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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RS17 도입 이후 실적 부풀린 보험사들, 금융당국 "제도 개선하겠다"
회계 논란에 보험주 일제히 주가 하락, 증권가선 "오히려 저가 매수 기회"
제도 미비·도덕적 해이에 보험업계 신뢰도 '흔들', "문제 가볍게 인식해선 안 돼"
금융당국이 새로운 국제회계제도(IFRS17)를 손질하겠다고 나섰다. 당초 도입 취지와 달리 보험업계의 실적 부풀리기에 활용되고 있다는 의혹이 거듭 커지면서다. 문제는 당국의 제도 개선에도 전체 보험손익에 대한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란 전문가들의 분석이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부실한 제도와 업계의 도덕적 해이로 보험업권 전반이 흔들리는 가운데 당국이 단순 미봉책을 넘어선 대책을 내놓을 수 있을지 이목이 집중된다.
IFRS17 제도 개선 초읽기, 핵심은 CSM
30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금융당국이 IFRS17 손질에 칼을 빼 들었다. 핵심은 CSM(계약서비스마진)의 회계처리에 대한 재검토다. CSM이란 보험사가 가지고 있는 보험계약에서 미래에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이익의 현재가치를 의미한다. 당국은 이중 CSM을 이익으로 넘길 때(상각 시) 적용되는 할인율을 집중적으로 살펴볼 계획이다.
당초 IFRS17 도입 이전엔 보험상품을 판매하면 그 이익이 모두 곧바로 장부에 반영됐지만, IFRS17 도입 이후 보험상품 판매 수익은 우선 CSM 아래 회계상 부채로 잡히게 됐다. 부채로 잡힌 수익은 이후 분기마다 일정 비율을 적용해 이익으로 전환(상각)할 수 있다.
문제는 IFRS17는 보험부채 측정 시 기본적인 원칙만 제시하고 할인율 적용은 보험사의 자율에 맡기고 있단 점이다. 이 때문에 상각 시 할인율 적용을 통해 초반에 상각할 수 있는 비중을 키우는 사례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보험사들의 실적이 지난해부터 갑작스럽게 급증한 원인이다.
금융당국과 보험업계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보험회사(생명보험사 22곳·손해보험사 31곳) 당기순이익은 4조8,443억원(생보사 1조8,749억원·손보사 2조9,694억원)으로 잠정 집계됐다. 동기간 주요 시중은행과 지방은행·특수은행 18곳이 벌어들인 돈과 맞먹는 규모다.
특히 눈길을 끄는 건 이 기간 각 업권별 상위 10곳 보험사들의 미래서비스 변동에 따른 CSM 조정액이다. 이들의 CSM 조정액은 올해 1분기에만 마이너스(-) 2조원에 달했다. CSM 조정 규모가 가장 컸던 한화생명은 올 1분기에만 3,700억원 넘게 CSM 조정액을 줄였고, 삼성생명과 교보생명에서도 -3,000억원 안팎의 CSM 조정액이 나타났다.
손보사 또한 DB손해보험을 비롯해 삼성화재, 현대해상이 2,000억원 안팎으로 CSM 조정액을 줄인 것으로 나타났다. 통상 CSM을 조정하면 당기순이익 증가가 필연적으로 수반된다. 사실상 보험사들이 잘못된 회계처리로 실적을 끌어올린 셈이다.
회계 논란에 흔들리는 보험업계, 제도 개선 효용 있을까
CSM 논란에 보험사들의 주가는 일제히 하락했다. 향후 CSM 상각률이 조정됨으로써 보험이익이 대폭 감소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 관련 보도가 나온 직후인 지난 22일 국내 보험업 업종 지수는 전일 대비 5.7% 하락했다. 종목별로 삼성화재는 전날 대비 8.02% 하락한 34만4,000원으로 장을 마감했으며, 현대해상과 한화손해보험도 같은 날 각각 4.67%, 4.3% 주가가 하락했다. DB손해보험도 장 마감 시 주가가 5.81% 하락했다. 부실한 제도와 보험업계의 도덕적 해이 등 이슈로 업계 전반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이에 정부는 시급히 제도를 손질해 부작용을 줄이겠다고 나섰다. 당국도 "보험사 CSM에 관한 회계처리 기준을 변경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상각률 산정 시 할인율을 미반영하겠다"고 대책을 내놨다. 상각률을 매년 균등하게 인식하도록 하겠단 것이다. 대책이 적용되면 전 보험기간의 이익 총량은 변함없지만 계약 초기 상각률이 기존 대비 낮아져 초기 이익이 현행 대비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전문가들 사이에선 CSM 상각률이 변경되더라도 전체 보험손익에 대한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란 의견이 나온다. 초기 CSM 상각이익이 감소하더라도 전 보험기간 합산 보험손익 규모는 변동이 없고, 변경이 있더라도 시점별 상각률 변경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아 실질적인 손익 영향은 조삼모사에 가깝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신한투자증권은 "궁극적으로 CSM 규모와 본질적인 기업가치 변동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며 "초년도 상각률 축소는 신계약 CSM 유입분에만 적용돼 실질 이익에는 영향이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저가 매수 기회' 의견도 있지만, "가볍게 볼 문제 아냐"
이런 가운데 증권가 일각에선 이번 이슈를 오히려 기회로 여기는 이들도 늘고 있다. 각종 논란으로 보험주가 저점을 달리고 있는 지금이 저가 매수 적정기라는 것이다. 한화투자증권은 "폄하됐던 이익이 줄어드는 것치고는 과도한 주가 변동이었다"며 "기업가치에 본질적인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어서 현시점의 주가 하락은 낙폭 과대라고 본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특히 손익의 CSM 의존도는 더 낮은데도 주가 하락률은 더 높았던 손해보험주는 저가 매수 시기"라고 덧붙였다.
다만 시장 일각에선 이번 이슈를 기회로 인식하는 경향은 지양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IFRS17 쇼크 이후 보험업계 전반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면 장기적으로 수복 불가능한 피해가 발생할 수 있는 만큼 사태를 보다 진중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시선에서다. 한 계리법인 관계자는 "IFRS17을 계기로 부채 평가와 수익 인식 기준이 완전히 달라졌고, 그 전후 차이가 심한 상황"이라며 "제도 정착 과정에서 어느 정도의 혼선은 불가피한 부분이 있겠지만, 이번 회계 이슈는 상장 보험사뿐 아니라 국가의 보험 산업에 대한 신뢰도와 이어지는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제도의 미비함을 사전에 잡아내지 못한 금융당국을 비판하는 이들도 있다. 당국이 IFRS17 도입 시점부터 과도한 실적 발생 가능성에 우려를 표해왔음을 근거로 "사실상 알고도 방치한 것 아니냐"는 힐난이 쏟아진 것이다.
실제 금융당국은 지난해 5월 "보험회사가 객관적‧합리적 근거 없이 낙관적인 가정을 사용할 경우 손실계약이 이익계약으로 전환돼 CSM이 부풀려질 수 있다"는 지적을 내놓은 바 있다. 보험 분야에서 근무했던 한 전직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감독 규정을 손봐야 한다는 점은 금감원도 이전부터 알고 있던 사항"이라며 "시행 당시 저금리 상태라 지속적으로 기준을 완화해 줬는데, 막상 도입 시기 금리가 오르면서 (금감원이) 수익을 키운 측면이 있다"고 실황을 전하기도 했다. 당국 입장에서도 하루빨리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해 원죄를 벗어낼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높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