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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납부예외자 수 3년째↑, 체납자수도 증가 추세
국민연금 폐지 찬반 묻자, 2030세대 47%가 찬성
소득대체율 높이는 연금개혁 난색, 미래세대와 상충
만 27세가 됐는데도 국민연금 보험료를 낼 형편이 안 돼 ‘납부 예외’를 신청한 청년들이 최근 3년간 해마다 15만 명이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5명 중 1명꼴로 취업을 하지 못했거나 마땅한 소득이 없는 셈이다.
청년 납부 예외자 15만267명
22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김미애 국민의힘 의원이 국민연금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작년 한 해 동안 27세가 된 지역 가입자 중 소득이 없어 보험료 납부 예외를 신청한 사람은 15만267명으로 집계됐다. 국민연금법에 따르면 18세 이상 60세 미만의 국민은 국민연금 의무 가입 대상이다. 취직을 해 사업장(회사)에서 근무한다면 직장 가입자로, 그렇지 않으면 지역 가입자로 보험료를 내야 한다. 또 18세 이상 27세 미만 국민 중 학생이거나 군 복무 등의 이유로 소득이 없다면 국민연금 가입자에서 제외된다.
그러나 27세가 되면 국민연금에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하며, 소득이 없어 국민연금 보험료를 낼 수 없다면 납부 예외를 신청해야 한다. 이 같은 ‘27세 납부 예외 신청자’는 2021년 15만4,001명, 2022년 15만7,494명, 작년 15만267명 등 3년 연속 15만 명을 넘었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작년에 27세가 된 국내 거주자는 68만166명으로, 22.1%가 납부 예외자로 분류된 셈이다. 올해는 1월부터 9월 말까지 1997년생 13만2,342명이 납부 예외를 신청해 인정받았다.
29세 이하 국민연금 체납자 수도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국민연금공단에 따르면 29세 이하 국민연금 체납자 수는 2019년 7만5,538명에서 2021년 7만8,604명으로 늘었다. 올해 7월 기준 체납자수 비중은 29세 이하가 8만4,726명으로 가장 많았다. 30대~50대에서는 매년 체납자가 감소하고 있는 것과 상반된다. 지역 소득신고자 중 13개월 이상 장기체납자도 전체 연령대에서는 감소하고 있는 반면 20대 이하에서만 증가했다. 올해 상반기 20대 이하 장기체납자 비중은 5.3%(3만8,711명)로 2019년 3.3%(3만5,032명) 대비 2.0%p 증가했다.
“미래 없이 부담만 쌓인다” 청년층 불만 폭발
전문가들은 청년층 대다수가 ‘국민연금 폐지론’을 지지한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있다. 바른청년연합 등 청년 단체들이 참여한 연금개혁청년행동이 지난 18~19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국민연금 부채 1,800조원은 국고로 해결하고, 국민연금을 차라리 폐지하자’는 연금 폐지론에 대해 54%가 반대했고, 31.3%가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국민연금 기금고갈로 인한 타격이 가장 큰 20대(18~19세 포함)와 30대는 찬성이 각각 45.7%, 48.3%로, 반대(20대 40.0%, 30대 45.6%)보다 찬성 의견이 많았다. 이에 반해 40대 이상은 연금 폐지 반대론이 크게 앞섰다. 반대 비율은 40대가 55.1%, 50대가 61.8%, 60대가 69.4%, 70대가 47.7%였다.
‘현재 국민연금 구조가 다단계 사기 혹은 폰지 사기 같다는 비판에 대한 생각’을 묻자, 전체 응답자의 45.2%가 동의했고, 36.5%는 동의하지 않았다. 이 문항에서도 20대와 30대가 “동의한다”고 답한 비율이 다른 연령대에 비해 비교적 높았다. 20대는 63.2%, 30대는 59.2%가 동의하는 등 국민연금에 대한 불신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연금개혁청년행동 측은 “국민연금의 재정상태 및 부채 규모에 대해 숙지한 이후 조사에 응한 사람들은 대체로 연금수령액을 늘리자는 소득보장론보다 미래세대의 부담을 덜자는 재정안정론을 지지했다”며 “젊은 세대일수록 현재 국민연금에 대한 불신이 강하다는 점도 확인됐다”고 밝혔다. 서대곤 바른청년연합 대외팀장은 "기금이 고갈돼도 괜찮다는 사기꾼들의 말에 세금을 투입해서 연금을 확대할 경우 자연스레 청년층의 비혼, 비출산은 현재보다 심각해질 것"이라고도 주장했다.
개혁 미루고 방치한 정부·정치권 책임
국민연금에 대한 청년층의 거부감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국민 다단계 시한폭탄’, ‘마르는 샘물’ 등으로 대변되는 청년층의 부정적 인식 기저에는 연금 고갈에 대한 불안감이 깔려 있다. 이 같은 세대 간 입장차는 국민연금 개혁 논의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중장년층은 세대별로 보험료를 차등 인상하겠다는 정부안에 반발하는 반면, 청년층은 “어차피 받을 수 없다면 차라리 폐지하는 게 낫다”며 국가가 연금 제도 운용에 대한 책임감을 보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미래세대의 부담을 덜기 위해 보험료율 인상은 불가피한데, 인상이 부담된다는 쪽과 연금 고갈에 대한 불안 섞인 목소리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세대 간 인식 차이는 연금 개혁 논의를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정부가 연금개혁안을 내놓은 지 한 달이 넘었지만 법안을 처리할 국회 논의가 여전히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정부는 장기적인 재정 안정화를 위해 보험료율 인상과 소득대체율 조정 등을 추진하고 있으나 각 세대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얽혀 있어 합의점을 찾기가 쉽지 않다.
전문가들은 국민연금이 이렇게까지 된 데는 정부와 정치권의 탓이 크다고 보고 있다. 인구구조 변화와 급속한 고령화로 연금 지급액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조금 내고 많이 받는 현행 방식으로는 감당하기 힘든 만큼, 연금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오래전부터 제기됐음에도 수차례 시도된 개혁안은 여론의 반발에 부딪혔고 그때마다 문제 해결은 다음 정권으로 미뤄졌기 때문이다. 결국 작금의 사태는 지난 20여 년간 제도개선은커녕 보험료 한 푼 올리지 않고 방치한 데 따른 결과물이라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