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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이상의 비상장 기업)의 기업가치 중 한국 유니콘이 차지하는 비중이 최근 5년간 절반 가까이 줄었다. 이에 전경련은 '기업형 벤처캐피탈(CVC) 규제 개선'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내놨다. CVC 규제 개선을 통해 투자를 활성화해야 한다는 건데, 과연 유니콘 성장 저해의 원인이 CVC 규제에만 있을까.
전경련 "CVC 규제 완화 필요하다"
21일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이 미국 데이터 분석·리서치 기관 CB인사이트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지난 2019년부터 지난달까지 전 세계 유니콘의 기업가치는 1조3,546억 달러에서 3조8,451억 달러로 183.9% 증가했다. 그러나 동기간 한국은 290억 달러에서 325억 달러로 12% 증가하는 데 그쳤다. 전 세계 유니콘의 기업가치 중 한국 기업이 차지하는 비중도 2019년 2.1%에서 2023년 5월 0.8%로 1.3%p 감소했다.
같은 기간 미국 유니콘의 기업가치 비중이 48.8%에서 53.4%로 4.6%p 증가한 것과는 상당히 대비되는 모습이다. 이외 프랑스(0.4%→1.5%), 호주(0.4%→1.4%), 이스라엘(0.7%→1.4%) 캐나다(0.2%→1.3%)도 기업가치 비중이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 기업의 위상이 점차 떨어지고 있다는 방증이다.
한국 유니콘이 이커머스 등 일부 업종에 편중됐단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업종별로 보면 2023년 5월 한국 유니콘은 이커머스(28.6%), 인터넷 소프트웨어 및 서비스(21.4%), 모바일 및 통신(14.3%) 등 일부 업종에 집중돼 있다. 핀테크(7.1%), 헬스케어(0%), 데이터 관리&분석(0%), 인공지능(0%) 분야의 비중은 이커머스 등과 비교하면 압도적으로 낮았다. 이런 가운데 세계적으로 유니콘이 많은 업종은 핀테크(21.3%), 인터넷 소프트웨어·서비스(18.9%), 이커머스(8.9%), 헬스케어(8.0%), 인공지능(7.6%), 공급망·유통·배달(5.5%), 사이버 보안(4.8%) 순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결과를 바탕으로 전경련은 기업형 벤처캐피탈(CVC) 규제 개선 등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CVC 규제 개선을 통해 투자를 활성화함으로써 벤처 생태계를 되살려야 한다는 주장이다. 추광호 전경련 경제산업본부장은 "스타트업의 성장과 유니콘 증가를 위해서는 스타트업 성장 과정에서 원활한 투자가 필수"라며 "CVC 규제를 개선하고 스타트업이 해외시장으로 진출할 수 있도록 지원이 필요하다"고 힘줘 말했다.
CVC 규제가 문제일까?
CVC란 대기업이 출자한 벤처캐피탈(VC)을 일컫는다. CVC는 투자기업의 사업 포트폴리오와 시너지 모색, 외부 기술·인력 탐색 및 확보, 신사업 진출 등의 전략적 목적도 함께 추구한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VC와 차이가 있다. 해외 주요 기업의 경우 대기업의 풍부한 자본력, 인력, 기술 등의 자원을 바탕으로 스타트업과 협업을 통해 중장기적 관점에서 전략적·재무적 목적을 추구하는 기업벤처링의 일환으로 CVC를 활용하고 있다.
기업들의 CVC 설립 및 운영 환경이 비교적 자유로운 글로벌 투자시장에선 기업벤처링에 대한 주목도가 높다.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도 불구하고 해외 글로벌 기업들은 CVC를 통한 벤처투자를 확대한 바 있다. 이는 대기업으로부터 흘러들어오는 자금의 비중 증대를 불러일으켰다. 유니콘 성장의 기반이 만들어진 것이다. 글로벌 기업들은 투자 수익을 실현시키고자 하는 목적 외에도 모기업의 사업 포트폴리오 다각화, 외부자원 확보, 신시장 진입을 위한 수단으로써 CVC를 적극 활용하는 추세다. 우리나라 또한 CVC 규제 완화를 통해 이 같은 긍정적인 순환구조를 만들어 내자는 게 전경련의 주장이다.
다만 일각에선 CVC 규제 완화의 실효성에 의문을 표하고 있다. 실제로 전문가들은 "규제가 풀린다 해서 CVC가 더 생기거나 투자가 늘어나진 않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오히려 CVC가 총수 일가의 세습 및 사익 편취에 악용될 여지가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재벌 대기업과 하청기업의 전속거래 및 재벌 내부거래가 만연한 현 재벌 체제의 한계를 그대로 둔 채 CVC 규제만 만진다면 부작용이 적지 않을 것이라는 게 이들의 견해다.
결국 CVC 규제 완화가 한국 유니콘 기업의 증가를 불러오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의견이다. 애초 투자금은 이미 시장에 많이 풀려 있는 상황이다. 해외 VC가 우리나라에 투자해 유니콘으로 성장한 기업들도 많다. 쿠팡, 토스, 컬리 등 예시가 다 그렇지 않은가. 그러나 국내 CVC엔 해외 VC와 같은 여력이 없다.
유니콘 성장 저해가 무조건 CVC 규제 탓은 아냐
유니콘 성장 저해 요인을 무작정 CVC 규제에서 찾는 건 어불성설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애초 우리나라에 유니콘이 나오지 않는 이유는 위험 자본을 통해 도전적인 투자를 단행하는 VC가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실제 몇 년 새 나온 국내 유니콘 기업들의 투자사 리스트를 살펴보면 국내 VC보다 해외 VC들이 더 많다. 그만큼 국내 기업들은 위험 자본에 '배팅'을 거는 일이 거의 없다.
VC에 정부 돈이 들어간 경우가 많다는 점도 발목을 잡는다. 정부 돈이 들어간 VC의 경우 의사결정 구조나 프로세스 관련 규제가 많다. 그만큼 모태펀드가 출자된 펀드를 운용하는 국내 VC와 해외 VC 간의 경쟁력은 확연하다. 투자 결정 속도, 투자 계약서 조건 등에 큰 차이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정부의 과도한 신산업 규제도 유니콘 기업의 탄생을 가로막는 요소다. '타다'의 승차 공유와 같은 새로운 운송 서비스가 규제에 발목 잡히면서 시민들은 고질적인 택시 부족으로 불편을 겪었고, 대부분의 선진국들이 이미 채택한 원격의료 역시 규제로 인해 도입이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다. 윤석열 정부가 강력한 규제개혁 의지를 천명하긴 했으나, 여전히 신산업에 과감히 도전할 수 있을 만한 환경이 조성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CVC에 대한 규제 완화 흐름은 벤처기업의 스케일업, IPO 외 회수 채널의 다양화, 대기업에 의한 인수합병 등 향후 벤처 생태계가 양적·질적으로 성장하는 도약의 발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국내 유니콘 기업이 새로이 등장하지 못하는 건 비단 CVC 규제만의 문제는 아니다. 다양한 문제가 얽히고설켜있는 만큼, 유니콘 기업의 비중 감소를 CVC 규제의 부작용으로만 몰고 가선 안 된다. 급격한 규제 완화는 되레 또 다른 부작용을 낳을 우려가 있다. 보다 신중한 문제 해결이 요구되는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