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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DI '7월 경제동향', 전월 대비 한층 어두워진 진단
수출 회복에도 내수 부진, 고금리·고물가 장기화 영향
정부와 국책연구기관의 내수 전망 엇박자, 원인은?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한국 경제에 대해 내수 회복세가 가시화되지 못하면서 경기 개선세가 다소 미약한 모습이라고 진단했다. ‘경기 개선 흐름이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던 정부의 상황 판단보다 더 신중한 평가다.
내수 둘러싸고 기재부·KDI '엇갈린' 진단
KDI는 8일 발표한 ‘7월 경제동향’에서 “최근 우리 경제는 높은 수출 증가세에도 불구하고 내수 회복세는 가시화되지 못하면서 경기 개선세가 다소 미약한 모습”이라고 평가했다. 이번 KDI의 총평은 지난달 “높은 수출 증가세에 따라 경기가 다소 개선되고 있다”고 진단한 것보다 한층 어두워진 톤이다. KDI는 지난해 12월부터 ‘내수 둔화·부진’ 진단을 이어오고 있다.
KDI는 고금리 기조가 지속되면서 대출 연체율이 상승하는 가운데, 소매판매·설비투자·건설투자가 모두 ‘마이너스’로 돌아선 것을 내수 부진 판단의 근거로 삼았다. 실제 개인사업자 대출 연체율은 2022년 2분기 말 0.5%에서 올해 1분기 말 1.52%까지 상승했다. 5월 소매판매는 1년 전보다 3.1% 감소해 전달(-2.2%)보다 감소 폭을 키웠다. 서비스업 생산 중 소비와 밀접한 도소매업과 숙박·음식점업도 각각 1.4%, 0.9%씩 감소했다. 내수 부진이 다시 가계·기업의 빚 부담 증가로 이어지는 모습이다.
결국 이자 부담으로 인해 집마다 쓸 돈이 부족하다는 게 내수 부진의 본질적인 이유로 꼽힌다. 지난 1분기 가계 평균 처분가능소득은 404만6,000원으로, 1년 전(399만1,000원)보다 1.4% 증가하는 데 그쳤다. 물가 영향을 고려한 실질 처분가능소득으로 따지면 1.6% 감소했다. 또 가구 평균 이자비용은 2021년 3분기(8만6,611원)부터 최근까지 58.9%가 급증했다. 지난 1분기 가구 평균 이자비용은 13만7,598원으로 역대 최대다. 이자를 내고 나면 쓸 돈이 없다는 얘기다.
정부는 '내수 회복' 점치며 낙관적 전망
하지만 정부는 하반기 내수 회복 조짐을 기대하며 경기 상황을 보다 낙관적으로 예측하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앞서 ‘최근 경제동향(그린북)’ 5~6월호에서 “제조업·수출 호조세에 방한관광객 증가·서비스업 개선 등 내수 회복 조짐이 가세하며 경기 회복 흐름이 점차 확대되는 모습”이라고 진단했다. 산업활동동향에서 ‘트리플 감소’가 나타난 지난달 28일에도 기재부는 “내수가 수출에 비해 회복 속도가 더딘 가운데, 부문별로 온도차가 있다”면서도 “경기 회복 흐름은 지속되고 있다”고 판단했다. 정부는 오는 12일 그린북 7월호에서 하반기 경기 진단을 새로 내놓을 예정이다.
반도체를 중심으로 수출이 회복하는 상황에서 이번 그린북의 최대 관심사는 내수에 대한 분석이었다. 기재부는 올해 1~4월 그린북에서 “수출과 내수 간 온도 차가 있다”거나 “수출과 내수 간 회복 속도에 차이가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다 지난달 처음 “내수가 회복 조짐을 보인다”고 진단했다. 수출이 이끌던 경기 회복세가 내수로도 퍼지고 있다고 해석한 셈이다. 올해 1분기 국내총생산(GDP) 잠정치에 따른 민간소비가 전 분기 대비 0.7%, 전년 동기 대비 1.0% 증가한 점을 근거로 들었다.
그러나 최근의 내수 지표는 사실상 ‘혼조세’에 가깝다. 4월 소매판매는 전달 대비 1.2%, 전년 동월 대비 2.6% 각각 감소세를 보였으나 서비스업 생산은 도소매업(1.7%) 등에서 증가해 0.3% 늘었다. 또한 5월 소비에는 카드 승인액과 방한 관광객 증가세, 온라인 매출액, 고속도로 통행량 증가 등이 긍정적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정부는 내다봤다.
다만 그린북에서 생산·수출·고용·물가 등 지표는 대체로 양호했다. 생산(4월)은 광공업·건설·서비스 등 전(全) 산업생산이 전월 대비 1.1%, 전년 동월 대비 3.1% 각각 증가했다. 수출(5월)도 반도체·자동차·선박 수출이 늘며 전년 동월 대비 11.7% 증가했다. 고용(5월)은 증가 폭은 줄었지만, 취업자 수가 전년 동월 대비 8만명 늘었다. 물가(5월)는 전년 동월 대비 상승 폭이 4월 2.9%에서 5월 2.7%로 잦아들었다.
자영업자 폐업·연체율 급증, 내수침체 ‘경고등’
전문가들은 이처럼 국책기관과 정부가 상반된 경기 진단을 내놓는 배경에 고금리, 고물가 장기화로 인한 체감경기 위축이 있다고 보고 있다. 실제 5월 상품 소비를 뜻하는 소매판매는 1년 전보다 3.1% 쪼그라들었다. 대부분의 품목에서 감소 폭이 확대되면서 전월(-2.2%)보다도 감소 폭이 커졌다. 가계가 지갑을 닫으면서 소매판매는 최근 2년간 4개월을 빼고 매달 내리막을 걷고 있다.
알리익스프레스, 테무 같은 C커머스의 인기로 운수 및 창고업 등 관련 업계는 호황을 보이고 있지만 자영업자들에게는 남 얘기일 뿐이다. 내수가 좀처럼 살아나질 않으면서 취약계층인 소상공인은 한계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지난해 폐업한 개인사업자는 91만1,000명으로 1년 전(80만 명)보다 11만 명 넘게 늘었는데, 이는 코로나19 첫해인 2020년(82만8,000명)과 비교해도 8만 명 이상 많은 수준이다.
자영업자 고용상황이 흔들리면서 전체 고용상황도 나빠지고 있다. 지난달 취업자는 2,891만5,000명으로 작년 5월 대비 8만 명 증가에 그쳤다. 코로나19 여파가 미친 2021년 2월(-47만3,000명) 후 3년 3개월 만의 최저 상승폭이다. 특히 내수 관련성이 높은 산업에서 고용 상황이 악화되고 있다. 내수의 대명사인 대형마트, 편의점 등 도소매업에서 취업자가 7만3,000명 줄면서 전달 감소폭(3만9,000명)보다 두 배 가까이 상회한 모습이다.
정부의 정책 지원으로 코로나19 사태를 간신히 넘긴 영세 자영업자들은 상황이 더 악회되는 추세다. 나홀로 자영업자는 1년 전보다 11만4,000명 급감했다. 이는 2018년 9월(-11만7,000명) 후 5년 8개월 만에 가장 큰 폭의 감소세다. 여기에 4월 말 은행권 자영업자 대출 연체율은 2014년 11월 말 이후 최고치인 0.61%로 뛰어올랐다. 지난 3월 기준 자영업 대출이 1,112조원으로 4년 전보다 51%나 급증하는 등 심각한 부채의 늪에 빠진 것이 치명타로 작용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