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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서부·북동부 제외 대부분 지역 가격 상승세 수급 불균형 심화 → 가격 추가 상승 불가피 시중 유동성 흡수 못한 금리, 한동안 높은 수준 예상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의 주거용 부동산 가격이 연일 상승세를 이어가면서 팬데믹을 계기로 침체했던 부동산 시장의 전환기를 앞당기는 모습이다. 이같은 현상은 주택담보대출(모기지) 금리가 최고 수준까지 치솟은 가운데 일어난 것으로, 시장에서는 금리 인하 시점이 미뤄질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전기·전자 산업 활발한 美 남부 주택 가격 오름세
26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37개 OECD 회원국의 지난해 3분기 명목 주택 가격은 직전 분기와 비교해 2.1% 상승했다. 주택 가격이 하락한 국가는 전체의 약 3분의 1 수준에 불과했다. 이는 OECD 회원국 절반 이상이 부동산 시장 침체를 벗어나지 못했던 최근 수년간의 모습과 사뭇 달라진 풍경으로, 2022년 12월 OECD 회원국들의 주택 가격 상승률은 0.6%에 머물며 2012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을 보인 바 있다.
미국의 주거용 부동산 가격이 안정적인 우상향 흐름을 보이며 시장의 회복을 주도했다. 특히 미국 남부와 중서부 집값은 각 2.7%, 5.0% 오르며 시장 회복에 속도를 높였다. 상대적으로 주택 가격이 높은 서부(-5.6%)와 북동부(-4.5%) 등 일부 지역에서는 가격 하락도 포착됐지만, 아파트와 임대용 단독주택, 노인·학생 전용 주택 등 다양한 형태의 주거용 부동산 거래가 늘며 거래량의 동반 상승을 이끌고 있다.
이와 같은 거래량 증가와 가격 상승은 기록적인 고금리 상황에서 전개되며 눈길을 끌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는 코로나19 사태 초창기 일시적으로 인하했던 금리를 2021년부터 단계적으로 상향 조정했고, 그 결과 지난해 미국 모기지 금리는 최고 7%대에 달했다.
전문가들은 미국 주거용 부동산 시장의 빠른 회복이 고정금리 상품이 주를 이루는 모기지 대출 시장의 특성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풀이했다. 금리가 급격히 치솟을 경우 주택구매 수요는 감소할 수 있지만, 기존 주택 소유자의 원리금 상환 부담에는 변동이 없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이자 상환 부담이 커지면서 급매물이 쏟아지고, 그 결과 가격 하락으로 이어지는 여타 국가의 부동산 시장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여기에 지난 1월 실업률이 53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인 3.4%를 기록하는 등 미국 경제가 활성화의 걸음을 서두르고 있다는 점도 미국 주거용 부동산의 가격을 떠받치는 요소다.
일각에서는 미국 내 건설업자들이 소비자의 이자를 선납하는 등 파격적인 혜택으로 분양 수요자를 끌어들이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영국 경제잡지 이코노미스트는 “북미 건설업체들이 자체 금융을 통해 선이자 선납에 나선 경우가 다수 포착됐으며, 이들은 7% 안팎의 모기지를 4%대에 제공해 소비자들을 끌어들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부동산 시장 회복 청신호, 금리 인하엔 ‘적신호’
일정 수준에서 유지되는 공급과 달리 지속해서 증가하는 수요 또한 부동산 가격의 오름세를 부추기는 요소다. 임금 수준이 비교적 높은 컴퓨터와 전기·전자 산업이 완연한 회복세에 접어들면서 강력한 주택 수요로 이어진 것이다. 특히 에너지와 인력이 풍부한 남부 지역을 중심으로 투자가 증가하는 가운데 해당 지역은 서부나 북동부에 비해 주택공급이 부족해 가격의 추가 상승이 불가피한 실정이다.
다만 전문가들은 가격 상승세가 지속 중인 부동산 시장에 나타날 수 있는 각종 부작용에 우려를 드러내고 있다. 통상 고금리는 시중의 유동성을 흡수해 주택 가격을 억제하는 효과를 낳지만, 수급 불균형이 지속되고 있는 미국 부동산 시장에서는 이같은 성과가 전혀 드러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시장에서는 부동산 가격 거품이 걷힐 때까지 금리 인하는 기대할 수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이와 관련해 실라 베어(Sheila Bair) 전 예금보험공사 의장은 “미국 주택시장은 수급 불균형에서 비롯된 거품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고 진단하며 “지금처럼 공급이 제한된 상태가 지속될 경우 높은 주택가격이 한동안 이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오랜 시간 이어져 온 미국의 경기침체가 올해 완전히 끝날 것이라는 믿음이 퍼지고 있어 금리 인하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릴 전망”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