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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노인 일자리 사업'에 참여했다가 사망한 노인이 무려 29명이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건복지부의 ‘최근 5년간 노인 일자리 사업 근로자 사고 현황’ 자료에 따르면 노인 일자리 사업에 종사하는 노인 근로자가 일터 혹은 통근 중에 사망한 사례가 2018년 1명, 2019년 7명, 2020년 10명, 2021년 9명이었고, 올해는 7월까지 2명이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 같은 기간 동안 부상 등을 합한 총 사고 건수는 6,166건으로 집계됐다. 이에 지자체 차원에서 안전교육을 강화하고 관리·감독을 철저히 하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기할 만한 점은 총 사망자가 29명 가운데 27명이 근로 시간이 짧고 업무 난이도가 낮은 '공공형 일자리 사업'에 참여한 노인들이라는 것이다. 시장형·공공서비스형 일자리에 참여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노쇠해 신체적 기력이 저하됐거나, 교육 수준이 매우 낮은 노인들이기에 사망 사고가 자주 일어난다고 분석된다. 실제로 2020년 사망한 노인 A씨는 공원에서 잡초를 제거하던 중, 출차하는 차량에 치여 사망했다.
노인 일자리 사업의 일선 관리자들의 역량이 매우 부족
문제는 노인 일자리 사업을 감독·관리하는 담당자들의 역량이다. 해당 담당자들의 채용 프로세스는 취업 알선 웹사이트에서 지원받는 형식으로 이뤄지는데 한 달에 200만원 가량의 박봉을 주는 만큼, 경험이 많거나 전문성이 있는 인재들이 선뜻 지원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채용 조건이다. 일례로 강원도 홍천군 노인 일자리 전담센터에서 낸 관리 인력 모집 공고를 보면 운전면허 보유와 일부 컴퓨터활용능력을 제외한 그 어떤 능력도 요구하지 않는다. 지원자가 부족할 것이기에 내놓은 고육지책이겠지만, 많은 노인의 안전을 담당하는 감독자 모집 공고치고는 부실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물론 노인 일자리 사업에 있어 ‘사고 위험군’ 노인들에 대한 분석을 하고 대책을 내놓으려는 노력을 정부가 전혀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한국노인인력개발원 등 공공기관에서 초고령 노인 일자리 참여자의 실태 및 적합한 공공형 일자리 개발에 대한 연구 용역 등을 꾸준히 발주하고 있으며, 적합한 공공형 노인 일자리의 노동 시간이나 유형에 대한 학계나 정부 주도 연구들이 일부 나오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보건복지부의 인식이다. 각급 지자체들의 경우 이미 공공 일자리 사업이 일자리 정책이 아닌 복지 정책임을 눈치채고 그 활동 과정에 문화 활동, 사교활동 등을 집어넣고 있지만 여전히 복지부는 ‘정책브리핑’ 등지에서 생계 부담 측면을 중점으로 공공형 일자리에 대해 접근하고 있다. 더 중요한 것은 일자리 수행 과정이 감독자들에 의해 잘 관리되어 노인들에게 안전해야 하며, 심리적 안녕감을 고양할 수 있어야 한다는 측면임에도 계속 경제적 측면을 먼저 고려하고 있는 것이다.
공공형 노인 일자리, 거대한 복지 정책의 일환
공공형 노인 일자리 사업은 분명 거대한 복지 정책의 일환이다. 경제적 보조가 되는 것 외에도 노인들의 신체적 건강과 안전, 심리적 안정을 지켜줘야 하는 것이다. 최근 노인 일자리 사업 우수 자치단체에 선정된 원주시의 경우, 복권기금과 함께 불법 광고물 제거 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이 사업에 참여하는 여성 노인들이 건강과 일상의 활력을 찾고 있다고 입을 모으는 만큼, 정부가 역량 있는 관리자를 선발해 처우를 다소 향상한다면, 사고 위험도 낮추고 노인들의 건강 및 심리적 안녕도 전반적으로 개선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한국의 고령층이 직면한 가장 큰 문제가 빈곤인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대한민국의 노인 자살률은 10년 넘게 OECD 국가 중 독보적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또한 노인들이 자살을 생각하는 원인 중 1위는 압도적으로 ‘경제적 어려움’이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반드시 경제적 어려움만이 노인들을 힘들게 하는 것이 아니다. 건강, 외로움, 관계 단절 등도 노인들을 괴롭게 한다. 이런 상황에서 공공형 노인 일자리는 노인들에게 경제적인 측면뿐 그 과정에서 심리적 안정은 물론, 안전까지 담보돼야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