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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노동당 신임 재무장관 "재정상태 2차대전 이후 최악 상태"
영국 재건· 주택 공급 확대 약속 27조원 규모 패키지 계획 천명
증세 등 자세한 자금 마련 계획은 미정, 전문가들 난항 예상
더 이코노미(The Economy) 및 산하 전문지들의 [Deep] 섹션은 해외 유수의 금융/기술/정책 전문지들에서 전하는 업계 전문가들의 의견을 담았습니다. 본사인 글로벌AI협회(GIAI)에서 번역본에 대해 콘텐츠 제휴가 진행 중입니다.
레이철 리브스(Rachel Reeves) 신임 영국 재무장관이 8일(현지시간) 취임 첫 발언으로 노동당 정부가 "2차 대전 이후 최악의 (재정)상황을 물려받았다"고 비판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리브스 장관은 이날 첫 공식 연설에서 경제성장과 주택 개발, 해양 풍력발전을 최우선 과제로 삼겠다면서 올해 재정 건전화를 위해 강도 높은 구조조정에 나설 것임을 천명했다. 리브스 장관은 또 "(보수당 정부의) 14년에 걸친 혼돈과 경제적 무책임을 유산으로 물려받았다"며 "지난 주말 재무부 관리들에게 이전 정부의 지출 상태에 대해 평가해 당면한 문제가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할 수 있도록 지시한 이유"라고 말했다.
2차대전 이후 최악의 재정상태 지적, 156억 파운드 경기 부양 패키지도
FT에 따르면 리브스 장관은 지난 5일 오전 취임 선서 직후 즉각 재무부에 보수당 정부 하의 이전 재정 지출에 대한 조사를 지시했다. 8일 보고된 재무부 분석 상세 사항은 이달 의회 여름 휴회 전 공개될 예정이지만, 각종 정책 실패와 경기 침체로 인한 재정 적자에 대해서 장기간 논의가 있었던 만큼, 리브스 장관이 충격적인 보고서를 받았을 것이라는 것이 경제 전문가들의 예측이다.
이번 선거에서 압승을 거둔 노동당은 세금 인상, 재정지출 억제 등을 공약으로 내세운 바 있다. 리브스 장관 역시 재정 분석을 바탕으로 내년 회계 예산에 대해 '어려운 선택'을 해야 할 것이라는 지적을 내놓기도 했다. 이에 대해 리시 수낵(Rishi Sunak) 정권의 재무 인사들은 이미 세부 내용이 공개된 상태였다며 노동당이 세금 인상을 위한 핑계를 대고 있다고 반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리브스 장관은 토지 이용 규제 완화를 통해 앞으로 5년 동안 150만 호 주택을 건설한다는 목표를 재확인했다. 이를 위해 이달 말까지 토지이용 규제기구인 국가계획정책프레임웍(NPPF) 개혁을 포함해 여러 정책들을 시작하겠다고 약속했다. 특히 중도에 중단된 대단위 주택단지 공사가 재개되도록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대도시 주변을 에워싸고 있는 그린벨트도 재검토하기로 했다. 그린벨트로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규제에 묶여 있는 곳들은 과감히 해제해 주택 건축 허가를 내준다는 구상이다.
리브스 장관은 이날 대규모 인프라 프로젝트를 위한 156억 파운드(약 27조원)의 예산 배정 계획도 함께 밝혔다. 그러나 예산 마련을 위한 세부 지침이 빠진 상태에서 자칫 세금 인상이 경기 위축을 부추길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2년 전 리즈 트러스(Liz Truss) 전 총리의 감세안이 단적인 예다. 지난 2022년 트러스 총리는 대규모 감세 계획을 뒷받침할 세율 정책을 놓친 탓에 44일짜리 단명 총리라는 오명을 쓰며 물러났다.
주택 건설 확대 정책, 재원 마련 쉽지 않을 것 전망
리브스 장관이 만성적인 주택 공급 부족 및 주택 품질 개선을 위해 대규모 주택 건설 카드를 꺼낸 배경에는 높은 부동산 가격이 있다. 영국 레졸루션 파운데이션(Resolution Foundation) 싱크탱크에 따르면 영국은 선진국 중 주택 품질에 비해 부동산 가격이 가장 높은 국가 중 한 곳으로 꼽힌다.
그러나 리브스 장관의 목표를 두고 영국 건설 업계에서는 현실적으로 녹록치 않을 것이란 분석이 제기된다. 영국건설협회(Chartered Institute of Building)는 150만 호 주택 건설 목표 달성을 위한 숙련 노동력 부족 문제를 지적했다. 주택건설업체연합(Home Builders Federation)은 주택 구매자들의 자금 마련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봤다. 정부 재정이 어려운 상황에서 자금 지원을 할 수 있는 재정 여력을 마련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경제 전문가들도 리브스 장관의 건설, 인프라 공급 정책을 통한 경기 부양 계획이 재원 확보 계획 없이는 암초에 부딪힐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최단기 총리란 불명예를 안고 떠난 트러스 정권의 쿼지 콰텡(Kwasi Kwarteng) 전 재무장관이 재원 마련 계획 없이 단순히 감세안만 발표하면서 시장에 충격을 줬던 것과 유사한 '비전문성'이 우려된다는 목소리가 높다. 재원 마련 이전에 정부 프로젝트부터 우선 시작하는 탓에 시장의 강한 반대에 직면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당시 트러스 총리는 취임 3주 만에 감세안 혼란을 불러온 콰텡 재무장관을 경질했고, 1주일이 더 지나기 전에 스스로 총리직에서 사임했다.
재정 건전성 회복과 경기 침체 극복이라는 쌍두마차
시장에서는 리브스 장관을 재정건전성을 중시하는 중도파로 분류한다. 리브스 장관은 영국 중앙은행인 영란은행(BOE) 이코노미스트 출신으로, 로이터는 “리브스는 이데올로기보다 실리(Pragmatism)를 내세우는 스타머 총리와 판박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중도우파 정부를 누르고 갓 취임한 신임 키어 스타머(Keir Starmer) 총리도 좌파 색채가 짙던 노동당을 중도좌파(Center-Left) 정당으로 탈바꿈시킨 법률 전문가다.
리브스 장관을 따라다니는 수식어로 시큐로노믹스(Securonomics·경제 안보와 노동자들의 재정 안정성을 강조하는 학파)도 거론된다. 보수당 정권이 대부분 '금수저' 출신들로 구성된 반면, 노동당 정권 대부분이 '흙수저' 출신 장관들로 구성됐고, 리브스 장관도 그간 보여준 철학을 바탕으로 할 때 노동자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데 초점을 맞춘 정책을 펼 것이라는 예상이다.
하지만 재정 건전성 회복을 위해 당분간 증세와 긴축을 피할 수 없는 상황 속에 경기 침체를 극복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영국은 지난 2월까지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다 3월부터 플러스(+) 성장으로 돌아섰으나 서비스 부분을 제외하면 여전히 경기 침체의 흔적이 짙기 때문이다. 이번 정권 교체도 경기 침체에 따른 국민 불만이 심화한 데서 비롯됐다. 영국 정가에서도 리브스 장관의 경제 정책이 성공해야 노동당 정권의 장기 집권 발판이 마련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