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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원에 따르면 보건복지부 2023년 정기 감사에서 2015년부터 태어난 국내 영·유아 중 2,000여 명이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이 중 1%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수원 냉장고 영아 시신 보관 사건이 발각됐다. 1%에 대한 표본 조사에서 범행 사실이 드러난 만큼, 미신고 신생아 현황 전수조사를 제도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대두된다.
경기남부경찰청에 따르면 21일 영아 살해 혐의로 30대 여성 A씨를 긴급 체포해 조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2018년 11월과 2019년 11월 각각 아기를 출산하고 곧바로 살해한 뒤 자신이 살고 있는 경기 수원시 장안구 한 아파트 세대 내 냉장고에 시신을 보관해 온 혐의를 받고 있다.
출생신고 미등록 1% 표본조사에 영아 살해 현장 발견
경찰에 따르면 A씨는 2018년 11월에 아기를 병원에서 출산한 후 집에서 목 졸라 살해했다. 이어 2019년 11월에도 같은 방식으로 둘째 아이를 살해한 것으로 알려졌다. A씨가 살해한 2명의 자녀는 모두 생후 1일 영아로 성별은 남녀 1명씩이다.
경찰이 조사에 나선 것은 감사원의 보건복지부 감사에서 2015년 이후 출생아 2,000여 명에 대한 출생신고가 누락된 것에 대한 확인조사에서 출발했다. 감사원은 표본에 해당하는 1%를 추출해 지방자치단체에 아이들의 생존 여부를 확인 요청했고, 그 결과 경기 수원시 한 아파트 주택 냉장고에서 영아 시신 2구가 발견됐다.
감사 자료를 전달받은 수원시는 지난달 말 A씨에 대한 현장 조사에 나섰으나 A씨가 조사를 거부하자 지난 8일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즉각 수사에 나선 경찰은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는 과정에서 A씨에게 범행 일체를 자백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어 울산 남부경찰서도 22일 새벽 3시경, 울산 남구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내 분리수거장에서도 환경미화원이 숨진 아기 시신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현장 감식과 폐쇄회로(CC)TV 분석, 탐문 수사 등을 통해 아기를 유기한 용의자를 추적하고 있다.
감사원은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나머지 사례에 대해 전수조사를 검토 중이다. 정부는 지난 4월 유사 사건 방지를 위해 의료기관에서 지방자치단체에 출생 사실을 의무적으로 통보하는 ‘출생 통보제’를 도입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정부는 출산 장려, 미혼모 엄마는 영아 살해
여성계에서는 미혼모의 영아 살해 배경으로 양육 책임을 방기한 남성과 부실한 미혼모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한 정부의 책임을 꼽았다. 홀로 양육이 불가능한 상황인 만큼 고심 끝에 영아 살해 결단을 내렸을 것이라는 해석이다.
보건사회연구원의 2019년 실태조사에 따르면 2017년 국내 인공임신중절은 약 4만9,764건으로 추산됐다. 이 중 합법 수술은 4,113건으로 전체의 10%가량에 불과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21년 합법적 중절 수술은 3,056건으로 전문가들은 인공임신중절 수술 전체 건수는 합법 수술의 약 10배 정도가 유지되고 있는 것으로 예상한다.
여성계 관계자들은 미혼모가 중절 수술 기회를 놓친 것이 주원인인 만큼, 현재 입법 공백 상태에 놓인 임신중절 관련 법령 개정이 하루빨리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지난 2019년 4월 헌법재판소는 형법상 임신중절을 전면 금지한 처벌 조항이 헌법에 위배된다는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바 있다. 2020년 말까지 국회에서 대체입법이 이뤄졌어야 했음에도 여전히 공백 상태다. 법령이 정비되지 않다 보니 임신중절이 필요한 여성은 수술이 가능한 병원을 수소문하고, '부르는 게 값'인 높은 수술비까지 감당해야 하는 실정이다.
여론은 피임을 놓친 부모에 대한 비난
국내 언론, SNS, 커뮤니티 등으로 확인하는 빅데이터 여론에서는 '영아' 관련 키워드로 본 사건과 직접적으로 관련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냉장고', '긴급', '경찰', '체포'(이상 하늘색 키워드) 등이 등장하고, 이어 '낙태', '짐승' 등의 비난 키워드와 함께 '피임', '남편', '친모', '남자'(이상 붉은색 키워드) 등 영아 부모의 피임 실패를 지적하는 키워드가 나타난다.
누리꾼들은 영아를 살해한 미혼모에 대한 비난뿐만 아니라 임신의 주체 중 하나인 남성의 책임도 강하게 지적하는 모습이다. 과거 임신중절 경험이 있다는 L씨는 임신 사실을 알고도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은 미혼모의 책임도 무시할 수 없다면서도 빠른 대처를 위한 정보 공유가 부족했던 점을 들며 정부의 책임을 지적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팀은 지난 2019년 임신중절 실태조사에서 "낙태율이 대폭 감소해 왔지만 임신 경험자의 19.9%가 인공임신중절을 했을 만큼 많은 여성이 ‘위기 임신 상황’에 놓여 있다"면서 "성교육 및 피임 교육을 더욱 강화하고, 인공임신중절 전후의 체계적인 상담제도, 사회경제적인 어려움에 대한 지원 등이 필요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정부가 출산율 제고에 힘쓰는 만큼 영·유아가 건강한 환경에서 자랄 수 있도록 적극적인 임신중절 관리 및 미혼모 관리에도 나서야 한다는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