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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8일 서울에 우리나라 기상 관측 이래 최대 폭우가 쏟아졌다. 당시 강남지역의 강우량은 시간당 116mm로, 150년 만의 기록적인 폭우였다. 기후변화로 인한 재난이 먼 미래가 아님을 직감케 하는 사건이다.
이에 서울시는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수방대책 체계를 기후재난에 초점을 맞춰 대대적으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예측이 어려운 국지성 집중호우가 해마다 증가하며 치수 관리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는 만큼 수해안전망을 더욱 정교하게 구축하겠다는 방침이다.
지역별 방재시설 확충해 집중호우 대응력 높일 것
서울시는 2012년 설정돼 서울 전역에 동일하게 적용되고 있는 '방재성능목표'를 10년 만에 전격 상향하고 지역별로 목표치를 세분화한다. 상향한 방재목표에 맞춰 지역별로 정교하게 방재시설을 확충해 집중호우에 대한 대응력을 높이겠단 계획이다.
'방재성능목표’는 시간당 처리할 수 있는 강우량 목표로 택지개발, 재개발‧재건축 등을 통한 새로운 도시기반시설 계획을 수립하거나 하수관로, 빗물펌프장 등 방재설비 설계의 기준이 된다. 방재성능목표의 상향은 곧 도시 전반의 강우 처리 역량 강화를 의미하는 셈이다. 서울시는 현재 방재성능목표를 시간당 최대 95mm에서 100mm로 높이고 침수취약지역인 강남역 일대는 110mm까지 상향한다. 이로써 앞으로 설치되는 방재시설은 시간당 100mm~110mm의 강우를 처리 가능하도록 설계 기준이 강화된다.
또 인력 중심 수방 대응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데이터, 사물인터넷(IoT) 등 첨단 기술 기반의 지능형 수방 시스템도 구축한다. 이에 △실시간 대피 경고를 알리는 스마트 경고 시스템 △침수 예·경보제를 내년에 시범 도입할 방침이다. 아울러 인공지능(AI)으로 수방 관련 데이터를 자동 분석‧예측해 실시간 전파하는 ‘AI 기반 수방통합시스템’ 구축에도 나선다.
침수 우려지역에 '추락방지 시설' 설치키로
인명피해 사각지대 해소를 목표로 반지하 등 침수취약가구에 대한 안전대책도 강화한다. 장애인, 독거어르신 같이 긴급대피가 어려운 세대에 1:1 공무원을 지정해 집중호우 시 대피와 복구를 돕고 내년 우기 전까지 침수 방지시설도 무상으로 설치한다.
지난번 폭우로 다수의 인명피해가 발생했던 맨홀에 대해선 연말까지 침수우려지역 1만 개소에 ‘추락방지 시설’을 설치하기로 했다. 또한 전 지하철 역사 출입구에는 내년 5월까지 차수판(물막이판)을 설치하고, 지하주차장 등에 물막이 시설 의무 설치를 위한 법제화도 추진한다. 침수 시 물을 퍼내는 양수기를 가까운 곳에서 쉽게 대여할 수 있도록 내년 우기 전까지 1만 9,000대를 동주민센터 등에 확대 배치한다.
한유석 서울시 물순환안전국장은 “수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많은 예산과 시간이 필요한 일이지만 시민 안전은 타협할 수 없는 부분이기에 꼼꼼히 준비해서 차질 없이 추진하겠다”며 “수해 예방대책이 온전히 자리 잡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시민들의 적극적인 동참이 필요한 만큼, 시민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협조를 당부드린다”라고 말했다.
피해 여부 가른 '빗물배수터널' 11년 전 무슨 일이?
이상기후 문제는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들의 피부 속을 직접 파고든다. 실제 우리나라의 국지성 집중호우는 그 강도와 빈도가 해마다 증가하는 추세다. 수도권 기상청에 따르면, 국지성 집중호우로 인한 호우 특보는 2021년 3건에서 2022년 91건으로 30배 이상 증가했다.
지난 폭우 당시에도 강우 상황이 급격히 변하면서 15~30분 만에 비구름대가 생성되는 등 과거와는 전혀 다른 양상을 보였던 바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애초부터 홍수에서 안전한 나라가 아니었다. 이번 집중호우는 우리나라가 자연재해에 매우 취약함을 다시 한번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사실 서울시는 이미 11년도 전인 2011년 이 같은 위기 상황을 내다보고 시간당 100mm 이상의 폭우를 감당할 수 있도록 강남역 등 7곳에 ‘대심도 빗물배수터널’을 설치하겠다고 발표했던 바 있다. 그러나 아이디어 차원에서 제시됐던 대심도 빗물배수터널은 이후 지역별 소규모 분산형 사업으로 변경되며 점차 동력을 잃어갔다.
대심도 빗물배수터널 아이디어를 가장 처음 내놓았던 건 오세훈 당시 서울시장이었다. 그러나 이후 박원순 서울시장이 자리에 앉게 되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당초 7개가 건설될 예정이던 빗물배수터널은 양천구 신월에 1개 설치되는 것으로 최종 마무리됐다.
물론 대심도 빗물배수터널 계획을 엎은 박 전 시장에 모든 책임이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오 시장이 빗물배수터널 계획을 발표할 당시엔 타당성 조사와 예산 반영 과정 등을 아직 거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아이디어 차원이었을 뿐이었다.
또 박 전 시장이 수해 문제 해결에 관심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박 전 시장은 2012년 취임 후 첫 출장으로 일본을 방문해 유수지·대심도 빗물배수터널 등 수해 방지책을 샅샅이 훑어보고, 빗물배수터널 확충 및 지역별 맞춤형 대책 마련을 위한 시민단체 토론도 진행했다.
그럼에도 빗물배수터널이 유보된 것은 막대한 예산과 환경단체들의 극심한 반대가 발목을 잡았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을 토건 사업으로 보는 부정적 인식이 사회 전반에 널리 퍼져 있던 것도 이유 중 하나다. 특히 당시 박 전 시장이 내걸었던 캐치프레이즈는 '토건 공화국 반대'였다.
정부 대처 미적지근, 與野 없는 대책 마련 시급
이유야 어찌 됐든, 빗물배수터널의 유무가 이번 집중호우 피해 여부를 결정지었단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실제 이번 집중호우에서 빗물배수터널이 있는 신월동 일대가 거의 피해를 보지 않았지만 강남은 결코 적지 않은 피해를 입었다. 앞으로 서울시를 비롯한 우리나라는 집중호우 외에도 미래 기후변화에 대비하기 위한 정책을 쌓아 나가야 한다. 이번처럼 11년 전 엎어진 계획으로 인해 피해 규모가 더 커지는 일이 없도록 말이다.
우리나라의 폭염·열대야 일수는 10년 전 대비 50%가량 증가했다. 국제 기후학자들의 모임 '세계 기후 속성'(WWA)에 따르면, 기후 위기에 따른 극심한 가뭄 발생 빈도가 최대 20배 이상 늘었다. 특히 기후 위기에 따른 이상기후는 시간이 지날수록 가속화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에 대한 우리나라의 대처는 미적지근하다. 기상청은 이상기후를 '기온, 강수량 등의 기후요소가 평년값에 비해 현저히 높거나 낮은 수치를 나타내는 극한 현상'으로 정의하고 있다. 절댓값 없이 상댓값만을 제시하고 있기에 이상기후에 대한 의미가 모호해지고, 이에 따라 반응이 늦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인명 사고에 정쟁이 따라붙어선 안 되듯이, 기후변화에도 여야가 따로 없어야 한다. 특정 집단 이익 불리기에 기후 위기가 이용되어서도 안 된다. 이제는 초당적 협력을 통해 이상기후에 대비하는 안정적인 장기 플랜을 꾸려나가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