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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TT 생존경쟁] “‘더 글로리’, 한 시간이면 충분한데 구독 왜 해요?” 요약본의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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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넷플릭스

<더 글로리> 1,200만, <약한영웅 Class 1> 549만, <카지노> 460만. 각각 넷플릭스와 웨이브, 디즈니+를 찾아 감상한 시청자의 수가 아니다. 작품의 '내용을 알기 위해' 유튜브 요약본을 찾은 사람의 수다. 이들은 왜 OTT 플랫폼이 아닌 유튜브를 찾는 걸까?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의 등장은 큰 변화를 가져왔다. 극장과 TV 등 특정한 시간과 장소에서만 가능했던 콘텐츠 감상이 언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편리함으로 바뀌며 정통 매체의 입지를 위협하고 있는 것. 자연스럽게 대중의 관심과 일상 속 대화의 주제 역시 OTT 오리지널 콘텐츠로 이동했다.

문제는 국내에서 사업을 전개 중인 OTT 기업들이 모두 구독 기반 유료 서비스로 운영 중이라는 점이다. 시대의 흐름을 따르기 위해서는 '비용'이 발생한다는 이야기다. 특히 10회 이상의 장편으로 제작되는 시리즈의 경우 시즌·파트제 또는 순차 공개를 적용하는 경우가 많아 그 비용이 적지 않다.

구독료와 시간, 에너지까지 아끼려면 요약본이 답?

넷플릭스 <더 글로리>는 총 16부작의 이야기를 파트1과 파트2로 나눠 지난달 30일과 오는 3월 10일 공개한다. 중간에 구독을 쉰다고 해도 최소 두 달 이상 비용 지불이 필수다. 디즈니+ <카지노>는 시즌제와 순차 공개를 동시 적용했다. 지난달 21일 공개된 <카지노> 시즌1은 첫 주 3회 공개 후 1주일에 1회씩 추가됐고, 오는 2월 15일 공개되는 시즌2 역시 같은 방식을 적용한다. 실시간으로 작품을 감상하기 위해서는 최소 4개월 동안 디즈니+를 구독해야 한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지금까지 OTT 오리지널 화제작 중 전편 동시 공개를 선택한 작품은 웨이브의 <약한영웅 Class 1>(이하 약한영웅)이 유일했다.

비용의 발생은 금전적인 부분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다. 바로 작품 감상에 필요한 '시간'의 소요다. <더 글로리>는 회당 50분 안팎, <카지노>는 60분, <약한영웅>은 40분 안팎이다. 8회를 정주행하기 위해서는 최소 3시간 이상이 걸린다. 특히 디즈니+ 등 일부 플랫폼은 모바일 어플리케이션(앱)에서 '배속재생'을 지원하지 않아 길게는 8시간을 꼬박 투자해야 작품의 모든 내용을 읽을 수 있다.

자연스럽게 시간과 비용을 아낄 수 있는 요약본에 대한 수요는 증가했다. 인기작에 따라 여기저기 플랫폼을 옮겨 다니며 구독할 필요도 없을뿐더러 한 작품의 내용을 파악하기 위해 30분에서 1시간 정도의 시간만 투자하면 충분하기 때문이다. 작품의 디테일까지 알 수는 없지만, 요약본으로도 지인들과의 대화에 참여하는 데 전혀 무리가 없다.

하루에도 몇 편씩 쏟아지는 콘텐츠의 홍수 역시 시청자들이 OTT 플랫폼에서 뒷걸음치게 만든다. 한 대중문화 평론가는 "과거에는 소수의 기업들만 있던 OTT 시장에 새로운 플레이어들이 등장하며 경쟁이 치열해졌고, 콘텐츠의 양도 따라가기 힘들 만큼 폭발적으로 늘었다. 여가 시간에 OTT만 보고 있을 수는 없으니 많은 시청자가 요약본을 찾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진=티빙

업계에서는 요약본의 성행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원칙적으로 유료 제공 중인 영상 콘텐츠를 가져다 가공하는 것은 저작권 위반에 해당하지만, 요약본 제작과 확산을 막는다고 해서 OTT 구독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기 때문. 일부 시청자는 요약본으로 먼저 '찍먹'(어떤 작품에 호기심을 가지고 가볍게 접해보는 행위) 후 구독 여부를 결정하기도 한다. 이 때문에 오랜 시간 적대 관계였던 OTT 플랫폼과 유튜브 크리에이터가 공생 관계로 변모하는 사례도 종종 포착된다. 유튜브 영상으로 재탄생하는 과정에서 편집자의 주관적인 평가가 개입되는 경우가 많은데, 영향력 있는 크리에이터의 긍정적인 평가는 곧 작품의 화제성을 끌어올리는 결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공생 대신 OTT가 직접 자체 요약본을 배포하는 경우도 있다. 과거에는 초반 1~2회를 무료 공개하는 방식으로 시청자들의 눈길을 끌었지만, 요약본을 찾는 시청자가 급증하며 달라진 부분이다. 실제 디즈니+는 첫 연애 예능 <핑크라이> 1회를 유튜브 및 네이버TV를 통해 무료 공개했지만, 작품 중반까지 기대했던 성적을 거두지 못하자 마지막 에피소드 공개를 앞두고 56분 분량의 요약본을 제공해 눈길을 끌었다. 티빙은 <유미의 세포들> 시즌2 공개를 앞두고 1시간 18분 분량의 시즌1 요약본을 유튜브에 공개했다.

"콘텐츠 즐기는 엄연한 방식" VS  "실제로는 '본 척'에 불과해"

요약본을 통해 내용을 모두 숙지하고 자연스러운 대화가 가능한 것을 '작품을 봤다'고 볼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배속재생과 마찬가지로 엄연히 콘텐츠를 감상하는 방법 중 하나"라는 의견과 "내용을 '아는 것'과 '감상'은 다르다"는 의견이 엇갈리고 있는 것. 여기에 "구독 중인 플랫폼 작품은 정주행하고, 굳이 구독까지 할 만큼의 흥미가 없다면 요약본으로 즐기면 되지 않겠냐"는 웃지 못할 '절충안'까지 나오고 있다.

문화계 종사자들은 대부분 회의적인 시각을 보낸다. 이동진 문화평론가는 과거 한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요약본으로 시청하는 것은 영화를 본 게 아니라 봤다고 착각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요약본에 대한 수요 증가를 '지적 허영심'에 비교하며 짧게 압축된 이야기만으로 작품 전체를 판단하는 것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오늘날 OTT 플랫폼들은 회차별 요약본을 제공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플랫폼 구독의 의미를 퇴색시키는 '제살깎아먹기'임을 몰라서가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무수히 생성되고 있을 불법 콘텐츠에 일일히 대응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데다, 이마저 하지 않으면 본편 공개 전 시청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는 수단이 전무하기 때문.

주목할 만한 점은 일부 시청자들 중심으로 건강한 미디어 환경 조성에 대한 움직임이 시작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 배우가 출연했으니 다른 작품보다 높은 순위에 올라야 한다"는 지극히 사적인 애정에서 비롯된 경우도 많지만, 이들은 요약본에서는 볼 수 없는 디테일을 찾아내 공유하고 'n차 관람'이라는 신풍속을 낳으며 바람직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실제 지난달 30일 파트1 8회를 동시 공개한 <더 글로리>는 끊임없이 새로운 디테일과 파트2에 대한 복선이 발견되며 식지 않는 열기를 보여주고 있다. 이는 1,200만이라는 요약본의 높은 조회수가 꼭 작품의 흥행과 반비례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더 글로리>는 공개 4주가 지난 오늘(27일)까지 넷플릭스 [데일리 OTT 랭킹] 최상단을 지키며 순항 중이다.

돈과 비용을 아끼기 위한 시청자들의 욕구에 따라 제작되고 확산한 요약본.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다시 플랫폼으로 구독자를 불러 모으는 이들 역시 시청자다. "좋은 건 같이 앓자"는 진심이 요약본에서는 볼 수 없는 보석 같은 장면들로 다른 시청자를 끌어들이고 있는 것이다. OTT 플랫폼이 손을 잡아야 할 상대는 유튜브 크리에이터가 아닌 시청자가 되어야 옳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요약본으로 담아낼 수 없는 '진짜 보석'을 선보이는 것이 필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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