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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상속세율에 '세금 피난', 올해 한국 부자 1,200명 해외로 이주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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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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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속세 없는 13개국 이민자 10년 새 2배 증가
韓 '상속세율 60%', 日과 함께 세계 최고 수준
아파트 가격 상승에 중산층까지 세 부담 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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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자산가 순유출 상위 10개국/출처=헨리앤파트너스

최고세율이 50%에 달하는 상속세를 피해 해외로 빠져나가는 자산가들이 늘고 있다. 주식 매각 차액을 제외하면 이민갈 때 갖고 나가는 자산에는 세금을 매기지 않다 보니 상속세가 없는 국가로 향하는 부자들이 대폭 증가한 것이다. 이에 과도한 세 부담이 결국 고액 자산가의 세금 피난을 야기하면서 양질의 세원 기반마저 허물고 있다는 지적이 거세다. 여기에 국민 소득과 자산가치의 상승을 반영하지 않고 24년 전 기준을 그대로 적용하면서 세 부담이 중산층까지 광범위하게 확산했다는 비판도 뒤따른다.

韓 자산가 유출 세계 4위, 지난해 7위에서 세 단계 상승

21일 법무부와 통계청 출입국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이민 등으로 외국 국적을 취득해 한국 국적을 포기한 국적 상실자는 2만5,405명으로 집계됐다. 10년 전인 2013년 1만9,413명과 비교하면 30.9% 급증한 수치다. 이 중에는 상속세를 피해 이민에 나선 사람도 많은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로 국적 상실자 중 캐나다·호주·싱가포르 등 상속세가 없는 13개국으로 옮겨간 국민은 2022년 기준 8,316명으로 최근 10년 새 2배나 늘었다. 전체 국적 상실자 32.7%가 상속세를 매기지 않는 나라로 이주한 셈이다.

이 같은 흐름은 올해도 이어지는 모습이다. 영국 투자이민 컨설팅업체 헨리앤파트너스(Henley & Partners)가 발표한 '2024년 부의 이동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한국 자산가 1,200명이 나라를 떠날 것으로 추산된다. 한국은 지난해 7위(800명)에서 올해 4위로 순위가 3계단 상승했다. 자산가 유출이 가장 많은 나라는 중국으로, 올해에만 1만5,200명이 다른 나라로 이주할 것으로 관측된다. 자산가 유출 2위와 3위는 영국(9,500명), 인도(4,300명)로 나타났고 전쟁 중인 러시아(1,000명)는 5위에 이름을 올렸다.

자산가가 가장 많이 정착한 나라로는 아랍에미리트(6,700명), 미국(3,800명), 싱가포르(3,500명), 캐나다(3,200명), 호주(2,500)의 순으로 나타났다. 모두 개인소득세나 상속세가 없거나 세 부담이 크게 낮은 나라다. 헨리앤파트너스는 "1위에 오른 아랍에미리트(UAE)는 세계 최고의 부국(富國)이 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골든비자 도입 등 백만장자 유치를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며 "자산가의 유입은 자본의 이동이라는 점에서 부동산과 신산업에 활력을 불어넣고, 일자리 창출과 지식 이전, 국가의 혁신이라는 파급효과를 가져온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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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속·증여·배당소득세 없는 '3無 국가'로 부자들 몰려

한국 자산가가 가장 선호하는 행선지는 자산가 유입 3위에 오른 싱가포르다. 실제로 지난해 한국 국적을 포기하고 싱가포르 국적을 취득한 인원은 2022년 기준 204명으로 전년 106명 대비 92.5% 급증했다. 2021년 134명을 기록하며 처음으로 100명을 넘어선 뒤 2년 만에 사상 최대치를 경신했다. 상속·증여·배당소득세 등 3대 세금이 없는 데다 안정적인 치안과 국제적인 수준의 교육 환경도 부자들을 끌어들이는 요소다. 한국에 사업 근거를 두고 오갈 수 있고, 현지에서 사업을 시작하기에도 절차가 간단하고 정부 지원도 잘 돼 있다.

싱가포르 투자이민제도 GIP는 3년 평균 매출액이 2억 싱가포르달러(약 2,000억원) 이상인 법인이나 해당 기업의 지분 30% 이상을 보유해야만 신청할 수 있다. 신청 자격을 갖춘 이는 싱가포르 소재 법인 또는 GIP펀드에 250만 싱가포르달러(약 25억5,000만원)를 투자하면 영주권이 주어진다. 투자 이민 전문 로펌의 한 관계자는 "최근 싱가포르 국적을 취득한 이들의 상당수가 3대 세금을 피하고자 투자 이민을 선택한다"며 "이들 대부분이 1,000억원대 현금성 자산을 보유한 초고액자산가나 코인 투자으로 큰돈을 번 신흥 부자"라고 말했다.

세제 혜택이 풍부한 UAE와 홍콩을 택하는 한국 자산가도 늘고 있다. 홍콩으로 옮겨 간 이주 신고자는 2013년 1월부터 2016년 12월까지 단 2명에 불과했으나 2017년 이후 올해 1월까지 242명으로 크게 증가했고, UAE도 같은 기간 0명에서 27명으로 늘었다. 헨리앤파트너스 통계에서 3년 연속 자산가 유입이 가장 많은 나라로 꼽힌 UAE는 상속·증여세를 비롯해 양도소득세가 없고 법인세율도 싱가포르(17%)의 절반 수준인 9%에 불과하다. 가상자산 거래 소득에 대한 세금이 없고 가상자산으로 부동산이나 차량 구매가 가능한 점도 매력으로 꼽힌다.

홍콩 역시 상속세, 법인세, 배당·이자소득세가 없는 '3무(無)' 체제다. 법인세율도 17%로 단일화돼 있는데 거주자 펀드 제도를 활용하면 법인세를 완전 면세 받을 수 있다. 이 외에도 비즈니스와 관련한 세제 혜택이 풍부하다 보니 최근에는 유럽의 부유한 가문들이 홍콩에 패밀리 오피스를 설립해 거점으로 두고 세계 증시에 투자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홍콩 정부도 세제 인센티브, 투자 이민 제도 완화 등 패밀리 오피스 유치를 위한 다양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최근 주택 투자를 투자 이민 제도 대상에 포함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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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상속세 탓에 승계 포기 후 매각·폐업하는 사례도 증가

자산가의 탈출 러쉬가 증가하자 정부는 상속세 등 세제 개편안 논의에 착수했다. 기획재정부 고위 관계자는 "부자들이 해외로 빠져나간다는 것은 국내에서 걷을 수도 있는 풍부한 세원이 해외로 나간다는 뜻"이라며 "세수 기반을 잃지 않기 위해서라도 상속세제 개편이 필요해진 상황"이라고 전했다. 한국의 상속세는 2000년 최고세율이 45%에서 50%로 높아진 뒤 변동이 없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일본(55%)에 이어 2위다. 주식 상속 시 최대 주주에게 적용되는 20% 할증 평가를 포함하면 실질적인 최고세율은 60%가 된다.

높은 상속세 탓에 해외로 사업장을 옮기거나 승계 포기 후 매각 또는 폐업을 택하는 사례도 수두룩하다. 더 큰 문제는 자산가치 상승으로 예전에는 부자라고 보지 않았던 사람들도 상속세 대상이 되면서 높은 세 부담이 중산층으로 빠르게 옮겨가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아파트를 보유한 중산층의 타격이 크다. 통상 10억원을 초과한 아파트부터 상속세를 부과하는데, 최근 집값 상승세로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는 12억원대를 기록했다. 서울 아파트 중 10억원이 넘는 주택의 비중이 40%에 육박한 만큼 상당수 국민이 이미 과세권에 들어간 셈이다.

이에 정부는 최근 최대 주주 할증평가를 폐지하고 가업상속 공제와 배우자 공제 한도를 늘리는 방식으로 세법 개정을 추진 중이지만, 보다 근본적으로 주요국 대비 높은 세율을 인하하거나 자본이득세 도입 같은 처방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성태윤 대통령실 정책실장도 "여러 국가가 기업 상속 시점에 세금을 매기는 것이 아니라 차후 기업을 더 경영하지 않고 팔아서 현금화하는 시점에 세금을 부과하는 자본이득세 형태로 전환하고 있다"며 "한국도 자본이득세로 변경하는 전반적 개편이 필요하다"고 강조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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