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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반기 해외 유출 투자금, 유입의 6배
비용절감 위해 해외 향하는 생산 시설
국내 시장 향한 투자자 기대감 급락
국내 투자로 일자리를 창출하고 경제 기반을 다져야 할 기업들이 연이어 한국을 떠나고 있다. 가파른 임금 인상과 강직된 노동 규제가 그 주범으로 지목되는 가운데, 내수 부진의 영향 또한 무시할 수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물 경제에 선행하는 주식 시장은 이미 하락세에 접어든 모양새다.
32조원 나갈 때 5조원 들어왔다
20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간한 ‘해외직접투자(FDI) 보고서’에 따르면 올 상반기 한국에서 해외로 나간 투자는 234억 달러(약 32조7,000억원)로 집계됐다. 이같은 해외 직접투자 유출은 2019년 상반기(188억 달러·약 26조2,700억원)부터 2022년 상반기(409억 달러·약 57조 1,600억원)까지 꾸준히 상승하다 지난해(136억 달러·약 19조원) 잠시 주춤했지만, 올해 다시 100억 달러 가까이 늘었다.
반면 올 상반기 국내로 들어온 외국인 투자는 39억 달러(약 5조4,500억원)에 그쳤다. 빠져나간 돈이 들어온 돈의 6배에 달하는 셈이다. 이 기간 OECD 38개국을 포함한 46개국 중 한국의 외국인 직접투자 순위는 21위에 그쳤다. 미국이 1위로 1,530억 달러(약 213조8,800억원)의 투자를 유치했으며, 이어 브라질과 멕시코 등이 뒤를 이었다. 브라질과 멕시코의 경우 미국과 인접한 지리적 이점과 임금 경쟁력이 높아 많은 투자가 이뤄졌다는 게 OECD의 설명이다.
이처럼 한국이 해외 투자자들의 외면을 받는 배경으로는 강도 높은 노동 규제가 꼽힌다. 급격히 치솟은 최저임금과 주 52시간으로 제한된 근로 시간 등이 기업 운영에 있어 걸림돌로 작용한다는 지적이다.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우리나라 최저임금은 다른 OECD 국가들의 중위소득과 비교해도 월등히 높다”고 지적하며 “제조업 같은 경우엔 빈 일자리에 외국 인력을 쓰고 싶어도 현행법에 따라 한국인과 똑같은 최저임금을 적용해야 하는 탓에 인건비 절감이 사실상 불가능한 실정”이라고 토로했다.
주 52시간 근로 시간 제한과 관련해선 외국인 투자자들도 심각한 사안으로 받아들이는 모습이다. 첨단 산업 등 더 많은 연구개발(R&D)을 요구하는 분야에도 주 52시간 규제가 적용돼 직원들의 업무 효율을 떨어트린다는 이유에서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외국인들은 한국에 엄청난 인재가 있는 것도 아니고 첨단 공장을 짓는다고 혜택을 많이 주는 것도 아니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전하며 “각종 노동 규제와 환경 규제 때문에 국내에 투자하기를 꺼리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이 싫어서’ 떠나는 기업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중소기업 경영인 사이에서는 “한국을 버려야 살 수 있다”는 말까지 나온다.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 국가로만 보금자리를 옮겨도 임대료와 인건비 등 대부분의 비용을 절반 이하로 줄일 수 있다는 게 이들 경영인의 공통된 의견이다. 특히 베트남의 경우 자국으로 공장을 이전하는 기업에 세제 혜택이나 물류비 지원 같은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제공하며 해외 기업 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런 탈(脫)한국 열풍은 비단 중소기업계에만 그치지 않는다. 국내에 지사를 둔 글로벌 기업에서도 한국 내 사업 영위에 대한 애로가 끊이지 않는 것이다. 카허 카젬(Kaher Kazem) 전 한국 제너럴모터스(GM) 사장의 발언이 대표적이다. 한국에서 일하며 불법파견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그는 이후 중국으로 건너가 현재 상하이GM 총괄부사장을 역임 중이다.
일본 매체 머니1에 의하면 카젬 부사장은 중국으로 건너간 이후 정만기 한국무역협회 부회장과 만나 한국과 중국의 기업 환경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카젬 부사장은 이 자리에서 “중국에는 노사 문제가 없어 경영에 전념할 수 있지만, 한국에서는 노사 문제 대응이 업무 대부분을 차지했다”고 말했다. 이런 환경의 차이가 중국의 산업 발전 속도를 높였다는 게 카젬 부사장의 주장이다. 그는 “노사 문제가 전혀 없다면 그것대로 문제겠지만, 이대로라면 누가 한국에서 근무하고 싶어 하겠나”고 일갈하기도 했다.
국내 기업 이익 부진 우려 커져
문제는 내수 시장이 급격히 침체한 탓에 외국인 투자자들의 한국 외면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이는 실물 경제에 선행하는 주식 시장의 흐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21일 코스피 지수는 전 거래일 대비 3.94(-0.16%) 내린 2,478.35로 장을 시작했다. 개인과 기관이 각각 181억원, 24억원어치를 사들였지만, 외국인이 218억원어치를 팔아치웠다.
최근 들어 한국 경제 성장률 전망치가 하향 조정되고 수출 경기가 둔화하면서 국내 기업들의 이익 부진 우려가 커졌고, 이에 따라 한국 증시의 반등세나 수익률에 대한 투자자의 기대감이 약해졌다는 게 전문가 분석이다. 이경수 하나증권 연구원은 “시계열 측면 둔화뿐 아니라 국가별 측면에서도 최하위 수준인 한국 기업 이익에 대한 우려가 있는 상황”이라고 진단하며 “특히 한국 증시는 글로벌 반도체 지수 부진 흐름에 연결돼 있어 영향을 크게 받는다”고 설명했다. 높은 수출 의존도와 특정 업종에 편중된 한국 경제의 취약점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김승현 한국투자신탁운용 ETF 컨설팅 담당 또한 “대외적으로 악재가 많아 국내 증시는 당분간 변동성 높은 환경에 노출될 것”이라며 “강달러 국면 하에 미국만 질주하는 시장 국면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투자자들의 자금도 미국으로 집중될 전망”이라고 내다봤다. 실제로 한국예탁결제원 통계에 따르면 이달 12일까지 집계된 올해 국내 투자자의 미국 주식 매수 결제금액은 2,032억 달러(약 284조2,400억원)로, 1,352억 달러(약 189조1,200억원)인 작년 한 해 매수 규모보다 50.33% 증가했다. 올해 11월 11일 기준 국내 투자자의 미국 주식 보관 금액도 1,035억 달러(약 144조7,800억원)로 2023년 말 대비 52.17% 많아졌다.