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수정
올해 들어 인터넷은행의 주담대 비중 늘어나 가계대출 억제 정책으로 갈아타기 수요 증가 중·저신용자 대출 취지에 어긋난다는 지적도
인터넷은행 업계에서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중·저신용자의 신용대출 금리보다 높은 기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주담대는 담보물의 가치가 안정적인 만큼 언제 대출금이 떼일지 모르는 신용대출보다 금리를 낮게 책정하는데, 이런 금융 상식을 뒤엎는 금리 역전 현상이 제1금융권에서 발생한 것이다. 전체 신용대출의 최소 30%를 중·저신용자 신용대출로 채워야 하는 규제와 가계대출 억제 정책이 맞물리면서 인터넷은행을 옥죈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카카오뱅크, 주담대보다 신용대출 금리 1%P 높아
13일 인터넷은행업계에 따르면 총자산 기준 업계 1위 카카오뱅크는 전날 5년간 고정하는 주기형 주담대 금리를 연 4.103~6.372%로 책정했다. 같은 날 신용점수가 하위 50%인 중·저신용자에게 판매하는 신용대출 상품인 중신용대출 금리는 연 3.139~10.874%로 정해 주담대 최저금리가 중·저신용자 대상 신용대출의 최저금리보다 1%포인트가량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담보대출과 신용대출 사이의 금리 역전 현상은 올해 8월부터 시작돼 3개월 넘게 지속되고 있다.
은행권에서 주담대는 '가장 안전한 대출'로 불린다. 담보인정비율(LTV) 70% 범위에서 대출해 준 만큼 차주가 빚을 갚지 못해 부실이 발생해도 은행이 원금을 회수하지 못할 가능성이 작은 편이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신용대출은 담보가 없어 부실로 인한 원금 손실을 은행이 그대로 감수해야 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위험한 대출로 꼽힌다. 특히 신용점수가 하위 50%에 속하는 중·저신용자 대상 신용대출은 부실률이 높아 금리가 낮으면 손익분기점을 맞추기 어렵다.
올해 상반기까지만 해도 카카오뱅크의 주담대 금리는 중신용대출보다 줄곧 0.5%포인트 정도 낮게 책정됐다. 하지만 정부의 가계대출 억제 정책에 따라 하반기 들어 주담대 금리를 올렸다. 반면 비중이 줄어든 중·저신용자 대상 신용대출은 금리를 낮췄다. 이달 7일부터는 중신용대출 금리를 0.3%포인트 인하하는 특판에 나서기도 했다. 특판 대출을 받은 중·저신용 고객에게 최대 3만원의 첫 달 이자도 지원한다.
1월 신용대출 갈아타기 서비스 확대로 주담대 급증
기본적인 금융 원리와는 달리 유독 인터넷은행이 금리를 낮추면서까지 중·저신용자 신용대출을 늘리려는 데는 정부의 대출 규제가 원인으로 꼽힌다. 금융당국은 2017년 인터넷은행에 은행업 인가를 내준 정책 목표가 '중·저신용자에 대한 대출 확대'임을 고려해 인터넷은행의 중·저신용자에 대한 신용대출 비중(가계 총신용대출액 대비·2024~2026년) 목표치로 30% 이상을 요구하고 있다. 지난 2분기 기준 카카오뱅크는 해당 비율이 32.4%였으며 케이뱅크와 토스뱅크는 각각 33.3%, 34.9%로 3사 모두 규제 비율을 준수하고 있다.
하지만 인터넷은행 3사의 총여신 가운데 주담대가 중·저신용자대출금액에 육박할 정도로 급증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지난달 금융감독원 금융통계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인터넷은행 3사의 가계대출자금은 총 68조9,253억원이다. 이 중 주담대는 33조6,185억원으로 35조3,068억원을 기록한 신용대출에 육박했다. 지난해 같은 시기를 보면 당시 주담대 잔액은 21조157억원으로 신용대출(32조7,255억원)에 견줘 10조원 남짓 작았다.
이를 두고 인터넷은행이 설립 취지와 달리 주담대 쪽으로 여신 전략의 무게중심이 이동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특히 2022년부터 주담대 상품을 출시한 카카오뱅크와 케이뱅크의 경우 가계신용대출은 지난 1년 새 16조500억원에서 16조1500억원(카카오뱅크), 8,400억원에서 7,400억원(케이뱅크)으로 정체 또는 감소한 반면, 주담대는 17조3,200억원에서 24조9,800억원(카카오뱅크), 3조6,900억원에서 7조1,500억원(케이뱅크)으로 급증했다.
인터넷은행의 주담대 급증세는 올해 1월부터 주담대 및 전세대출까지 대환대출(신용대출 갈아타기) 서비스가 확대된 것이 핵심 요인으로 추정된다. 은행권 주담대 수요가 보다 금리가 낮은 인터넷은행으로 옮겨온 영향이라는 것이다. 일례로 카카오뱅크의 1분기 주담대 신규취급액 중 5대 은행 등 일반은행에서 넘어온 대출 비중은 62%에 이른다. 다른 인터넷은행도 올해 초 대환대출 서비스가 시작되면서 갈아타기 수요가 크게 늘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정부, 신용대출 비율 기준 '총여신'으로 수정 추진
전문가들은 가계대출을 억제하면서 중·저신용자 대상 신용대출을 확대해야 하는 인터넷은행의 쌍방향 규제가 인터넷은행의 성장을 제한하고 건전성 악화만 불러왔다고 지적한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김현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금융감독원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카카오뱅크의 신용대출 연체율은 지난해 말 0.78%에서 올해 8월 말 1.03%로 올랐다. 케이뱅크의 신용대출 연체율은 같은 기간 1.48%에서 1.92%로 치솟았다. 토스뱅크는 1.15%에서 1.12%로 소폭 낮아졌지만 2022년 말(0.79%)과 비교하면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이에 인터넷은행은 정부의 쌍방향 규제를 피하고자 주담대 중에서 가계대출에 속하지 않는 개인사업자 대상 주담대를 늘리는 식으로 우회로를 찾고 있다. 케이뱅크는 8월 인터넷은행 최초로 100% 비대면 방식의 개인사업자 대상 주담대를 출시했다. 내년에는 중소기업 대상 담보대출을 합쳐 최대 5조원까지 사업자 대상 담보대출 잔액을 늘린다는 구상이다. 카카오뱅크도 비대면 방식의 개인사업자 대상 주담대 판매를 준비 중이다.
문제는 개인사업자 대상 주담대도 아파트만을 담보로 판매되고 있어 사실상 가계대출과 성격이 비슷하다는 점이다. 영세한 개인사업자의 아파트담보대출은 사실상 가계대출의 일종으로 볼 수 있어 자칫 가계대출 억제 정책의 구멍으로 작용해 풍선효과만 커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더욱이 비대면 대환대출이 자유로운 상황에서 잔액 기준 비중 규제는 인터넷은행의 신용평가모형(CSS) 고도화를 유도하기보다는 기존 고객을 은행끼리 뺏고 빼앗기는 소모적 경쟁만 유발한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이에 금융당국은 인터넷은행의 중·저신용자 대상 신용대출 비율 산정 방식에 대한 수정을 추진하고 있다. 지금은 중·저신용자 대출액을 가계신용대출로 나눠 비율을 산정하는데, 앞으로는 총여신으로 나누는 방식을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총여신에는 가계신용대출뿐만 아니라 주담대, 대·중소기업 대출, 개인사업자 대출 등이 두루 포함되기 때문에 중·저신용자 대출에는 적극적이지 않으면서 주담대는 크게 늘려 온 인터넷은행의 행태에도 제동이 걸릴 것이란 판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