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수정
나스닥 상장 네이버웹툰, 웹툰엔터 자사주 매입에 주가 조작 논란 촉발
상장 직후 임직원들 자사주 매도 정황, "외부에서 석연찮게 보일 수 있어"
자사주 매입에 비판적 여론 확산한 미국, 미 정부도 자사주 매입 제한 타진
미국 나스닥시장에 상장한 네이버웹툰의 모회사 웹툰엔터테인먼트 경영진이 자사주 매입에 나선 가운데 주가 조작 논란이 일고 있다. 웹툰엔터 측은 주가 보전 취지였단 입장이지만, 미국 로펌들은 증권법 위반 등을 조사하겠다고 발표한 상태다. 이에 시장에선 웹툰엔터가 미국의 시장 흐름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결과가 아니냐는 평가가 나온다. 한국은 자사주 매입에 다소 너그러운 반면 미국은 최근 자사주 매입에 대한 비판적 여론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라서다.
웹툰엔터 주가 급등, 자사주 매입 영향
20일(현지 시각) 뉴욕증시에서 웹툰엔터의 주가는 전 거래일 대비 6.43% 올라 13.90달러에 마감했다. 김준구 네이버웹툰 대표의 자사주 매입 소식이 전해지면서 주가가 급등한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웹툰엔터는 김 대표가 지난 16일과 19일 이틀에 걸쳐50만9,700달러(4만1,531주) 상당의 주식을 매입했다고 밝힌 바 있다. 16일엔 웹툰엔터 주식 2만2,596주를 평균 11.88달러에 매입했고, 19일엔 1만6,804주를 평균 12.70달러에, 2,131주를 평균 13.07달러에 추가 매입했다. 이에 따라 김 대표의 웹툰엔터 주식은 92만4,005주로 늘었다. 지난 15일에는 김용수 최고전략책임자(CSO)와 데이비드 이 최고재무책임자(CFO)도 각각 주식 10만 달러와 20만 달러(약 2억7,000만원) 상당의 웹툰엔터 주식을 장내 매입한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주가 조작' 의혹 확산, 미 로펌 차원에서 조사 나서기도
이처럼 웹툰엔터 경영진이 잇달아 자사주 매입에 나선 건 지난 6월 말 기업공개(IPO) 이후 주가가 급락한 탓이다. 앞서 6월 27일, 웹툰엔터는 미국 나스닥에 상장했다. 상장 당시 공모가 21달러에 거래를 시작했지만 지난 8일 공개한 2분기 실적이 시장 전망치에 한참 못 미치자 한 달 동안 주가가 40% 넘게 급락했다. 웹툰엔터 입장에선 경영진이 책임 의식을 갖고 주주의 이익을 보전한 셈이다.
다만 시장에선 이를 두고 다소 엇갈린 시각이 표출되고 있다. 사실상 주가 조작을 노린 것 아니냐는 것이다. 논란이 일자 미국 로펌이 직접 나서기도 했다. 미국 주주권리 보호 전문 대형 로펌 존슨피스텔(Johnson Fistel)은 웹툰엔터의 IPO 약 6주 후인 지난 8일 웹툰이 월가 전망치를 크게 밑도는 실적을 발표한 후 하루 만에 주가가 약 38.1% 하락했다고 지적하면서 "웹툰엔터 임원이 투자자에게 중요하고 불리한 정보를 허위 진술하거나 적시에 공개하지 않아 증권법을 위반했는지 조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 로펌 커비맥이너니(Kirby McInerney)도 웹툰엔터의 연방 증권법 위반과 불법적 사업 관행 관여 여부를 조사한다고 발표했다.
자사주 매입에 따른 주가 조작 논란은 이전부터 꾸준히 제기돼 온 경영계의 현안 중 하나로,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린다. 우선 워렌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CEO는 "모든 자사주 매입이 주주나 국가에 해롭다거나 특히 CEO에게 이익이 된다는 말을 듣는다면 경제 문맹자나 말 잘하는 선동가의 말을 듣고 있는 것"이라며 "(자사주 매입은) 모든 소유자에게 이익이 된다"고 주장했다. 실제 버핏은 수년 동안 자사주 매입을 광범위하게 활용해 온 바 있다.
반면 매사추세츠주 상원의원인 엘리자베스 워런(Elizabeth Warren)은 기업들의 자사주 매입에 대해 "사실상 불법에 가까운 시장 조작"이라고 주장했다. 기업이 주당 수익을 늘리기 위해 자사주를 매입하는 행위는 해당 기업의 혁신을 잠식하는 것이란 지적이다. 제레미 그랜섬 GMO(Grantham, Mayo, & van Otterloo) 공동 설립자도 자사주 매입의 효용성을 부정하며 "(자사주 매입이) 주가 조작을 용이하게 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처럼 의견이 나뉘는 건 자사주 매입을 편법으로 활용할 수 있어서다. 통상 기업의 자사주 취득은 유통 주식 수 감소로 이어져 주가엔 호재로 작용한다. 자사주 매입 소식이 저평가 신호로 해석돼 주가가 오르는 경우도 있다. 순간적으로 주가를 펀더멘털 이상으로 밀어 올릴 수 있다는 의미다. 그런데 자사주 매입 이후 이를 소각하지 않으면 향후 잠재 매도물량(오버행) 부담이 커져 발목을 잡힐 수 있다. 자사주를 매입한 뒤 자사주를 재매각해 시세차익을 얻는 등 '꼼수'도 가능하다.
물론 신탁계약 기간 내의 자기주식 취득과 처분은 1개월 간격을 두고서만 허용된다는 규제 조항이 마련돼 있다. 그러나 이 같은 1개월 제약은 간단히 무력화할 수 있다. 여러 개의 간접 취득 계약을 다양한 상대방과 동시에 맺는 것이 허용되기 때문이다. 주어진 한 시점에 여러 상대와 복수의 신탁계약을 맺어도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한 증권사를 통해 오늘 자사주를 취득하고, 내일 다른 증권사를 통해 보유 자사주를 팔면 된다. 논란의 소지가 적지 않다는 얘기다.
네이버 임직원들이 나스닥 상장 직후 자사주를 대거 매도한 것으로 알려진 점도 논란의 불씨를 키우는 요인이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달 1일 네이버는 자사주 중 약 7%에 해당하는 24만6,620주를 처분했다. 이전 두 달 동안에도 네이버 리더급 임원들은 총 4,359주의 자사주를 매도한 바 있다. 금액으로 따지면 7억7,000만원 규모다. 한 임직원은 스톡옵션(주식매수선택권)을 행사한 뒤 일주일 후 전량 매도해 차익을 남기기도 했다. 나스닥 상장으로 지분가치가 희석될 위기에 놓이는 등 리스크가 늘자 차익 실현을 택한 임직원이 급증한 것으로 풀이되지만, 외부에선 '상장 후 주식 매각, 이후 자사주 재매입' 과정으로 비치기도 한다.
자사주 매입에 너그러운 한국, 미국선 부정 여론 급증
이에 일각에선 웹툰엔터가 지나치게 '한국적인' 출구전략을 짠 것 아니냐는 반응이 나온다. 우리나라는 미국보다 자사주 매입에 훨씬 관대한 편이다. 현행 자본시장과금융투자업에관한법률이 주가 조작의 적용 대상에서 자사주 매입을 아예 제외하고 있어서다. 금융위원회가 고시한 행정규칙에 따르면 자사주 1일 매수주문수량은 사들이고자 하는 주식 수의 10% 또는 이사회의 결의일로부터 1개월간 일평균 거래량의 25% 중 많은 수량 이내에서 얼마든지 매입할 수 있다. 실탄도 넉넉하게 허용한다. 자산에서 부채를 뺀 자기자본(순자산)에서 법정준비금을 제외한 나머지 한도 안에서 얼마든지 동원할 수 있으며, 배당을 하지 않고 자사주 매입을 해도 상관이 없다.
자사주 매입에 대한 시장의 인식도 너그럽다. 앞서 지난 2020년 검찰은 이재용 삼성전자 당시 부회장 등 11명을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검찰에 따르면 이 부회장 등은 2015년 7~8월에 삼성물산 주식매수청구기간(10일) 동안 제일모직 자사주를 집중매입(172만 주)하면서 다수의 고가매수 주문(7,049회, 23만 주), 물량소진 주문(1만3,185회, 54만 주), 단주주문(1만4,075회, 12만 주) 제출 등을 통해 시세를 조종했다. 당시 검찰은 "(이 부회장 등은) 삼성물산의 주가부양을 목적으로 경영상 필요성이 없는 제일모직 자기주식 매입을 결정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증권업계는 검찰의 주장에 비판적 의견을 쏟아냈다. 한 외국계 증권사 고위 임원은 "자사주를 이용한 시세조종은 실제 시장에서 쉽지 않다"며 "자사주 매입을 주가조작이라고 부르는 것도 말이 안 될뿐더러 자사주를 산다고 반드시 주가가 오르는 게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자사주 매입이 경영상 필요성이 없다고 주장한 것도 어색하다고 봤다. 미래 합병 상사 등 중대한 경영상 이유로 자사주를 매입한 것을 필요성이 없다고 일축하기엔 논리가 빈약하다는 이유에서였다.
반면 미국에선 최근 들어 자사주 매입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부쩍 늘어난 상태다. 미국은 자사주를 매입하는 즉시 소각해야 할 의무가 있는데, 이 제도로 자사주 소각이 남발(주주환원율의 3분의 2를 차지)하면서 월가만 살찌운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와서다. 상황이 이렇자 조 바이든 미 행정부도 자사주 매입을 제한하기 위한 법안 마련에 주력하고 있다. 자사주 매입에 4%의 세금을 부과하는 법안이 대표적이다. 미 로펌이 웹툰엔터 자사주 매입 건에 직접 개입하고 나선 것도 이 같은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