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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줄 마른 美스타트업 파산 급증, 5년 전 比 7배
탤리·카페인 등 대형 VC 투자받은 업체도 파산
IPO·M&A도 씨 말라, 자금회수 난항에 재정난 심화
2021년부터 2022년 상반기 무렵까지 코로나19 사태 확산으로 세계 각 정부가 시장에 돈을 풀면서 호황기를 누렸던 미국 스타트업계가 지금은 보릿고개를 겪고 있다. 특히 지난 1년 만에 스타트업의 파산 가능성이 60%나 증가하면서 경제 전반에 상당한 악영향을 가져올 수 있다는 우려가 쏟아진다.
美 스타트업, 1분기 254개사 파산
18일(현지시간) 주식 관리 지원 플랫폼 카르타(Carta)에 따르면 벤처 자금 수십억 달러가 인공지능(AI) 분야에 몰리고 있지만 스타트업 파산은 급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카르타는 파이낸셜타임스(FT)에 올해 1분기 자사가 지원하는 스타트업 고객사 가운데 254곳이 파산했다며 현재 파산 비율은 2019년 자신들이 스타트업 파산을 추적하기 시작한 때에 비해 7배 이상 높은 수치라고 전했다.
이 가운데는 지난주 운영자금 부족으로 파산한 핀테크업체 탤리(Tally)도 포함된다. 탤리는 2022년 앤드리슨 호로위츠와 클라이너 퍼킨스 등 대형 벤처캐피털(VC)로부터 1억7,000만 달러(약 2,300억원) 이상을 조달하고, 당시 8억5,500만 달러(약 1조1,000억원)의 가치를 인정받았으나 결국 자금줄이 말라 파산했다. 아울러 폭스코프, 앤드리슨,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 산하 사나빌 인베스트먼트 등에서 2억5,000만 달러(약 3,330억원) 이상을 조달한 라이브 스트리밍 웹사이트 카페인(Caffeine)도 이름을 올렸다.
이밖에 2021년 40억 달러(약 5조3,000억원)의 가치를 인정받은 헬스케어 스타트업 올리브(Olive), 2022년 가치가 38억 달러로 평가된 트럭운송 스타트업 콘보이(Convoy), 소프트뱅크의 투자를 받았던 사무실 공유서비스 위워크도 목록에 포함됐다.
美 VC 업계 '잠긴 돈'만 3,110억 달러
이 같은 줄파산을 두고 2022년 금리 인상으로 촉발된 스타트업 생태계의 고통스러운 조정 과정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초기 단계 스타트업에 대한 벤처투자자들의 투자가 급감한 데다, 지난해 실리콘밸리은행(SVB)의 파산으로 스타트업에 대한 벤처 대출이 크게 줄면서 많은 스타트업들이 자금난으로 좌초 위기에 처했다는 것이다.
심지어 탄탄한 기업들도 새 자금조달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기업공개(IPO)나 인수합병(M&A) 감소로 VC들이 엑시트(투자금회수)에 실패하면서 기관투자자들(LP)에게 상환을 하지 못하고 있어서다. 실제로 2021년 조성된 벤처펀드 중 불과 9%만이 투자자들에게 투자금을 상환했는데, 이는 2017년 상환펀드가 전체의 25%에 달했던 것에 비해 크게 저조한 성과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유니콘 기업(기업가치 10억 달러 이상 비상장 회사) 숫자도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글로벌 투자 전문 연구기관 피치북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에서 등장한 유니콘 기업은 45개에 불과했다. 2년 전의 344개에 비교하면 8분의 1 수준이며, 2년 연속 감소한 수치다. 같은 기간 VC가 투자한 금액 역시 1,700억 달러(약 227조원)로 반토막이 났고, 올해 1분기 스타트업이 VC 등으로부터 유치한 투자금도 304억 달러(약 40조5,000억원)로 지난 2016년 이후 가장 적었다.
VC들이 벤처기업에 대한 ‘과감한 베팅’을 망설이면서 아직 집행되지 않은 미소진 투자 자금(드라이파우더) 규모도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피치북에 따르면 올해 초 기준 미국 VC 업계에서 아직 집행되지 않은 드라이파우더규모는 3,110억 달러(약 413조6,000억원)에 달한다. 팬데믹 기간 시중에 유동성이 넘쳐난 덕에 4,350억 달러(약 578조4,000억원) 규모의 막대한 자금이 조달됐으나, 이 중 실제 집행된 건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투자 한파에 韓 스타트업도 줄도산
우리나라 벤처업계 상황도 미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 벤처투자 플랫폼 더브이씨에 따르면 투자 유치 이력이 있는 스타트업 중 올해 상반기에 폐업한 회사는 68곳으로 집계됐다. 2022년 상반기 35곳, 2023년 상반기 54곳보다 늘어난 수치다. 상반기 폐업한 스타트업 가운데 누적 투자 규모가 가장 큰 곳은 한국 2호 유니콘 기업이었던 옐로모바일이다. 누적 투자만 2,600억원을 받았지만 무리한 사업 확장에 고전하다가 지난 4월 폐업 절차가 마무리됐다.
상반기에 폐업한 68곳 중 38곳(56%)이 플랫폼 사업을 영위한 업체였다. 실시간 매칭 카풀앱인 풀러스는 한때 100만 명의 사용자를 확보하는 등 국내 최대 규모 카풀서비스를 운영한 회사로 네이버, SK 등으로부터 누적 220억원의 투자를 받았으나 지난 3월 문을 닫았다. 동대문 도매 중개 플랫폼 링크샵스 역시 알토스벤처스와 포레스트파트너스 등 국내외에서 이름을 알린 VC와 사모펀드(PEF) 운용사의 선택을 받았던 곳이다. 누적 165억원의 투자를 유치했지만 완전자본잠식 상태에 빠져 폐업했다.
스타트업의 폐업이 늘어나면서 투자사들이 받는 타격도 커지고 있다. 당장 중소형 VC 중 생존 위기에 놓인 곳이 다수다. 지난 상반기에만 VC 6곳의 자격이 말소됐는데 이는 지난해 연간 수준(4개)을 이미 넘어선 것이다. 기관 출자사업이 몰려 있는 상반기에 등록이 말소된 VC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시장 상황이 좋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루트벤처스, IDG캐피탈파트너스코리아, 이랜드벤처스, 예원파트너스 등이 올해 VC 면허를 반납했고,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로 연명 중인 VC도 많다. 상반기에만 5곳의 VC가 자본잠식으로 경영 건전성 미달 경고를 받았다.
VC와 창업자 간 갈등도 늘어나고 있다. 투자금 반환 소송에 휘말리거나 VC가 파산에 반대해 정리 절차를 밟지 못하는 경우다. VC는 투자한 스타트업이 문을 닫으면 포트폴리오 하나가 날아가고 고스란히 확정 손실로 잡힌다. 이에 일부 VC는 전망이 좋은 회사의 지분을 일부 매각하면서 이른바 ‘폭탄 회사’의 지분을 함께 처리하는 등 가시적인 손실을 줄이기 위해 애쓰고 있다. 한 대형 투자사 대표는 “현재 포트폴리오 중 ‘폭탄’이 없는 VC 심사역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며 “터지는 회사들의 손실을 막느라 신규 투자에 신경 쓸 여력이 없는 VC도 많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