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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복현 금감원장, 일괄 배상 배제 입장 밝혀 부실 펀드 100% 배상 선례 남긴 한국투자증권 “투자 결정 내린 소비자 책임 간과” 지적 이어져
금융감독원이 홍콩H지수 기초 주가연계증권(ELS) 관련 배상 기준안 발표를 앞두고 있다. 오는 11일 발표 예정인 해당 배상안에는 투자자의 연령 등을 고려해 최대 100%까지 차등 배상하는 방안이 담길 전망이다. 이복현 금감원장이 일괄 배상은 검토하지 않고 있다는 입장을 밝힌 가운데 시장에서는 투자 상품 운용사 및 판매사에 과도한 책임을 지우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이어진다.
연령 및 자산 배분 현황 고려, 최대 100% 보상 유력
이 원장은 5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 인터뷰에서 홍콩H지수 기초 ELS와 관련한 대규모 손실 사태를 비롯해 다양한 금융 현안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이 자리에서 그는 홍콩H지수 ELS 손실 배상 비율을 0%부터 100%까지 차등화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입장을 보였다. 이 원장은 “투자자의 연령과 앞선 투자 경험, 투자 목적은 물론 은행 창구에서 어떤 설명을 들었는지 등 다양한 요소를 반영해 소비자와 은행 또는 증권사의 책임 비율을 정리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면서 “서둘러 정리를 끝내고 오는 11일에는 배상안을 발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시장의 가장 큰 관심사인 배상 비율에 대해서는 경우에 따라 투자 원금 100%를 돌려받을 수도 있다는 게 이 원장의 견해다. 고연령층 투자자 등 사실상 의사결정이 어려운 이들을 상대로 상품을 판매한 사례가 있을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이 원장은 “의사결정이 어려운 이와 체결한 계약의 경우 해당 계약 자체에 대한 취소 사유가 될 수 있기 때문에 그런 사안에 대해서는 100% 내지는 그에 준하는 배상이 필요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개별 투자자의 자산 배분을 고려하지 않은 대규모 투자 역시 100% 배상 고려 대상이다. 이 또한 고령 소비자들의 피해 사례에서 포착된 것으로, 노후 자산의 대부분을 맡기는 데도 해당 투자금이 전체 자산에서 어느 정도의 비율을 차지하는지 고려하지 않은 사례가 많다는 지적이다. 이 원장은 “소비자가 거액의 맡길 때 판매사들은 해당 자산이 투자자 전체 자산의 100 중 90인지, 5인지 점검해야 하는 게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이달 4일 기준 KB국민, 신한, 하나, 우리, NH농협, SC제일 등 6개 시중은행의 홍콩H지수 기초 ELS 손실 확정액은 1조688억원(약 8억 달러)으로 집계됐다. 이는 한 달 전과 비교해 2배 이상 터진 누적 손실 확정액이다. 업계에서는 홍콩H지수가 현재 수준인 5,700포인트를 유지할 경우 상반기에만 3조원이 넘는 추가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같은 홍콩H지수 기초 ELS 사태 여파는 전체 ELS 발행량에도 영향을 미쳤다. 지난 2월 ELS 발행 금액은 9,350억원으로 전월(1조7,000억원) 대비 절반 수준에 그쳤다. 전체 ELS 발행액 규모가 1조원을 하회한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가 불어닥친 2009년 5월 이후 처음 있는 일로, 홍콩H지수 기초 ELS 손실액에 대한 배상 기준이 최대 100%로 현실화할 경우 해당 상품을 판매한 은행은 물론 설계·운용하는 증권사의 수익성 악화 또한 불가피할 전망이다.
“100% 배상 아니면 받아들일 수 없어”
홍콩H지수 기초 ELS가 손실 발생 가능성이 있는 투자 상품임에도 최대 100% 배상안이 유력한 것은 앞서 대규모 투자 손실 사태에서 금융기관의 100% 배상이 이뤄진 선례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가장 최근의 사례로는 2021년 진행된 한국투자증권의 부실 사모펀드 손실 배상을 꼽을 수 있다. 2019년 디스커버리 펀드, 독일 헤리티지펀드, 라임펀드, 이탈리아 헬스케어 펀드 등 여러 펀드의 대규모 환매 중단으로 시작된 당시 부실 사모펀드 사태는 8,000명 이상의 피해자와 2조원이 훌쩍 넘는 손실액을 낳았다.
피해 투자자들은 민사 소송을 비롯한 법적 대응을 검토했고, 금융당국은 서둘러 재조사 및 분쟁조정에 돌입했다. 이때 한국투자증권은 부실 의혹을 받는 판매 펀드 10개에 대한 100% 선보상을 선언하며 사태 수습에 나섰다. 당초 부실 펀드 판매 증권사에 ‘기관경고’ 조처를 내릴 방침이었던 금감원은 한국투자증권에 이보다 한 단계 경감된 제재인 ‘기관주의’ 징계를 내렸다.
이를 계기로 시장에서는 투자자들이 100% 배상 외 중재안을 거부하는 움직임이 거세졌다. IBK기업은행 디스커버리펀드 사기피해대책위원회는 금융당국이 제시한 개인 기준 손실액의 40~80% 배상안을 받아들이지 않고 법적 분쟁을 불사했으며, 옵티머스자산운용의 수탁업무를 진행했던 하나은행과 NH증권 또한 투자자들과 지난한 공방을 벌였다. 이들 사태는 지금도 합의점을 도출하지 못한 채 진행 중이다.
전문가들은 투자 상품 운용사 및 판매사에 과도한 책임을 지우는 시장의 분위기에 깊은 우려를 표했다. 금융회사가 투자 상품을 판매할 때 상품과 관련한 중대 사항을 소비자에게 알릴 의무가 있는 것은 맞지만, 상품의 위험성에 대한 판매자의 설명 후 이뤄지는 투자 결정은 전적으로 소비자에게 달려 있다는 것이다. 나아가 특정 투자 상품이 수익을 냈을 경우에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을 부실 판매에 대한 책임을 금융회사에 모두 떠넘기는 건 부당하다는 지적 또한 이같은 목소리에 힘을 보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