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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보증기금(신보)의 ‘소상공인 위탁보증’ 누적 부실률이 올 연말 14%, 2027년 최대 30%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됐다. 소상공인 위탁보증은 2020년 5월부터 시행된 코로나19 팬데믹 피해 소상공인 대상 대출 지원 프로그램이다.
소상공인 부실률 급증의 원인으로는 △코로나19 팬데믹 시기 급증한 소상공인 대출 △가파른 기준금리 인상으로 인한 이자 부담 등이 지목된다. 이에 업계에서는 실효성 있는 지원책이 마련될 때까지 정부 차원에서 대출 연장·상환 유예 등을 실시, 부실로 인한 '시스템 리스크'의 위험을 막아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2024년 대위변제액 4,500억원? 소상공인 '부실' 공포
소상공인 위탁보증은 소상공인이 신보 보증을 활용해 은행에서 최대 4,000만원까지 대출을 실행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2020년 당시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사업 영위가 어려워진 소상공인을 위해 시행됐으나, 시행 후 3년이 지난 현재 위탁보증으로 인해 불어난 소상공인 부채는 우리나라 경제의 '시한폭탄' 취급을 받고 있다.
24일 국회 정무위원회 김희곤 의원이 신보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3년 기금운용 계획안 작성 당시 3,780억원으로 추정했던 부실 금액은 현재 6,555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위변제액은 3,646억원에서 5,852억원까지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경기 회복 속도가 예상보다 더딘 가운데, 지난 6월부터 원금 상환 시기가 도래하며 부실 위험이 급증한 것으로 풀이된다.
총공급액(7조4,309억원) 대비 누적 부실률은 올 6월 9.17% 수준이었으며, 올해 말에는 14.02%까지 뛸 것으로 추산된다. 2027년에는 누적 부실률이 최대 30%까지 급증할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도 제기된다. 업계에서는 정부의 자영업자 대출 만기 연장이 도래하는 올해 9월 이후부터 '연쇄 부실'이 발생할 것이라는 우려가 흘러나오고 있다.
신보는 현재 부실 추세와 대위변제액 증가 추이를 고려해 2024년에 약 4,500억원 상당의 재원이 필요할 것으로 판단, 필요한 재원을 기획재정부에 요청한 상태다. 나라가 소상공인을 대신해 대출을 갚아야 하는 상황이 현실이 된 셈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시스템 리스크를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국가 재정으로 일단 대출을 상환할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은다.
이자는 불어나고, 최저임금은 뛰고
소상공인이 '빚의 늪'에 빠진 근본적인 원인으로는 금리 인상이 지목된다. 지난해 한국은행의 연이은 기준금리 인상으로 인해 소상공인 대상 대출의 이자 부담이 급증했기 때문이다. 실제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등에 따르면, 소상공인의 성장과 경영 안정을 위한 정책 자금인 '일반경영안정자금'의 금리는 △2020년 4분기 1.97% △2021년 4분기 2.53% △2022년 4분기 4.13% △올해 1분기 4.64%로 수직 상승했다. '소상공인 지원'이라는 정책자금의 목적을 믿고 편하게 받았던 대출이 '폭탄'이 돼서 돌아온 셈이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매출 공백을 메꾸기 위해 대출에 의존한 소상공인들은 한계에 직면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말 기준 자영업자 대출 잔액은 1,019조8,000억원에 달했다. 이는 코로나 최초 발생 시점인 2019년 4분기 말 대출 잔액(684조9,000억원) 대비 48.9% 급증한 수준이다. 벼랑 끝에서 대출로 생계를 이어오던 자영업자들이 이자 부담을 견디지 못한 채 줄줄이 무너지며 부실 위험이 급증한 것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최저임금 인상 역시 자영업자의 부담을 가중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최저임금위원회는 지난 19일 내년 최저임금을 올해보다 2.5% 인상된 9,860원으로 의결해 발표한 바 있다. 인상 폭은 비교적 작지만, 이미 코로나19 팬데믹과 금리 인상으로 인해 한계에 내몰린 소상공인에게는 이 역시 부담이 될 수 있다는 평가다.
'팬데믹 충격'에 발목 잡힌 자영업자들
소상공인들은 정부의 '손실 보상'을 부르짖고 있다. 1,000조원에 달하는 자영업자 부채는 결국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정부 방역 조치로 인한 손실에서 비롯했다는 주장이다. 실제 다수의 자영업자는 정부의 사회적 거리두기 정책, 영업정지·제한 조치 등으로 인해 매출에 큰 타격을 입었으며, 월세 등 사업체 유지를 위한 고정비 지출·생활비 확보를 위해 대출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소상공인들이 대출에 의존한 것은 미흡한 정책 지원 때문이었다. 영국, 독일, 캐나다, 미국 등 대다수 국가는 코로나 팬데믹 초기 봉쇄 조치 시행과 동시에 영업손실이 발생한 자영업자를 대상으로 △긴급지원금 지급 △소득 지원 △손실 보상 등 다양한 방식의 지원을 실시했다.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수백만원 규모의 단편적인 재난지원금을 차등 지원하다가 2021년 3분기가 돼서야 손실 보상에 나섰으며, 이마저도 차등적으로 제한된 금액만 집행했다.
정부는 최근 들어서야 위기에 빠진 소상공인의 부담을 덜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난 6월 2일 16개 법률안과 4개 대통령령 개정안을 입법 예고한 것이 대표적이다. 해당 개정안은 소상공인이 일시적으로 등록기준에 미달하게 된 경우 일정 기간 제재 처분을 유예하고, 소상공인에 대한 제재 처분 유예 기간을 현행 50일 또는 90일 이내에서 180일 이내까지 확대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하지만 이같은 지원책은 이미 침체한 시장에 '산소호흡기'를 달아주는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우리나라 자영업계의 재기를 위해서는 보다 실효성 있는 지원책을 강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소상공인 부실 문제가 시스템 리스크로 이어질 우려가 있는 심각한 상황인 만큼, 한계 상태에 놓인 소상공인 채무자들을 안정적으로 지원할 방안이 마련되기 전까지는 대출 연장·상환 유예 등 추가적인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