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수정
전교조 해직 교사 5명에 대한 특혜 채용 혐의
징역 1년 6개월 집행유예 2년으로 당선 무효
10월 보궐선거에서 신임 서울시교육감 선출
지난 10년 동안 서울 교육정책을 이끌어왔던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해직 교사 특혜 채용' 사건으로 당선 무효형을 확정받고 교육감직을 상실했다. 이로써 교육감 직선제 도입 후 당선된 4명의 서울시교육감 중 3명이 선거와 관련해 중도 낙마했다. 현재 조희연 교육감 외에도 2022년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4명의 시도교육감이 재판을 받고 있는 가운데, 교육계 안팎에서는 정당 없이 개인이 선거를 치러야 하는 교육감 직선제의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조희연 "회한 없지 않지만, 법원의 결정 따라야"
29일 대법원 3부는 해직 교사를 부당하게 특별채용한 혐의로 기소된 조희연 교육감에게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조 교육감은 2018년 선거법 위반 혐의로 해직된 교사 등 5명을 임용하기 위해 인사권을 남용한 혐의로 기소됐다. 해당 사건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출범 후 1호 사건으로 공수처와 법원은 조 교육감이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측 요구에 따라 특채 절차를 진행하도록 지시했고 공개경쟁 원칙에 어긋난다는 부교육감 등의 반대에도 채용을 강행했다고 판단했다.
앞서 1심 재판부는 "특채 절차가 공정하고 투명하게 이뤄지도록 지휘·감독해야 할 의무가 있음에도 공정경쟁을 가장해 임용권자의 권한을 남용했다"며 조 교육감에게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이어 2심 재판부가 항소를 기각했고 이날 대법원이 원심판결을 유지하면서 조 교육감은 금고 이상의 형을 받아 교육감직을 상실하게 됐다. 앞서 조 교육감이 국가공무원법과 구 교육공무원법, 형법상 직권남용죄에 대해 제기한 위헌법률심판제청 신청 2건도 각하·기각됐다.
형이 확정된 후 조 교육감은 서울시교육청 본청 앞에서 입장을 밝혔다. 그는 "해직 교사를 복직시켰다는 이유로 해직되는 기막힌 현실에 회한이 없지 않으나 법원의 결정은 개인의 유불리와 관계없이 존중하고 따라야 마땅하다"며 "대법원 선고와 관련 법률에 따라 서울시교육감으로 재직한 10년의 역사를 마무리한다"고 전했다. 해직 교사의 복직 결정에 대해서는 "복직된 교사의 해직 사유는 교사의 정치적 기본권과도 연관돼 있다"며 "당시 결정에 대해서는 지금도 후회가 없다"고 덧붙였다.
교육계 안팎의 반응은 엇갈렸다. 교사노동조합연맹과 전교조는 "뇌물을 받거나 횡령·배임을 한 것도 아니고 억울하게 해직된 교사를 특별채용했을 뿐"이라며 유감 성명을 냈다. 104개 진보 단체로 구성된 서울교육지키기 공동대책위원회도 "10월 보궐 선거 실시 시한 이틀을 남겨두고 교육감직 박탈 선고를 한 것은 윤석열 정부가 사법권을 남용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반면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는 "특채 제도 자체에 권력 남용의 소지가 있는지 재점검하고 교육의 공정성·신뢰성을 회복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직선제로 당선된 서울시교육감 4명 모두 유죄
조 교육감의 중도 낙마로 2006년 '교육감 직선제' 도입 후 당선된 서울시교육감 4명 모두 재판에 넘겨져 유죄를 받으면서 불명예로 남게 됐다. 지난 2008년 8월 첫 직선제 서울시교육감으로 취임한 보수 성향의 고(故) 공정택 전 교육감은 교육감 선거에 출마하면서 부인이 관리하던 차명 예금을 재산 신고에서 누락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후 취임 15개월 만인 2009년 10월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대법원에서 당선 무효형에 해당하는 벌금 150만원이 확정돼 자리에서 물러났다.
공정택 교육감에 이어 2010년 진보 성향의 곽노현 전 교육감이 당선됐는데 그 역시 취임 14개월 만인 2011년 9월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 돼 직무 정지를 당했다. 곽 전 교육감은 교육감 선거 당시 같은 진보 성향 후보자인 박명기 서울교육대학교 교수에게 단일화를 대가로 2억원을 주며 매수한 혐의를 받았다. 곽 교육감은 당시 1심에서는 법정 최고액의 벌금형인 3,000만원을, 항소심에서는 징역 1년을 각각 선고받았으며 2012년 9월 대법원이 원심이 선고한 징역 1년을 확정하며 교육감에서 물러났다.
이후 보수 성향의 문용린 전 교육부 장관이 보궐선거를 통해 서울시교육감에 당선됐고 2012년 12월부터 2014년 6월까지 정해진 임기를 마쳤다. 문 교육감은 연임을 위해 2014년 지방선거에 다시 한번 출마했다가 낙마했는데 선거 당시 자신을 '보수 단일 후보'로 사칭해 '허위 사실 유포' 혐의로 기소됐다. 당시 1심 재판부는 문 교육감이 특정 단체에서 단일 후보로 추대됐음에도 이를 명시하지 않고 '보수 단일 후보'라는 표현해 유권자가 모든 보수 성향 후보 사이에 단일화가 이뤄진 것으로 오해할 수 있게 했다며 벌금 200만원을 선고했다. 하지만 2심과 상고심에서는 "유죄는 인정되나 가혹한 측면이 있다"며 벌금형 선고유예를 받았다.
2014년 지방선거에서 문용린 교육감을 제치고 당선된 조희연 교육감은 이후 2018년과 2022년 지방선거에서 승리하며 서울시교육감 최초로 3연임에 성공했다. 조 교육감은 2014년 처음 교육감으로 당선됐을 때도 선거 과정에서 고승덕 후보에 대한 허위 사실 공표 혐의로 기소된 바 있다. 해당 재판에서 1심은 당선 무효형에 해당하는 벌금 500만원을 선고했지만 이듬해 2심에서 '허위 사실 공표는 인정되나 선거에 큰 영향은 없었다"며 벌금형 선고유예를 내렸고 대법원을 통해 2심 판결이 확정되며 직을 유지할 수 있었다.
부산·강원·전북·경북 현직 교육감 4명 재판 중
이런 가운데 조 전 교육감까지 직위를 잃자 교육감 직선제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다시 힘을 얻고 있다. 그간 선출된 교육감들이 사법 리스크에 흔들릴 때마다 직선제에 대한 비판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그도 그럴 것이 현재 2022년 지방선거를 통해 당선된 시도교육감의 상당수가 현재 수사나 재판을 받고 있다. 지방선거를 1년 앞두고 '교육의 힘' 포럼을 만들어 선거 사조직으로 활용하는 등 사전 선거운동을 해 지방교육자치법 위반 등으로 기소된 하윤수 부산시교육감의 경우, 지난 5월 2심에서 1심과 같은 당선 무효형인 벌금 700만원을 선고받고 대법원판결을 앞두고 있다.
신경호 강원교육감 역시 지난 선거에서 후보자로서 불법 사조직을 운영하고 교육감 당선 시 특혜를 주는 대가로 금품을 받은 혐의로 기소돼 현재 1심 재판이 진행 중이며, 서거석 전북교육감은 선거 당시 상대 후보가 제기한 '동료 교수 폭행 의혹'에 대해 거짓 해명한 혐의로 기소돼 2심 재판을 받고 있다. 임종식 경북교육감도 교직원들에게 선거 운동 대가로 제공된 금품을 대납하도록 한 뇌물수수 등 혐의가 인정돼 기소돼 현재 1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현재 재판을 받는 시도교육감과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퇴진한 3명의 서울시교육감 모두 선거 과정과 관련해 기소돼 재판을 받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를 두고 교육계 안팎에서는 이들의 사법 리스크가 개인적인 문제라기보다는 교육감 직선제 자체가 가지는 근본적인 문제라는 의견이 많다. 교육감 선거는 헌법에 따른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 때문에 정당의 도움 없이 선거를 치러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개인이 수십억원의 선거 자금을 마련하다 보니 당선 이후 자신을 도와준 단체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그동안 불법적으로 선거 비용을 조달하거나 당선 이후 불법적인 보상을 하다 적발된 교육감은 셀 수 없이 많았다. 조 교육감의 직위 상실도 실상은 자신을 지지한 전교조에 대한 '보은 인사'가 직접적 원인이었다. 이 때문에 교육감 선출 방식을 시도지사 러닝메이트제나 시도지사 임명제 등으로 바꾸자는 의견이 팽배했다. 하지만 국회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전교조에 유리한 현행 직선제를 바꾸기를 꺼려 논의 진척이 전혀 없는 상태다.
한편 서울시교육청은 오는 10월 16일 보궐선거를 거쳐 새 교육감이 취임할 때까지 설세훈 교육감 권한대행 체제로 운영된다. 설 권한대행은 이날 긴급 실·국장회의를 소집해 "교육감 보궐선거를 공정하게 치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소속 공무원들의 선거 중립과 공정한 업무 처리가 중요하다"며 "각종 공직 비위와 기강 해이에 엄정 대처해 공직 기강 확립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밝혔다. 보궐 선거에서 당선된 차기 교육감의 임기는 조 교육감의 잔여임기인 2026년 6월 30일까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