에도 자민당의 확장적 재정계획을 “빙산을 향해 돌진하는 배”에 비유하며 공개 비판한 바 있다.
경제 회복세 가시화, 추가 금리 인상 명분
더군다나 일본은 급격한 금리 인상 여파로 내년 국채 이자만 13조 엔(약 122조원)가량을 내야 하는데, 최근 들어 경제 회복세가 가시화되고 있어 추가 금리 인상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일본 내각부에 따르면 2분기 실질 GDP 성장률(개정치)은 전분기 대비 0.5%, 연율 환산으로 2.2% 증가했다. 지난달 발표된 속보치(전분기 대비 0.3%, 연율 1.0% 증가)보다 눈에 띄게 상향된 수치다. 성장률 상향을 이끈 것은 일본 GDP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개인소비다. 전분기 대비 0.2% 증가였던 개인소비는 개정치 에서 0.4% 증가로 수정됐다. 경상수지도 6개월째 흑자 행진을 지속했다. 재무성의 국제수지 통계(속보치)에 따르면 일본의 7월 경상수지는 2조6,843억 엔(약 25조원) 흑자로 집계됐다.
앞서 일본은행은 지난해 3월 17년 만에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종료한 것을 시작으로 지난해 7월 기준금리를 종전 0∼0.1%에서 0.25% 정도로, 올해 1월에는 0.5% 정도로 각각 올린 뒤 지난 7월까지 4회 연속 동결했다.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 총재는 지난 7월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 "현재 실질금리는 매우 낮은 수준이고 경제·물가 정세의 개선에 따라 계속해서 정책금리를 올려 금융완화 정도를 조절하겠다"며 추후 금리를 인상할 수 있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다.
이런 가운데 공개된 2분기 GDP 증가세는 일본은행이 연내 추가 금리 인상에 나설 명분을 제공한다. 다만 성장률의 개선은 곧 통화 긴축으로 이어지고, 긴축은 다시 재정 부담을 가중시킨다. 한 경제 전문가는 "당장이야 확장 재정할 것이라는 기대에 주가 상승, 채권 시장 약세가 나타났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채권 금리 상승은 일본 정부의 부채 부담 발목을 잡고, 세율을 더 올린다"며 "멀리 봤을 때 확장 재정은 일본 경제 전체에 독"이라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