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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선거제도 개혁 ① 조경태의 비례대표 폐지안, 현실 가능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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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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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에서 다양한 경험을 했고, 남다른 정치적 인사이트를 전달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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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조경태 의원실

국민의힘 차기 당권주자로 꼽히는 조경태 의원(5선, 부산 사하을)은 대표적인 비례대표제 폐지론자다. 새정치민주연합(더불어민주당의 전신) 의원이던 시절부터 비례대표제 전면폐지 및 국회의원 정수 감축을 주장해 왔다. 그의 오랜 소신은 2019년 국민의힘의 전신인 자유한국당이 당론으로 내걸었던 국회 의석수 30석(10%) 감석 공약에도 반영된 바 있다. 당시 조 의원은 한국당의 수석최고위원을 역임하며 해당 공약이 형성되는 과정에 큰 영향을 끼쳤다.

2017년 탄핵 이후 자유한국당은 줄곧 낮은 지지율로 신음하던 상황이었으나, 국회 의석수 축소 공약은 큰 대중적인 반향을 일으켰다. 비례대표 의원에 대한 국민적 불신이 심했기 때문이다. 자유한국당의 당론 발표 직후 한국갤럽이 2019년 5월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기존 비례대표 의석을 없애고 지역구 의석만 270석으로 하여 국회의원 전체 수를 10% 줄이는 방안에 관해 설문한 결과 60%가 찬성했고 25%가 반대했으며 15%는 의견을 유보했다. 다른 변경안에 대해서는 찬성률이 채 40%도 넘지 못한 것을 고려하면 비례대표 폐지에 대한 찬성 여론이 상당함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조 의원의 비례대표제 폐지, 단순한 숫자놀음이 아니라 개헌 사항

문제는 비례대표 의원 폐지가 단순한 제도 개혁 사항이 아닌 개헌 사항이라는 것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41조 3항은 “국회의원의 선거구와 비례대표제 기타 선거에 관한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이를 두고 헌법학자들은 대부분 “비례대표제 도입을 전제한 것으로 보는 것이 학계의 일반적 견해”라며 “비례대표제 폐지는 헌법에 위배된다고 봐야 한다”고 설명한다.

건국 이래 우리 헌법은 총 9번의 개정 과정을 거쳤고 가장 최근의 개헌은 1987년에 이뤄졌다. 광화문에 10만 명이 모여 만든 6·10 민주화 항쟁이 그 원인이다. 이전에는 군부 독재의 정권 유지 목적이 반영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즉 헌법 개정은 그 자체로 자주 있는 일도 아니고 쉬운 일도 아니다.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기 위해서는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 (200석)의 찬성이 있어야 하고 국민투표에서 국민 과반수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단순히 300석에서 270석으로 국회 의석수 숫자 조절하는 문제가 아니라 아예 35년 만에 헌법 개정을 해야 할 사안인 것이다.

조 의원 "한국의 개혁 대상 1호는 정치권, 아예 200석으로 줄여야"

한편 비례대표제 폐지가 개헌 사항이지만, 조 의원의 주장을 들으면 제법 고개가 끄덕여진다. 조 의원은 “한국에서 개혁 대상 1호는 정치권”이라며 “비례대표 47석을 없애고 소선거구제를 중·대선거구제로 바꾸면 100석가량 줄일 수 있다”며 국회의원 숫자를 200석으로 바꿀 것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면서 조 의원은 “비례대표가 일종의 직능 대표의 역할을 한다지만, 국회의원 누구나 국민의 이익을 대변할 수 있고 직능단체들이 꼭 해당 비례대표 의원만 찾는 것이 아니다”라면서 “비례 의원들은 국민이 아닌 당 대표만 바라보는 것이 현실”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여성,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여도 준비된 사람이라면 국민들이 선택할 정도로 국민의식이 높아졌다”며 “비례대표제를 폐지해도 사회적 약자의 국회 진출이 막히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실 우리나라의 국회의원 정수는 OECD 기준으로 전체 인구나 유권자 수 대비 많은 편이라고는 보기 힘들다. 우리 국민 10만 명당 국회의원 수는 0.58명으로 국회의원 1명이 국민 17만2천여 명을 대표하지만, OECD 평균인 10만 명 당 의원 0.97명을 한국 인구에 적용하면 한국의 국회의원은 지금의 300명이 아닌 502명이 돼야 한다. 타국과 비교하면 외려 의원 수를 늘려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실제로 한국과 의회 형태나 선거제도가 유사한 국가들과 비교하면 한국의 인구수 대비 의원 수가 제일 적다.

진짜 한국 국회의 문제점은 그 효과성이다. 2015년 서울대 행정대학원 정부경쟁력연구센터가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보수 대비 의회의 효과성’ 측면에서 비교 대상이 된 OECD 27개국 가운데 26위로 이탈리아에 이어 두 번째로 한국 국회가 낮았다. 국회의원 숫자가 많아서 문제라기보다는 국회의원 개개인이 일을 못 해서 문제인 것이다. 의원 수만 감축하면 정치가 개혁된다는 조 의원의 주장이 다소 무리수인 이유다.

소선거구제 축소 주장하지만, 조 의원 본인이 제도의 수혜자라는 주장도

비례대표제를 전면 폐지하고 소선거구제를 중·대선거구제로 바꾸자는 주장 역시 그럴듯하지만, 문제가 있다. 일단 인지성 문제다. 중대선거구제에 대한 여러 연구에 따르면 같은 당내에서도 후보가 난립하는 만큼 후보자들의 정책과 공약을 소선거구제에 비해 면밀히 살펴보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인물 중심의 선거로 가기 쉽기에 지역 내에 네트워크가 많고 선거 자금이 많은 소위 세습 정치인이 유리한 환경이 조성된다. 중대선거구제를 실시했던 과거 일본 정치에서 현격히 나타나고 있는 문제점이다. 또한 후보가 많고 같은 당에서 복수의 후보가 출마하기에 유권자들이 가장 최악인 후보를 떨어뜨리기 위한 전략적 투표를 하는 과정 자체를 어렵게 만든다. 이처럼 여러모로 소선거구제보다 유권자들의 정치적 의사결정 방식을 어렵고 복잡하게 만드는 것이 중대선거구제다.

정책 대결과 선심정치를 저어하는 성질이 높은 것이 비례대표제라는 것은 널리 알려진 상식에 가깝다. 정치체제 관련 권위자인 정치학자 후안 린츠는 선거제도의 비례성이 높을수록 보편적 정책프로그램을 중심으로 정당 간 경쟁이 일어나고 선심성 정책이 저어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임기가 정해져 있고 의회 해산권이 없는 대통령의 경우 의회를 장악하는 능력이 의원내각제의 총리보다 약한 만큼 비례대표가 아닌 지역구의 의원들이 대통령에게 큰 압박을 받지 않고, 지역구에 선심성 정책과 예산을 제공하는 데 더 몰두한다는 것이다. 조경태 의원 본인이 부산 사하을 지역의 맹주로 자리매김한 이후 당 대표였던 문재인 대통령에게 큰 정치적 압력을 받지 않고 여러 갈등을 일으켰던 것 자체가 소선거구제하에서 지역구의 거물 의원들이 대통령이나 거물 당수에게 일체의 통제를 당하지 않는다는 이치를 잘 설명해준다.

또한 여성, 장애인 등 소수자적 정체성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원내 진입하는 것이 불가능한 시대는 아니지만 여전히 지역구 선거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은 버겁다. 나경원 전 의원이 "내가 4선 국회의원을 하면서 얼마나 많은 여성 비례의원들이 왔다가는 걸 봤겠나"라며 "더불어민주당은 여성 정치인에게 당선 가능성 높은 지역에 공천을 주거나 입각시키는 방법으로 기회를 줬지만 우리 당에선 여성을 험지에 내모는 식으로 구색만 맞췄던 것 같다"고 발언한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차라리 한국 정치 현실에 잘 안착돼 있고 본인이 수혜를 입은 제도인 소선거구제를 제대로 개혁해서 실시하자고 주장한다면 좀 더 힘이 실릴 것이다. 아무래도 중대선거구제로의 변화는 제도 변화의 혁신성을 강조하기 위해 조 의원이 실현 가능성이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주장에 포함했다는 심증이 강하기 때문이다. 실제 개혁 과정에서는 조 의원 본인도 소선거구제 확대 개선에 힘을 실을 가능성이 높은 만큼 조 의원 측은 소선거구제를 제대로 실시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서 심도 있게 논의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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